"요리사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 방송에 출연하면 요리사는 다 저렇게 소금만 뿌리면 웃겨주는 사람이 될 것."
"한국에서 서양음식을 공부하면 자신이 커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자꾸 옆으로 튄다. 분자 요리에 도전하기도 하고…"
강레오의 발언이 논란이었는데 그의 발언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 시대의 요리 트렌드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웹진 인터뷰를 통한 그의 발언에는 '재미'와 '커갈 수 없다', '분자 요리'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단어들을 풀어보면 문화적 트랜드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 강레오가 셰프가 출연중인 MBC '찾아라! 맛있는 TV'. ⓒMBC |
그 이유는 요리 자체에 대한 레시피가 넘쳐나고 맛집에 대한 정보도 실시간으로 검색되는 때에 단순히 요리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나 미디어 수용자들에게 매력이 덜할 것이다. 강레오는 재미를 추구하는 요리사들을 비판했지만 본인을 포함하여 많은 요리사들에게 바라는 대중적인 욕구가 재미에 집중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강레오는 국내에서 서양 요리를 배운 요리사들의 한계를 언급해서 엄청난 비판에 직면 했다. 이는 해외 유학파 요리사들을 최고로 꼽고 국내파 요리사들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 서양 요리를 배우면 커갈 수 없자 옆으로 튄다는 말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튀는 요리를 분자 요리에 비유 했다. 옆으로 튄다는 말은 본래 없는 요리들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통의 요리가 아니라 비정통의 요리를 만들어 주목을 끌려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서양 요리 자체가 아니다. 정통요리에 대한 궁금증이나 호기심도 적다. 대단히 실용적인 요리를 원한다. 또한 창조적인 요리와 그에 따른 음식의 변화를 더 선호한다. 어디에선가 존재하는 그리고 봤음직한 요리들은 선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바로 이 자리에서 처음 선을 보이는 요리일수록 그 자체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호되는 것이다. 요리에 대한 호사주의가 작용한다면 정통 요리나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쿡방남들이 대세가 된 것은 스펙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원하는 요리를 현실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즉, 실력만이 오로지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해 그들에 대한 선호를 낳았다.
"평범한 김치찌개 같은 요리를 왜 TV로 넋 놓고 봐야 하는지, 그런 모습을 볼 때는 좀 씁쓸하다"는 말도 그런 면에서 트렌드에 맞지 않았다. 평범한 요리라도 색다르게 접근한다면 얼마든지 시청자들이나 수용자들은 선호할 수 있다. 만약 정통의 서양요리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난다면 철저하게 대중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강레오의 말은 요리 본래의 지향점을 언급하는 발언들이었다. 다만, 이런 정보요리가 전혀 필요 없다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요리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특히 해외유학파라는 점을 군림하면서 이 땅에 살면서 일상적인 음식을 먹어야 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현실을 좀더 반영하는 셰프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셰프들이 어떤 음식과 요리들을 선보여야 하는 지 자명하다. 이제 요리는 호사와 브랜드, 정통이 아니라 일상과 실용, 현실적인 문화코드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재미도 있고 유익함도 있으며, 실제적인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오히려 앞의 키워드를 강조할수록 재미도 없고 비실제적이며 일상의 실용적 가치도 적다. 우리는 서양 사람이 아니라 김치찌개를 먹어야 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자처럼 튀는 요리이면 곤란할 것이다. 왜냐하면 분자는 먹을 수가 없다, 맛도 없기 때문이다. 눈길을 끌기위해 즉 튀기 위해서만 만드는 요리는 재미를 준다는 명분에 부합하지만 결국 실제적인 실용의 가치가 적기 때문에 지지를 받기 힘들 것이다. 결국 요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 정통을 강조하는, 서양의 요리를 강조하는 담론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한국인들의 입맛과는 별개로 권위만 내세우기 때문이다. 결국 음식과 요리는 맛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우선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