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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프레지던트? 장진 식 대통령론의 한계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0. 29. 11:01

드라마 <이산 정조>가 한참 방영될 때, 달라진 사극속의 군주 캐릭터가 화제에 올랐다. 군주는 더 이상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는 것. 군주는 사랑을 욕망하고 번민 존재이며 로맨스와 멜로의 한가운데 있었다. 현대인이 성공을 꿈꾸듯이 군주는 석세스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고군분투의 존재이기도 했다.

군주는 한나라의 최고 권력자로 자신이 가진 힘을 과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조직의 리더일 뿐이었다. 조직의 리더는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조직을 이끌어가야 하는 막강한 책임의식과 부담감이 주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전보다 군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역학이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 기울어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대통령을 담고 있는 문화콘텐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는 할리우드 영화들이다.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우선,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 1995)과 같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대통령에 접근하는 분류가 있다. 대통령 앤드류 셰퍼드(President Andrew Shepherd: 마이클 더글러스 분)는 환경문제 전문 로비스트인 시드니 웨이드(Sydney Ellen Wade: 아네트 베닝 분)에게 사랑에 빠지고 만다. 대통령은 홀로 딸을 키우는 아빠로 등장해서 로비스트와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와 비슷한 한국영화로는 ‘피아노 치는 대통령’(The Romantic President, 2002)이 있다.

다른 분류로 영웅형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 통상적인 정치 혹은 국정리더와는 차별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1996)의 경우, 외계인의 침입에 맞선 대통령이 단순히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전투기를 몰고 싸움에 나선다. 에어 포스 원 (Air Force One, 1997)에서 대통령역의 해리슨 포드는 악당들과 대결하는 액션 영웅이었다. 미국 영화 사이트 ´무비폰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가장 멋진 대통령에 해리슨 포드가 뽑혔다.

세번째로는 차분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통령 유형이다. ‘딥 임팩트’(Deep Impact, 1998)에서 대통령 역의 모건 프리먼은 흥분이나 지나친 기대감을 부여하는 오버액션을 하지도 않았고, 절망적인 분위기에서도 침착함을 잃지도 않았다. 이런 대통령 영화들은 현실의 대통령보다는 대통령에 투영된 대중심리가 더 중요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는 이러한 심리와는 관계없이 작가주의적 작품도 있다. 올리버 스톤의 ‘닉슨’(1995), ‘JFK’(1991), ‘W’(2008)은 대통령을 다루었지만 이런 영화에서는 대중심리와는 관계없이 사(史)적 리얼리티와 그에 관한 직접적 해석을 강조했다. 론 하워드의 ‘프로스트 VS 닉슨’도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에서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도 이러한 분류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개봉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위와 같은 유형들을 적절하게 섞으면서 대통령에 대한 대중심리를 담으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史)적 리얼리티는 융합된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여당과 야당, 민주화 세력, 산업화세력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하면서 그것 사이에서 인간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재구성하려 했다. 재구성 속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은 이러한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는 대중적 심리의 공약수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세 명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늙은 대통령 김정호(이순재)는 민주화운동을 한 경력을 지녔고 겉으로는 근엄한 이미지를 품고 있지만, 사실은 인간적인 면이 많은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더구나 기부하겠다는 약속 때문에 복금 당첨액 244억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그는 전액 기부하면서 소박한 살림살이만 지닌 채로 퇴임한다.

차지욱(장동건)은 젊은 꽃미남 대통령이다. 그는 젊은 대통령답지 않은 강한 민족주의자다. 영화 '한반도'의 대통령을 보는 듯 하다. 남북한의 신뢰를 우선하고 일본에게는 강력하게 “우리는 굴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굴욕의 정치는 하지 않습니다!”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더구나 시민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 시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짝사랑하는 여성에게는 한없이 약한 남자이며, 긴장을 하면 방귀를 뀌고, 주사기를 무서워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한경자(고두심)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조화와 균형감각을 통해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한다. 하지만 속을 썩이는 남편의 아내이다. 최창면(임하룡)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청와대에서 술판을 벌이거나 귀농을 꿈꾸며 산 토지가 정치 스캔들로 비화되면서 이혼선언에 이르는 과정은 인간적인 설득력을 갖는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이렇게 대통령 개인의 인간적인 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치권력적인 측면에서 거리를 두면서도 대통령을 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선망의식을 은근히 자극한다. 그들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도 다시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올 뿐 정치적 역학 속에 있지 않다. 인간적이고 서민적이며,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위해 참 성실하게 살아낸다. 그들이 시민이다.

어떻게 보면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대통령들이다.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우리가 대통령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여기는 것보다는 특별한 존재로 행동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자칫 이 영화는 팝콘영화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캐릭터에 시민적 호응이 크다면, 현직이나 잠재적 대통령에 임할 인물들이 참조해야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에서 보듯이 대통령직은 한시직이고, 그 자리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교체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대통령 3명의 교체를 통해 권력무상의 메타포를 보여주고, 대통령은 절대적 존재가 아님을 드러낸다. 특히 대통령은 교체되어도 청와대에 남아 있는 요리사를 통해 이를 부각시킨다. 절대 권력화에 대한 환상을 거두라는 메시지다. 자칫 영화에서 그리는 대통령 캐릭터와 그들의 행보가 미국식 대통령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과 대통령직을 향한 과잉의 사회문화 풍토가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집어내기도 한다.

최근 대통령에 관한 문화콘텐츠들이 연극, 출판, 영화, 방송에 등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인간적인 면이 있겠지만 정치적 역학 속에 있고, 최고 정책가의 수장이다. 그것이 일반 시민이나 국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너무 인간적인 면에 치우치거나 연성화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시 대통령 집권기에 대통령을 반영하는 영화들이 그의 정책적 행보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국정운영을 잘 좀 하라는 뜻이다. 짚어내고 드러내야할 점은 지적하는 것은 비단 대통령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과 국민을 위한 것이다.

한국사회같이 대통령도 마음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사회, 아니대통령은 커녕 정부를 비판했다고 입을 막고 잡아들이고 언로를 막는 사회가 민주주의 성숙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다. 아니 지금 여야 대통령을 뒤섞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일까.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등을 뒤섞어 무엇을 하겠다는 겐가. 지금 현실 정치를 대폭 까대도 풀리지 않을 판에. 장진식 입담이 허허로운 이유다. 지금 우리가 그런 영화에 빠져 있을 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