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괴물에서 좀비까지 폭주하는 스크린 지배 언제까지 할건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8. 1. 08:38



펀드매니저는 주가조작을 위해서 문제가 있는 바이오 관련 기업을 살린다. 그 기업은 애초에 살려서는 안되는 부실 기업이었다. 그런데 이 바이오 기업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유출되고 세상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로 넘쳐나게 된다. 그 와중에 펀드매니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주가조작을 하여 이익을 내기 위해 부당한 짓을 했기 때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이를 통해서 펀드매니저들에 대한 경종을 울릴 수도 있는 듯싶다. 

여기에서 펀드매니저는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을 의미하고 있는지 모른다. 없는 가치를 조작을 통해서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내용의 '부산행'과 같은 영화를 보면 뭔가 뿌듯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좀비 바이러스를 양산하여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는 천박한 기업문화와 금융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을 하고 있는 의식 있는 오락영화를 감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그럴까. 그럴만한 자격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영화와 같은 운명을 맞아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승리자는 항상 그 모순에 존립하고 있다.

이런 오류는 이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6년 개봉한 영화 '괴물'은 괴수를 등장시킨 오락영화이기도 했지만 의식 있는 영화로 평가받기도 했다. 주한미군의 독극물 유출 사건을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한강에 버린 그 독극물이 물고기에 영향을 미쳐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는 설정은 일상의 공포에 대한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다. 그것도 실제 사례였다니 말이다. 주한미군을 비판적으로 접근한 상업 영화가 없었던 터라 평단은 열광했다. 





이 상업 영화는 평단의 호평을 등에 업었기 때문에 문제점은 묻혔다. 그것은 처음부터 스크린 지배로 나타났다. 전체 가운데 40%에 육박하는 스크린을 장악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욱 그 수는 늘어났다. 이렇게 많은 스크린을 초기에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영화자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마케팅 비용이 투입되었음은 물론이다. 2013년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설국열차'도 무려 50%에 가까운 스크린 점유율을 통해 폭주했다. 이 역시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의식 있는 영화로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2016년 영화 '부산행'도 대규모 자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작은 변칙 개봉이었다. 다른 작은 제작사는 할 수 없는 유료시사회가 등장했다. 개봉 전주인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3일 동안 400여개의 스크린에서 하루 1000회 정도의 유료 시사회를 통해 55만8928명의 관객을 모았다. 당연히 시사회 관객인데 전체 흥행 관객수에 합산이 되었다. 더구나 이를 통해 초기 기선을 완전 제압했다. 

특히, 유료 시사회는 그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집중적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당연히 입소문은 좋게 나는 것이 상례이다. 영화 '부산행'은 첫주인 지난 23일에만 1785개 상영관을 차지했고 만 번의 이상의 상영을 해서 128만738명을 동원했다. 매출 점유율은 무려 75%였다. 단번에 영화 기록을 깨뜨리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더구나 칸이라는 브랜드를 일찍부터 활용했고, 해외 언론의 평가도 적절하게 이끌어 내어 관객들을 시야를 현란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럴수록 많은 관객들은 더 이상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부산행'을 보는 경우가 많아진다. 심지어 좀비 영화인지도 모르고 스크린 지배와 분위기의 휩쓸림에 선택을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도 다반사가 된다. 심지어는 스포일러 노출이라는 이유로 영화에 대한 평가 자체도 가로막힌다. 이 글을 본 사람들 중에는 앞에 '부산행'의 내용을 언급해 스포라고 공격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몇 가지 포인트에 따른 스포일러에 의존하는 영화라면 정말 훌륭한 영화인지 의문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개인들이 이 영화 자체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스크린 과독점 문제들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아는 일이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심지어 '부산행'과 같은 영화에 대해서 호평을 내리는 평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스크린 지배와 독점이 이루어질 때 피해를 보게 되는 다른 영화들의 속사정은 어떻게 될지 빤한 것을 말이다. 영화의 논리상으로 본다면, 펀드매니저의 운명이 그렇듯이 대형 영화 제작 배급 상영 업체들은 같은 운명을 맞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엄연하게도 다른 작은 영화사들 보다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다른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악당에게서 정의를 지키고 세계를 구한다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80%에 육박하는 스크린을 지배했다. 스크린을 독점했던 영화 '암살'이나 '베테랑'도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권선징악의 모티브를 통해서 의식 있는 영화라는 점을 부각하며 오락영화의 상업적 이익을 최대화했다. 처음부터 다른 영화들과 다른 출발선을 가지고 출발했기 때문에 결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등의 대형 작품이 많은 올 여름은 더욱 작은 영화들이 존립하기 힘들다. 어느새 여름은 특정 몇몇 영화에만 쏠려야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아예 모순을 방기하는 행태가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이미 영화 속의 정의의 실현에 열광하면서 영화산업 자체의 모순은 눈감으며 즐기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다른 영화들의 피눈물은 묻힌다. 앞으로도 온갖 좋은 내용의 영화들이 대규모 자본을 통해서 의식있음을 혹은 진보적임을 강조하며 판매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쏠림과 불균형의 한국 영화계는 편중성과 숫자의 버블만 폭주열차처럼 내달리고 있다. 수직계열화를 통한 지배적 구조는 여전히 좀비를 양산하는 독극물일 수 있다. 다양성과 자율성의 영화 생태계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좀비에 스스로 감염되어야 영화적 진실에서 어긋나지 않게 된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