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광화문 광장은 1인 영웅주의의 광장?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9:00

<김헌식 칼럼>광화문 광장은 1인 영웅주의의 광장?

 2010.09.09 09:03

 




[김헌식 문화평론가]지난 광복절 8월 15일을 맞아 광화문 복원이 이루어졌다. 광화문 복원은 이루어졌지만, 그 현판을 두고 논란이 있어 왔다. 현판의 글씨를 한글로 할 것인가, 한자로 할 것인가 그 문자의 종류에 대해서 설왕설래 한 것이다. 결국 문화재청은 고종 중건 당시의 글자를 현판 글씨로 복원했다. 한글 단체들은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상이 있는 마당에 광화문의 현판을 한자로 선택한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이 눈물을 흘릴 일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더구나 사정문 혹은 정문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광화문으로 바꾼 것은 세종이고, 한글을 발명한 사람도 세종대왕이니 한글의 발명과 광화문 개칭의 주인공인 세종을 함께 아우르는 것이 바로 광화문 현판이다. 또한 G20이 열리는 마당에 광화문의 현판도 한글로 바꾸어 한글의 우수성을 알려야 한다는 그 공공적 명분과 국가적 가치가 틀린 것일 리 없다.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광화문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왕 중심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왕의 덕이 모든 세상을 비춘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광화문의 현판을 한글로 다는 것인가, 한자로 다는 것인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결국 광화문이 담고 있는 뜻은 군주통치적인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글이 가진 민주주의, 시민성과 배치된다. 

광화문 앞에 세종대왕상만 있는 것도 문제이다. 한글은 세종대왕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자명하다. 최소한 집현전 학자들이 같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만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시당하고 차별받았던 한글을 지켜낸 사람들이 누구이냐는 것이다. 흔히 한글 학자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조선시대의 여성들이었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한글은 보존은 커녕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을 것이다. 세종대의 한글이 오늘날의 한글 형태로 정착한 것은 한글학자들의 덕분이다. 따라서 광화문에는 세종만이 아니라 집현전 학사들, 여성들, 한글학자들이 부조로라도 기록되어야 한다. 

세종대왕과 한글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종대왕상 앞에는 이순신 동상이 있다. 이순신 동상의 위용은 실제 이순신의 모습과 다르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광화문 앞을 지키고 있다. 세종대왕상이 생기는 바람에 부담감(?)이 더 커진 모양이다. 이순신 장군을 만든 사람들은 많다. 또한 이순신 함대가 큰 공적을 세우는데 많은 사람들의 힘과 노력이 있었다. 한사람이 성장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가족이나 친지, 지인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장수와 참모들이 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에는 이순신 혼자만 달랑 존재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한 사람이 만들어간 것처럼 간주토록 하는 것이 1인 영웅주의의 이면이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광화문 광장은 시민의 광장이다. 시민의 광장이라는 광화문이 1인 영웅중심의 사관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은 좀 생각해 볼 화두이다. 만약 광화문 광장이 진정한 시민의 광장이 되려면 이러한 1인 중심의 영웅사관에서 탈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글이 현재의 주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는지, 하나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과 국민의 도움과 협력이 있어야 하는 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다른 국가적 과제와 화두를 해결하는데 시민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점은 관광 콘텐츠의 다양성과도 연결될 것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관광객에게도 1인보다는 많은 인물들을 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함께 생각할 거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겠다. 

또한 광화문이나 경복궁도 마찬가지다. 경복궁의 중건을 생각해보자. 경복궁의 위대한 풍모는 충분히 우리의 문화적 유산으로 가치가 충분하다. 그것을 향후 수십 년 간 복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수 있다. 실제적으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당시 백성들의 삶은 정말 황폐해졌다. 당백전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오죽하면 경복궁 타령이라는 노래가 생겨났을까 싶다. 비록 수많은 백성들의 얼굴들을 따로 새겨넣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안내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