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이라는 경제학 용어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97년 세계무역기구(WTO) 통신협상이 타결돼 이듬해 국내 통신시장의 빗장이 처음 열렸다. 허약한 기업 체질 탓에 미국 AT&T나 영국 브리티시텔레콤 같은 다국적 기업과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운 다국적 통신사들이 국내 노른자위 통신사업을 싹쓸이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과 함께 한때 유행어가 됐다.
크림 스키밍은 원래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해 낸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지금은 경쟁자들이 달콤한 부위를 먼저 먹으려고 다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에 너나없이 달려든다는 의미다.
최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수서발 KTX 노선을 코레일의 자회사로 분리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 단어를 다시 꺼냈다. 유 의원은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수서발 KTX와 현재 적자노선이 많은 코레일을 경쟁 붙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 알짜·적자노선을 적절히 섞은 뒤 자회사로분리했어야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크림 스키밍은 통신시장이 주무대다. 이를테면 사업자들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출혈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비용이 적게 드는 ‘단물시장’이기 때문이다. 크림 스키밍이 요즘 들어 의료·교통·복지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무관하지 않다. 의료 민영화의 부작용을 설명할 때도 단골손님이 됐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기업은 돈 낼 여유가 있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할 뿐 경제적 약자는 관심 밖이다. 민간 보험사들이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를 꺼리는 이유도 이에 해당한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운 정부의 KTX 열차는 출발 준비를 마쳤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민영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공공재를 둘러싼 정부의 시장 만능주의는 경계대상이다. 16년 전 통신시장 개방과 함께 제기된 크림 스키밍 우려는 기우로 판명났다. 경제용어는 현상을 설명하는 효과적인 도구지만 시장 예측이 반드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민영화 논란도 제발 기우였으면.
<박문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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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스키밍은 원래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해 낸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지금은 경쟁자들이 달콤한 부위를 먼저 먹으려고 다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에 너나없이 달려든다는 의미다.
최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수서발 KTX 노선을 코레일의 자회사로 분리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 단어를 다시 꺼냈다. 유 의원은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는 수서발 KTX와 현재 적자노선이 많은 코레일을 경쟁 붙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 알짜·적자노선을 적절히 섞은 뒤 자회사로분리했어야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갖출 수 있다는 말이다.
크림 스키밍은 통신시장이 주무대다. 이를테면 사업자들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출혈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비용이 적게 드는 ‘단물시장’이기 때문이다. 크림 스키밍이 요즘 들어 의료·교통·복지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무관하지 않다. 의료 민영화의 부작용을 설명할 때도 단골손님이 됐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기업은 돈 낼 여유가 있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할 뿐 경제적 약자는 관심 밖이다. 민간 보험사들이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를 꺼리는 이유도 이에 해당한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운 정부의 KTX 열차는 출발 준비를 마쳤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민영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공공재를 둘러싼 정부의 시장 만능주의는 경계대상이다. 16년 전 통신시장 개방과 함께 제기된 크림 스키밍 우려는 기우로 판명났다. 경제용어는 현상을 설명하는 효과적인 도구지만 시장 예측이 반드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민영화 논란도 제발 기우였으면.
<박문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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