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교차상영논란 흐지부지?-집행자 대신 2012 왜 보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1. 27. 10:21

영화 <2012>는 희생을 바탕으로 국내 개봉되었고 파죽지세로 관객을 모으고 있다. 피(?)를 먹고 흥행에 성공한 셈이 되는데, 그 ‘희생’이란 나름 아닌 작은 영화들을 교차상영으로 몰아내고 유리한 시간대를 확보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집행자>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두 영화는 희생이라는 키워드로 범주화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는 여운은 많이도 다르다. 두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결국 퐁당퐁당 상영(교차상영)의 폐해와도 연결된다.

 

영화 <2012>는 인류 대부분을 희생시키고, 최후의 노아의 방주를 탄생시킨다. 그 가운데 자기 헌신과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인류 멸망이 인류의 잘못과는 관련이 없다. 오로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지구에 재앙이 닥치고, 멸망에 이른다.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그린 정책과는 거리가 멀어서 이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멸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강렬하게 자극하는 시각적 효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 엄청난 제작비의 대부분이 특수효과에 투여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희생의 가운데 부각 된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이 자기 땅이라고 하는 티벳의 높은 산악지대가 인류 최후의 노아방주가 만들어진 곳이었고, 첨단 노아의 방주를 만든 이들도 중국인이었다.

 

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두고, 집단주의적 속도주의라며 비꼬기도 한다. 또한 티벳에 대한 선망의식만 있었고, 그들의 현실적 고통은 외면하면서 중국의 손을 들어준 듯 했다. 그것은 오바마가 티벳이 중국의 영역이라고 인정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들의 정신적 우월은 인정하지만, 영토는 중국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티벳 정신의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수많은 티벳인들의 가치가 격하되겠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른 영화는 결국 애초에 기대감이 충만했던 시각적 효과를 뒤로 허허로움을 남긴다. 그것은 너무나 거대하고 추상적이며 황망한 소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처절한 인류의 생존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감이 없다.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스케일은 전지구적이지만, 화두가 무엇인지 불명확하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가족애와 인류애를 발휘하는 주인공들의 용기 있는 행동 정도 일것이다.

 

영화 <집행자>는 인류의 생존이라는 거대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개인의 생명 문제를 다루지만, 전지구가 아닌 작은 교도소를 배경으로 지금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인 화두를 전해주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다.

 

영화 <집행자>에서 연쇄 살인범 장용두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자살을 시도 한다. 영화 <집행자>는 정남주의 자살을 예견한 듯싶다. 다만, 그 자살의 동기는 다를 수 있겠다. 불안이나 두려움 때문이냐, 아니면 자기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냐가 다른 것이다. 교도소 측에서는 필사적으로 살려낸다. 그 이유는 연쇄 살인범의 사형을 하루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같은 날 세 명의 사형이 집행되는데, 나머지 두 명은 사실상 장용두의 들러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흉악범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방하기 위해 10여년 이루어지지 않은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형의 집행이 정치적 선택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요컨대, 영화에서는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정권의 태도, 의지 때문에 정작 사형의 주인공(?)인 장용두가 스스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살려내기에 이른다.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려내는 아이러니한 상황. 더구나 나머지 두 사람이 집행된 상황에서 정작 연쇄 살인범 장용두가 교수형 집행의 미비로 살아난다면? 영화 플롯의 핵심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안 죽고, 다른 이들이 사법제도의 희생이 되는 현실이랄까. 이 때문에 사형제도의 불합리성이 드러난다.

 

또한 영화에서는 교도관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를 들어 사형제도의 불합리성을 드러내려 했다. 죄가 없거나 죄를 회개한 사형수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어 사형제의 불합리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흉악범에 대한 처벌의 중요성도 부각시키지만 결론적으로는 그것이 반드시 사형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도 들어있다.

 

영화 <2012>는 3000억 이상의 제작비를 들였다. 영화 <집행자>는 12억의 제작비를 투여했다. 영화 <2012>는 황당스러운 멸망론에 근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환경오염에 따른 재앙과는 거리가 멀어 우리가 할수 있는 수단은 적다. 사회적 지위가 세계적으로 높거나 돈이 아주 많아 티켓을 사거나 모험과 의협심이 강해 온갖 어려움을 돌파하고 미국에서 티벳 정도를 횡단해야 한다. 여기에 대형비행기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직접 조종할 수 있거나 조종사들을 고용하고 있어야 한다.

 

영화 <집행자>는 사형제 폐지 논란과 연쇄살인의 공포가 가시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현실적인 고민의 주제다. 물론 스펙타클한 오락영화의 효용성은 지니지 못한다. 보고나면 유쾌하지도 않다. 때로는 머리가 무거워지고 마음이 먹먹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희생 앞에 진지한 고민과 갈등을 하면서 제도의 불합리함과 실행의 신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인류가 멸망하는 상황에서 매우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지니는 영화 <2012>에서 현실은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린다. 현실을 쉽게 포기하는 영화가 스크린을 장악하고, 수많은 자본을 모아가는 현실에서 영화적 고민도 무너져 내리겠다.

 

요컨대, 관람 뒤에 여운이 남는 것은 영화 <2012>보다는 <집행자>다. 영화 <2012>가 전국 2185개 스크린의 3분의 1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교차 상영의 폐해다. <트랜스포머2>는 교차 상영을 포함해 1219개로 58% 점유율을 자랑했다. 이 때문에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룬 작은 영화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2주 정도는 의무 상영을 제도화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 말하는 해외겨냥 예술영화 개봉 지원이나 작은 영화 쿼터제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작은 영화관들이 매우 많이 만들어져야 하며 이는 서울 중심주의를 벗어나 지방까지 자리를 잡아야 한다. 민족주의 정서라든지, 문화산업적인 측면에서 국내 영화 산업을 보호해야한다는 논리만 강변하는 차원이 아니다. 무조건 채권법상의 계약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라며 관계당국에서 발뺌하기에 감각적이기만 영화의 쓰나미가 주는 황폐함은 크다.

김헌식 코리아콘텐츠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