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경영 이론과 사고법 100

'가스등 이펙트'(Gaslight Effect)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8. 20. 23:32
'가스등 이펙트' 출간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고전영화 '가스등'에서 잉그리드 버그먼이 연기한 여주인공 폴라는 남편 그레고리의 정신적인 고문에 서서히 질식해간다.

아내 폴라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그녀를 정신병자로 몰고가는 남편이 다락방에서 보석을 찾으려고 불을 켜면 폴라의 방에 있던 가스등이 희미해지곤하는데, 폴라가 이를 이야기하면 남편은 그녀가 미쳤다고 매도한다.

필사적으로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던 폴라는 남편의 냉대에 점점 혼란스럽고 무기력해지지만, 폴라의 이모의 죽음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도 가스등이 희미해지는 것을 봤다고 이야기하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다.

'가스등'에서 남편 그레고리는 뚜렷한 의도를 갖고 폴라를 학대하지만 두 사람이 맺는 인간관계에서 많은 경우는 의도하지 않는 사이에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된다.

미국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은 이런 관계가 만들어내는 병적인 심리현상에 '가스등 이펙트'(Gaslight Effect)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신을 형편없이 취급하는 애인, 상사,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매달리는 피해자와 자신이 부당하게 상대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를 파탄 상태로 몰고가는 가해자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딴 남자들에게 항상 추파를 던진다고 의심하는 애인을 인내하다 점점 까닭모를 죄책감과 자기비하에 빠지는 여성도 있고, 새 상사가 자신을 중요한 결정이나 회의에서 은근히 배제시키고 고객을 가로채려는 것을 눈치챘지만 남들로부터 오해만 사는 직장인도 있다. 또는 다 큰 아들의 옷차림 하나하나를 지적하는 어머니에 대해 은근히 불편함을 느끼는 아들도 있다.

저자 로빈 스턴은 책 '가스등 이펙트'에서 이런 불균형한 관계의 피해자라면 가스등 이펙트가 진행된 단계에 맞춰 현명하게 타인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최악의 경우 관계를 계속할지 여부를 깊이 고민해보라고 충고한다.

랜덤하우스. 신준영옮김. 400쪽. 1만4천800원.
■ 가스등 이펙트 / 로빈 스턴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영화 '가스등'에서 이론 착안 타인의 영향력에 빠져드는

인간관계 병리적 현상 분석 "솔직한 자기의사 표현이 중요"

매사 무관심하고 삶이 활기가 없어 지루합니까. 스트레스로 과식을 하거나 식욕을 잃지는 않았나요. 뚜렷한 이유없이 항상 긴장되고 흥분하거나 쉽게 지치나요.

만약 그렇다면 주변 인물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은 않은지 의심해 봐야 한다. 20여년간 상담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는 로빈 스턴 박사는 '가스등 효과(Gaslight Effect)'라는 이론을 제시하며 인간관계에 숨겨진 병리적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했다.

가스등 효과란 남편 그레고리가 아내 폴라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폴라를 정신병자로 몰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1944년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영화 '가스등'에서 따 온 말로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 조종당하는 병적인 심리현상을 의미한다.

저자는 리더십교육 등에서 만난 여성들이 업무에서는 높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능력없고 현실감각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 가스등 효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라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가스등 관계는 항상 두 사람의 역할이 존재한다. 또 상대방을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그 사람의 영향력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할 때만 발생한다.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남편이나 연인, 혹은 탁월한 능력의 직장상사 등이 상대 배역일 수 있다.

상대방의 영향력은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하다가 점차 상대방의 영향력이 자신의 사고를 조정하고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단계로 변해간다. 저자는 상황이 악화되는 전형적인 양상을 3단계로 구분했다.

첫번째 단계는 불신. 상대에게 무의식적으로 조정당하는 일은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비난으로부터 시작된다. 상대방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를 파고 들거나, 타인과의 비교도 서슴지 않는다.

두번째 단계는 자기 방어. 상대방의 비난이 커지면 방어 본능을 느끼게 되는 과정에 접어들게 된다.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방은 증거를 찾고 그가 잘못을 인정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심한 말다툼도 하게 된다.

3단계는 억압.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러 상대방이 옳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그래야만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심신은 지치고 본성을 점차 잃어가고만다.

가스등 효과로 인한 증상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별 문제가 없는 데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간단한 결정도 혼자서는 내리기 힘들어 한다. 또 상대방과의 갈등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3단계까지 발전하는 데는 상대방은 물론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타인이 영향력을 뻗치기 전에 의사표시를 명확하게 했다면 2단계, 3단계로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 

저자는 상대방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노하우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자신의 감정과 먼저 통한 다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 같아도, 피할 수 없는 심리적 억압과 복종

'가스등 이펙트'

로빈 스탠 지음ㆍ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 발행ㆍ400쪽ㆍ1만4,800원

“나는 지금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외계인은 마인드 콘트롤 전파로 인류를 조종한다. 인천 부동산은 강남 사람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바로 지금, 웹상에 떠돌고 있는 괴담들이다.

쉬운 말로는 피해 의식이, 보다 정교한 표현으로는 타자의 시선과의 동일시에 의한 자기 검열 시스템이 21세기 한국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20여년 경력의 심리 치료가 로빈 스턴은 그를 두고 ‘가스등 이펙트(gaslight effect)’라고 한다.

제목은 지난해 6월 “서스펜스 스릴러 연극”이라는 부제를 달고 한국에서 무대화 돼 새삼 주목 받은 1944년의 명화 ‘가스등’(잉드리드 버그만 주연ㆍ제 17회 아카데미상 여우 주연상)에서 따 온 말이다. 남편이 아내의 유산을 뺏기 위해 가스등을 껐다 켰다 하며 정신 병자로 몰고 가는 영화 속 상황이 50여년이 지난 지금, 일반적 심리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거듭났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는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향력 때문에 자아 정체감에 혼란을 겪는가’로 치환할 수 있는 문제다. 더욱이 일상에서는 의도와는 상관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돼 버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가스등 이펙트는 인간 관계의 비밀을 드러내 주는 계기다.

암암리에 상대방을 정신적ㆍ정서적으로 학대, 결과적으로 그를 조종하게 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이 말은 기족이나 연인 등 긴밀한 관계, 특히 자녀 양육법에 묻힌 비밀을 캔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부모가 저지르는 정서적 학대를 ‘엄격한 사랑’이나 ‘정당한 성격 형성’ 때문이라고 치부해 온 지금까지의 양육 관행에 책은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진정한 사랑법, 건강한 인간 관계 등에 집중한 기존의 심리서들이 간과한 문제, 즉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 억압과 복종이 유발하는 부작용에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인데 왜 어떤 상대에게는 쉽게 영향 받을까? 자신이 매우 강하고 유능하다 해도, 그들은 이상적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의 인정을 받기 원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으로 상대에 맞장구 치는 습관 역시 같은 이유다. 

완벽한 사람보다 어느 정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족하라, (상대에 반발하는 것은 인정을 받으려는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말다툼에 휩쓸리지 말라, 항상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자각하라…. 책이 제시하는 방비책이다.

책이 궁극으로 제시하는 것은 자신감 넘치는 삶, 협력하는 동등한 인간 관계, 타인을 지배하거나 조종하지 않으려는 윤리적 리더십 등이다. 논의의 설득력은 저자의 임상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 

특히 똑똑한 젊은 여성들이 대개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부지불식간 어느 정도의 정서적 학대를 경험했다고 지적, 부모의 왜곡된 사랑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에서 독자들은 스스로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풍부한 임상치료 경험 덕에 책은 구체적ㆍ실제적이다. 곳곳에 배치된 일련의 체크 리스트들이 말해 준다.

관계 맺음에서 자신이 얼마나 의존적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문항, 지금의 애인은 당신의 ‘매력적 조종자’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체크 리스트,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의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의 대처 양상 등 실제적 접근법을 다양하게 제시, 일상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극복하는 길로 인도한다.

옮긴이 신준영 호남대 교수는 “타인의 영향력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진정한 자아 정체감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 가스등효과

상대를 암암리에 정신적·정서적으로 학대하여, 그사람의 의식까지 조종하게 되는 현상. 잉드리드 버그만주연의 1944년 영화‘가스등’에서 따온말. 

장병욱기자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