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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해신’이 알게 모르게 고구려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홀대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중문화비평가 김헌식씨가 한 인터넷 매체에 쓴 ‘드라마 해신은 반(反)고구려’라는 글에서다.
“주인공인 장보고가 당나라에 충성을 다해 이사도의 제나라 군대를 토벌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며 그들의 군상이 되는 설평상단 쪽을 선한 쪽으로 그리고 있다.
반면에 고구려 유민 출신의 이도형과 염문은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란군에 협조하는 악당쯤으로 그려진다”는게 그의 논지다.
김씨는 “드라마가 이사도의 싸움을 단지 당나라에 대한 반란 정도로 그리고 장보고가 이들을 토벌한 것이 옳은 것으로만 그리는 것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줄 우려가 있다”고 썼다. 이를 놓고 네티즌들 사이에도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장보고는 반고구려 친당, 즉 반민족주의 사대주의자인가? 한마디로 규정짓기가 쉽지 않다. 장보고에 관해 기술한 사료가 거의 없는데다 원작인 최인호의 소설에도 없는 부분이다.
‘삼국사기’에는 간략한 내용만이 있고 그나마 당나라인 두목이 쓴 ‘번천문집’(‘신당서’의 장보고 관련 내용은 ‘번천문집’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의 ‘장보고 정년전’에서 장보고의 활약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정도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한다. 장보고가 활동한 9세기는 민족주의 국가 개념이 희박했다.
장보고가 당의 서주 무령군소장이라는 군직에 올랐다는 사실은 사서에 나온다.
무령군의 주요 임무는 당 조정에 반기를 든 평로치청의 번수 이사도가 이끄는 평로군을 소탕하는 일이었다.
이사도는 고구려가 망하고 난 뒤 당나라에 끌려간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손자다. 이정기는 산동반도 일대를 중심으로 10만 대군을 거느리는 최대의 번진으로 성장해 당 왕조를 위협했다. 이정기-이납-이사고-이사도 3대를 걸쳐 53년 동안 하나의 소왕국을 이루어 군림했다.
그러나 이사도에 오면 고구려의 후예라는 이미지가 상당히 희박해진다. 참모들은 거의 중국인으로 채워진다.
강일수PD는 ‘장보고가 이사도의 평로군 진압에 나선 것은 당의 벼슬아치라는 점 외에도 재당 신라인의 저력을 보았고, 이정기 일가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라는 데 주목한다.
이는 장보고가 이사도를 진압한 후 재당신라인(고구려와 백제 출신들도 포함) 사회에서 대중적 인기와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된 데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산동반도 일대에는 신라인의 집단거주지인 신라방이 있었고, 이곳에 장보고가 건립한 적산법화원은 신라인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했다.
‘해신’은 이런 대중적인 인기와 신임을 통해서 장보고가 재당신라인 사회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고 국제 해상무역가로 성공한 것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해신’을 단순히 반고구려 드라마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강 PD는 “‘해신’에는 어떤 가치를 집어넣지 않는다. 이사도의 비중은 크지 않고 장보고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드라마”라고 말한다.
극중 당의 신임을 얻은 장보고(최수종)는 재당신라인으로서는 최고 관직인 ‘무령군 총관’이라는 벼슬을 당의 절도사로부터 제의받지만 거절하고 귀국한다.
앞으로 ‘해신’이 그릴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한 후 재일신라인과 청해진, 그리고 재당신라인을 연결하는 일련의 무역망을 구축해 해상왕국을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장보고는 하버드 대학의 라이샤워 교수가 ‘해양상업제국의 무역왕’으로 평가했듯이 당시 동아시아 질서를 가장 잘 파악한 국제적인 감각의 소유자였다. 한류의 원조쯤 될 것 같다.
교민(재당신라인)의 유대에도 앞장 선 장보고는 당시 ‘한민족리포트’ 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섭외 1순위였을 것이다.
그는 진정한 한류스타이자 코스모폴리탄이었다. 드라마 ‘해신’의 지향점도 동아시아주의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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