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경영 이론과 사고법 100

‘스탕달 신드롬’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4. 7. 07:30


명작 때문에 혼란을 느끼는 ‘스탕달 신드롬’

정신적 일체감과 격렬한 흥분, 때론 공격성을 보이기도

2013년 10월 31일(목)

 > 융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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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다 다르다. 예를 들어 비너스 조각상을 볼 때, 어떤 사람은 아름답다고 느낀다. 또 다른 사람은 신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 중 일부에서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작품을 통해 황홀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단순히 예술 작품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일종의 엑스터시(ecstasy)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 작품에 심하게 도취되어 정서적 혼란이나 피해망상과 같은 증세를 보이거나, 지나친 황홀경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분열증상을 순간적으로 느끼는 것을 바로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의 일기로부터 시작된 증상이다. 

▲ 르네 마그리트는 작품을 통해 익숙해져 있는 사물과 관습화된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신뢰'.  ⓒ연합뉴스

일반적으로 스탕달 신드롬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뛰어난 예술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충동이나 흥분을 나타내는 말로, 심할 경우에는 분열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스탕달이 ‘베아트리체첸치’를 감상하고 나오던 중,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감을 느꼈던 것을 일기에 쓰면서 유래되었다. 

단순히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거나 정신적 일체감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격렬한 흥분이나 감흥을 느끼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우울증, 현기증, 위경련, 전신마비 등 각종 분열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훌륭한 조각상을 보고 모방충동을 일으켜 그 조각상과 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게,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한 사람들은 작품 앞에서 불안과 평화를 동시에 느끼는 양가감정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마다 스탕달 신드롬에 따른 증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스탕달 신드롬이 단순히 미술 작품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문호의 문학작품이나 유명한 사람의 전기(傳記)를 읽고 이러한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스탕달 신드롬을 보이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로, 증상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위대한 예술품, 파괴 충동을 일으키기도 

단순히 예술품을 보고 나서 감동을 느끼거나 황홀경에 빠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위대한 작품을 보면 참을 수 없는 파괴 욕구가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이자 미술사가인 그라지엘라 마게리니 박사팀의 연구 결과이다. 

연구팀은 플로렌스의 아카데미아 갤러리에서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조각상인 ‘다비드’를 보러 온 관람객을 관찰한 결과, 10명 중 2명은 때때로 억누를 수 없는 파괴 충동을 보인다고 밝혔다. 완벽한 남성상을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이 조각상 앞에서 사람들은 황홀감을 느끼다가 점차 초조함, 공격성, 파괴 충동을 느끼고 결국 패닉상태의 공격성으로 변해갔다는 것이 그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다비드 증후군’이라고 칭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은 폭언을 퍼붓는 등 맹렬한 공격 행태를 보였고, 실제로 1991년에는 한 예술 파괴자가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망치로 다비드상의 발을 내려친 적이 있었다. 

이는 단순히 관람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감정이 아니다. 과거 미켈란젤로 역시 자신의 작품 일부를 파괴하곤 했다. 이러한 파괴 욕구는 창조와 파괴 사이에 존재하는 잠재 의식일 뿐만 아니라, 성(性)이나 죽음과 같은 내면의 깊은 두려움과 욕망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여성들은 다비드상에 대한 강한 성적 충동을 느끼기도 했으며, 35세에서 40세 사이의 남성들 역시 다비드상의 근육미에 매력을 느끼는 동시에 흥분을 하기도 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다비드 증후군과 스탕달 신드롬은 작품으로 인해 감정이 뒤흔들린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Ceci n'est pas une pipe”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도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고 그로 인해 그 예술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느정도 예측하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들은 사람들의 이러한 기대를 뒤집는 결과물을 만들기도 했다. 르네 마그리트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이 그러하다.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은 잘 알려져 있는 ‘이미지의 배반’이다. 이는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미지의 배반’은 파이프 하나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자칫하면 이 말이 모순어법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림은 파이프의 이미지일 뿐이지, 파이프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 속 텍스트 역시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를 그린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처럼 예상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의 관습을 깨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마그리트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덧붙여 놓은 것이다. 

이렇게 먼저 상식적인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예술 작품도 있다. 익숙해져 있는 사물과 관습화된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고 뜻하지 않은 충돌을 작품 속에 펼쳐 놓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와는 다르게, 마그리트의 작품에서는 낯섦과 수수께기 같은 의문을 만나게 된다. 

모든 예술작품을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보는 것은 아니다. 예술 작품에 따라,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작가에 따라 다른 감정을 갖고 예술 작품을 보게 된다. 분명한 것은 예술 작품을 통해 일반적인 감정 이상으로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슬기 객원기자 | justice0527@daum.net

저작권자 2013.10.3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