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궤변으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는 금나라만이 아니다. 드라마를 움직이는 정신적 지주는 바로 금나라와 하우성의 스승인 독고철이다. 수많은 서민을 울렸지만, 궤변의 돈 철학자로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세상을 가르친다. 대신 ‘내가 부자가 된 것은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라고만 하면 된다. 그리고 사채로 번 돈은 좋은 일에 쓰면 된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면 된다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렇다면 대부업계 연예인 광고도 문제가 안 된다. 출연료 중 일부를 이웃돕기에 내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쩐의 전쟁’은 휴머니즘으로 사채업을 포장해 사채업의 제도적 모순을 간과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냈지만, 스스로 움직인다. 사채업도 인간이 만들어냈지만, 인간과는 관계없이 자생한다. 주인공의 착한 마음과는 별개로 실제 사채업은 살아 움직인다. 금나라나 박신양의 이름이 실제 대부업계의 마케팅 수단이 된 걸 보라.
결국 ‘쩐의 전쟁’은 거꾸로 돈이 최고라는 의식을 공고하게 했다. 돈이 없으면 얼마나 사람이 비참한지 여실하게 논증하려 했기 때문이다. 금나라를 통해 사채업을 하나의 도전할 비즈니스 영역으로 부각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공공정책의 모색이 아니라 개인의 보복적 범법의 합리화에서 맴돌았다.
무엇보다 돈으로 살인하는 이들이 사채업자들만일까? 그들보다 더 무서운 금융자본이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을 파멸시키는데도 모든 자본의 죄를 동네 사채업자에게 덮어씌운다. 금나라의 돈에 대한 복수는 더 근본으로 가야 했다.
결국 ‘쩐의 전쟁’도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드라마였다. 초반에 잡음을 일으켜 주목을 받으면 시청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가 사회적 논란거리만 다루면 진보적이라고 자임하는 이들이 박수를 쳐주고, 중간과 결말에 관계없이 좋은 작품이 되는 고질적인 메커니즘이 ‘쩐의 전쟁’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김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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