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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와 ‘인셉션’ 그리고 7.28 재보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8:50

<김헌식 칼럼> ‘이끼’와 ‘인셉션’ 그리고 7.28 재보선

 2010.07.29 13:01

 




[김헌식 문화평론가]박찬욱 감독의 영화 < 박쥐 > 에서 신부 상현(송강호)이 '죄책감' 때문에 목숨을 스스로 거둔다. 신부가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고, 친구를 죽였으며, 뱀파이어의 몸 때문에 다른 사람의 피를 마셔야했기 때문이다. 신부가 아니라고 해도 인간은 자신의 욕망으로 빚어지는 죄의식에 고뇌하는 존재다. 

영화 < 밀양 > 의 죄책감은 자신 때문은 아니었다. 인간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의 죄 때문에 고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애(전도연)의 아이를 죽인 학원장은 스스로 행복감에 빠져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해주었기 때문이다. 신애는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그에게서 매우 불합리한 모순을 느낀다. 이 두 영화는 기독교의 죄의식과 죄책감을 다루고 있다. 대중상업영화에도 죄책감과 죄의식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2010년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영화도 '죄책감'을 다루고 있다. 유해국(박해일)을 마을사람들이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유목형(허준호)과 마찬가지로 해국이 마을 사람들을 죄인으로 대하면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도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유목형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회개하고 죄를 씻기 위해 노력을 하라고 하니 불편해 한다. 결국 그들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영지와 유해국이 그들의 죄에 대한 벌을 내린 셈이 되었다. 영지 그리고 유목형과 유해국이 영화의 중심이라면, 그들의 시각에서 다른 이들의 '죄'가 문제가 된다. 

영화 < 인셉션 > 에서는 주인공 자신이 죄책감에 빠져 있다.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멜에게 자신의 생각을 꿈을 통해 주입하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멜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코브는 자신의 인셉션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항상 그의 의식/무의식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실 이러한 죄의식과 죄책감이 없다면 영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꿈속의 탐험은 얼마든지 다룰 수 있는 내용이지만, 놀란 감독은 주인공 코브의 아내에 대한 죄의식과 죄책감을 자물쇠와 열쇠를 설치했다. 사이토(와타나베 켄)는 코브에게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성공하면 아내 멜(마리온 코티아르)을 죽인 살인누명을 벗겨주고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겠다고 했다. 정작 그가 벗고 싶은 것은 누명보다는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의식이었다. 대기업 상속자 로버트 피셔(킬리언 머피)의 무의식의 방어막을 뚫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멜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멜은 결국 코브의 죄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남의 무의식을 조종하는데 전문가인 코브는 자신의 무의식을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관객이 코브에게 동일시와 감정이입을 하는 이유는 이러한 죄의식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구성을 보면, 인간은 꿈의 존재, 무의식의 세계를 지닌 존재라는 점 때문에 현실과 꿈, 무의식의 관계성에 대해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죄의식과 죄책감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의식과 의식의 영역을 가로질러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보다는 "나는 죄의식이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인간의 최대 화두는 죄의식의 극복에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적 맥락을 관통하는 기독교는 죄책감에서 시작해 죄책감으로 끝나는 종교이다. 인간의 심리를 핵심적으로 파악해서 번성했다. 

영화 < 이끼 > 에서 사람들이 유목형을 따랐던 이유는 스스로 죄의식으로 자신을 맑게 노력하는 가운데,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감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밝히는 것이 중요했다. 유목형이 스스로 칼을 들고 성경 출애굽기와 같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행동을 한 이유는'죄'에 대한 엄격한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선거는 이러한 맥락의 대중 민주주의 장치이다. 투표는 칼이 된다. 

7.28 재보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했다. 여기에는 이러한 죄의식과 죄책감의 심리가 작용했다고 보겠다. 야당은 여당을 공격하는 데만 '올인'했다. 이러한 점은 강자의 태도였다. 사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야당은 강한 입지를 갖게 되었다. 대중의 정서에 의지해 볼 때 이미 강대한 여당에 시달리는 약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야당의 자기반성은 없었다. 여기에서 자기반성은 겸손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허물을 살피며 인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야당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만함을 보였다. 여당의 오만함을 비판했지만 오히려 오만해 보였다. 자신은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는 외면의 대상이었다. 어쨌든 진정성이야 부차적이어도 여당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빛을 보이려 했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에 등을 보인 민심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몇 년간 너무나 자신을 성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심은 이를 심판한 것이었다. 대중영화에서 중요하게 부상한 '스스로의 성찰'과 그를 통한 '삶의 풍요'는 대중의 심리와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