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국가 만들기/코로나 19 이후 뉴노멀

현재의 코로나 19와 문화예술의 미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1. 6. 17. 13:05

현재의 코로나 19와 문화예술의 미래

 

위기는 모순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기존에 내재 되어있던 사회 모순들이 더 크게 드러나는 법이다. 단순히 드러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위험에 노출시키고, 그로 인한 타격은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 양태가 있다. 평등하지 않은 적용, 가장 약한 고리에 있던 이들이 크게 피해를 본다. 겉으로는 강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약자 였음이 드러나고는 한다.

 

코로나 19는 모순을 새롭게 불러오기보다는 가려져 있던 것을 드러내 주었다. 우리가 그러란 모순은 미처 파악하지 못했거나 애써 간과하여 왔을 뿐이다. 이제 코로나 19로 인해 그러한 모순을 인지했다. 이 때문에 슬프게도 그러한 인지 상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점이 강했다. 몇 주만, 아니 몇 달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견디면 과거 다른 감염병처럼 얼마간 견디면 아무일 없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덧 1년이 더 지났고 백신 접종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지만, 코로나 19 상황이 일시에 좋아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때도 한순간에 해결되지 않았고 백신이 개발되었음에도 몇 차례 재확산이 있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세계 여러 나라 수많이 사람들이 죽어가면서도 원인을 몰랐을 뿐이다. 하지만, 21세기 세계인들은 코로나 19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낯선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규범)'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중국은 뉴노멀 대신 신창타이’(新常態)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는 새로운 정상상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뉴노멀과 신창타이를 좀 비교해 보면 뉴노멀에서 표준이라는 말이 주로 경영적인 측면을 생각할 수 있다면, 정상상태는 좀 더 큰 전 사회 내지, 국가적인 상태를 말할 것이다. 하지만 뉴노멀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전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러한 뉴노멀은 문화예술계에도 어김없이 들이닥쳤다. 비록 경제용어에 불과했지만, 코로나 19가 불러온 위험 때문에 사회문화 전체에 퍼진 말은 언택트(Untact, Un+Contact)였다. 이는 본래 매장에서 직원과 접촉하지 않고 물건을 주문하고 받아가는 시스템에서 연원 했기 때문에 무인 판매 정도의 개념이었지만, 코로나 19 때문에 사회적으로 크게 확산이 되었고 이는 문화예술계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기준에 대한 담론들이 많이 돌았지만, 과연 그것이 새로운 표준인지 성찰이 필요했던 점은 분명했다.

 

2020년 봄, 코로나 19 팬데믹이 일어나자 세계적인 클래식 공연단체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공연영상을 무료로 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것이 새로운 표준이라고 생각했던 듯싶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고 아니어야 했다. 우선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베를린 필하모닉은 폰 카라얀 이끌던 1960년대 후반부터 최신 동영상 600여 편을 온라인 콘서트홀에서 무료로 이용하게 했고,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도 매일 오페라와 발레 한 편씩 24시간 동안 무료로 온라인에서 제공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2007~2018년 공연됐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연대의 딸’, ‘유진 오네긴등을 매일 한 편씩 볼 수 있게 편의를 제공했다. 단지 가지고 있던 자신들의 영상 콘텐츠들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단은 '백조의 호수'의 무관중 생중계 공연을 했다. 해외 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이 보유한 공연 영상 콘텐츠만이 아니라 무료 공연 스트리밍 서비스에 들어갔다. 클래식만이 아니라 국악도 마찬가지였는데 서울돈화문국악당 등은 취소된 공연들을 온라인에 생중계했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계기 효과이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잘 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애호가들에게도 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데, 그간 직접 공연장에 가서 봐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관객이라면 더욱 필요했다. 다른 하나는 이런 기회를 통해서 전체 외연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매우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제3세계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이를 통해서 코로나 19 이후에 다시 공연장에 찾아오거나 월드투어 등의 행사에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19 상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더구나 한 국가가 방역에 성공한다고 해서 종식될 문제도 아니었다. 어느새 우리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세계화의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세계화의 역설이라고 하는 것에 지나침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지독한 편견 하나가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무시하고 있었다. 온라인 시대에 스스로 문화예술에 대한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클래식의 모순이라고 하면 자기 비하적일 수도 있었다. 이런 점은 거꾸로 항상 문화 예술적으로 비하를 당했던 팝 음악과 대비되면서 일어났다. 그것도 아이돌 음악으로 치부되었던 K-팝을 통해서 말이다. 연합 프로젝트 그룹 슈퍼엠은 영화 어벤져스의 주인공들처럼 위기에 빠진 팬들을 구해내려고 한 모양이었다. 온라인 공연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 공연을 전격 스트리밍했는데 인터넷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유료였다. 누가 과연 유료 공연을 그것도 고품격 클래식이 아니라 팝 공연을 볼까 했는데 109개 국가에서 75000명이 동시에 접속했다. 이후 NCT 127104000여 명, 슈퍼주니어는 123000여 명이었고, 매회 20억 원대의 수익도 없었는데 심지어 슈퍼주니어는 40억 원대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는 그 뒤에 방탄소년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곧 그들은 방방콘 더 라이브을 선보였고, 요금 체계는 세밀해져서 유료 관객 75만 명이 몰려 257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뒤이어 10월에 열린 방방콘 더 라이브191개국에서 약 100만 명이 봤기에 티켓 수익만 약 500억 정도라고 추산할 수 있었다. 이로써 세계적인 팝 가수 레이디 가가, 빌리 아일리시, 폴 매카트니, 엘턴 존 등이 글로벌 온라인 콘서트 투게 더 앳 홈에서 모은 수익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사이 한귝의 뮤지션들은 세계 최초로 온라인 유료화를 성공시켰다. 이런 성과를 보이자 국내외 클래식계는 유료 공연을 앞다투어 선을 보였고 심지어 뮤지컬 공연도 온라인 유료 공연에 동참했다. 특히, 온라인 공연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더 이상 재주 넘는 곰은 따로 있고 왕서방이 돈을 차지하는 구도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한() 서린 열의였다.

 

하지만, 온라인 공연의 대응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는 온라인 공연에 상당히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왔기 때문에 코로나 19 상황이 전개되면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한국의 비욘드 라이브 공연도 한국 대형기획사가 10여년 정도 홀로그래픽 기술이나 증강현실,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한 공연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즉각 대응이 가능했다. 이러한 성과는 앞으로 독자적인 공연 콘텐츠로 실제 무대 공연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낳았다.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 증세나 피로증이 가중되면서 문화예술콘텐츠의 중요성이 부각이 되었고, 마음 방역의 실효성이 더욱 언급되었다. 그렇기에 언택트 대신에 온택트라는 개념이 부상하기도 했다. 온택트(Ontact)UntactOn의 결합 단어로 온라인으로 접촉 측 연결되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언택트는 비대면의 분리된 상황을 말하지만, 온택트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에 문화예술 향유에서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정한 성과와 긍정적 전망이 있지만, 그 한계도 확연해 보였다. 중소공연 기획사들이나 극단, 연주단체들은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온라인 스트리밍을 할 수 있도록 중소문화예술단체들이 요구하고 나서기에 충분했다. 공공영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세종문화회관같이 대형 국공립공연장에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일반 공연장에서는 불가능했다. 케이 팝의 경우에도 기존 팬들이 집중적으로 성원과 지지를 보내기 때문에 가능한 유료 온라인 콘서트였다. 물리적 공간에서 이뤄지는 투어공연의 경우, 각 공연장에서 같은 공연을 할 수가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같은 컨셉과 레퍼토리의 공연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SM이나 빅히트처럼 규모와 시스템을 갖춘 기획사의 가수들은 온라인 공연을 할 수가 있지만, 작은 소속사를 둔 이들은 힘든 면이 있으며 특히 이제 막 알리는 신인의 경우에는 코로나 19의 파고는 너무나 높기만 하다. 실제로 코로나 19 때문에 한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1 해외한류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1년 전과 비교해 관심이 늘었다는 응답 비율이 36.6%이었는데 이는 전년 조사와 비교할 때 9.9%P 떨어진 수치였다. 원인을 따져보면, 케이팝(K-Pop) 현지 공연 등 각종 한류 콘텐츠 관련 오프라인 행사가 취소되어 그런 점들이 전체적인 관심도가 떨어지는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되었다. 결국, 물리적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점은 홀로그래픽 콘텐츠가 왜 코로나 19 이전에 확장성이 없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역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말이 맞았다. 기술복제의 시대에 결국 아우라(Aura)가 있는 대상을 찾게 되어있다. 디지털 시대에도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가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아우라가 있는 진품에 대한 열망을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태는 결국 직접 경험을 더욱 열렬하게 욕망하게 만들고 있다. 영화 승리호가 개봉되었을 때도 마찬가지 욕구가 일어나는 현상을 충분히 인지할 수가 있었다. 260억의 제작비에 홍보비 등 더하면 300억이 훨씬 넘는 비용의 영화 승리호2020년 개봉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고 마침내 넷플릭스 행을 선택했다. 아울러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했고 2021년에 대거 개봉해 혈투를 벌일 예정인 상황에서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무엇보다 영화 승리호의 경우, 직접 영화관에서 본다면 시각적 효과와 음향 효과가 뛰어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즉 아무리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의 회원가입이나 조회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영화관이 전해줄 수 있는 맛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연장이나 극장에서 집단 감염된 사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방역당국은 처음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하게 적용했다. 그렇기에 많은공연들이 열리지 못했고 열린다해도 무리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적용으로 적자가 볼 보듯 훤했다. 이 때문에 소규모 극장뿐만 아니라 대형 멀티플렉스마저도 일부 상영관을 닫거나 전체 인원을 구조 조정하기도 했다.

 

공연장을 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시민들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각 방송사들의 시청률이 난데없이 올랐다. 특히 수혜를 본 것은 트롯 관련 프로그램들이었다. 더구나, 영화 촬영이나 콘서트 무대 출연이 제한된 가수, 배우들이 대거 음악 프로까지 진출했다. 방송국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해서 이를 마다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예인들의 노동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자발적인 침묵이 더욱 강화되었다. 더구나 트롯 사례처럼 우려먹기 콘텐츠가 많아졌다. 이런 와중에 그렇게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던 넷플릭스도 소진되고 있고, 영상을 섭렵한 이들이 책으로 돌아와 출판 시장도 조금씩 살아나는 형국이 되었다.

 

결국, 온라인 비대면 혹은 온택트 이용이 증가한다고 해도 물리적 공간으로 융합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육체를 지난 체험적 성취감을 정체성으로 갖고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공간으로 돌아오라면 사회적 거리두기부터 다시 성찰해야 한다. 본래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는 의학적이거나 방역 과학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기계적으로 적용이 되었고 문화예술계에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에 본래의 개념을 다시 짚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Robert E. Park)1924년에 만들어낸 사회학 개념일 뿐이다. 그는 1.2미터에서 3.6미터 이내를 사회적 거리로 1.2미터는 친구 지인의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라고 했으며 3.6미터는 공적 거리(Public Distance)라고 했다. 친밀성 정도만 있지 바이러스 전파 범위와 관계가 없다. 예컨대 특정 공간에서 함께 노래를 부른다면 거리에 관계없이 모두 집단감염에 노출되기 쉽다. 하지만 공연장이나 극장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연만 관람할 때 문제가 있을 수는 없다. 일률적으로 비과학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문화예술계의 피해는 막대했다. 이러한 정책의 수준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태도 때문에 기인한다. 하지만, 코로나 19 는 생활문화 공간 깊숙하게 들어와 있기에 일상의 자율적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자영업자들이 비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방역 조치에 집단적 반발을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행정소송 등에서 정부가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자명했다. 이는 문화예술계에도 같이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는 자영업자들보다도 더 세가 적고 대변하는 정치적 세력도 미약하다.

 

애초에 필요했던 것은 정확한 전염 환경과 역학에 대한 연구와 조사였다. 이에 대한 예산 배분이 이뤄져야 했지만, 단기적 피해에 대한 대출이나 지원금에 정책적 가용자원을 투입한 것은 미흡한 일이었다. 독일은 이런 점에서 남달랐다. 지난해 10월 독일 할레의과대학 연구팀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실내 콘서트를 열고서 감염병 확산 비교 연구를 했다.

 

1400명이 참여한 세 번의 실험에서는 심지어 24명의 감염자를 직접 참여시켰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관객들이 자기 자리에 앉고 마스크를 잘 쓰며, 환기시스템을 잘 운영하면서 앉은 자리에서만 취식해도 감염 위험이 없었다. 다만, 관객이 드나드는 출입구를 많이 만들수록 감염의 위험이 적었다. 20211, 독일 프라운호퍼 하인리히 헤르츠 연구소(FHHI)도 콘체르트하우스 도르트문트에서 실험에서도 한 칸씩 좌석을 띄우고 환기시스템을 잘 작동시키면 감염 위험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20분마다 중앙환기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지그재그로 한 칸씩 띄어 앉기를 하면 에어로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실험에 사용되는 마네킨은 인간보다 네 배나 많은 에어로졸을 뿜었는데도 말이다. 연구진은 1550석을 모두 채워도 감염 확률이 낮지만, 이동 경로와 로비 접촉을 줄여야하기 때문에 절반만 채워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공통적으로 고정적인 자리가 아닌 스탠딩 공연은 위험했다. 일본 NHK와 보건 전문가들의 실험에서 손바닥에 기침을 한 경우 30분 내에 뷔폐 식당 공간 집기는 물론이고, 그 안을 전부 감염시켰다. 이렇게 이동간 공용물건 접촉은 위험한데, 공연장에서는 오로지 관람 그 자체에 집중하고, 접촉을 억제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자리씩 띄어 앉기나 지인들은 붙어 앉는 방역 원칙에서 맴돌았다. ‘보몰(Baumol)의 법칙을 언급하지 않아도 공연은 고비용이 들고 일정한 관객이 있어야 운영/경영이 가능하다. 코로나 19의 장기 상황에서 무엇보다 적정 인원수 등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에 지원이 필요했다. 독일 할레의과대학 연구팀은 관련 연구에 작센안할트 주정부 등이 99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13억 원이 지원받았다. 독일 정부는 앞의 실험 내용에 따라 지난해 10월 박물관과 극장 등 실내시설 환기시스템 개선 예산 58,000만달러(6,580억원)을 지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공연장의 환기 시설에 대한 지원 논의도 없다.

 

꽃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낙관하며 활동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문화예술인들이 원하는 것은 작품 참여와 발표의 기회이다. 존재의 이유가 그것에 있고, 생계는 그 연장선이다. 단지 생활비를 지원한다고 그들의 희망과 생계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예술인만이 아니라 예술경영자들의 처지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것은 방역수칙을 지키고, 자율적 방역 적응력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방역 데이터에 근거해서 방역 지침을 결정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국가의 방역 정책이어야 하며 문화예술을 국민에게 코로나 블루를 치유할 수 있는 힘으로 선순환될 수 있게 할 것이다. 흔히 인간은 과거의 행태를 합리화하며 미래에 대한 근본적 도외시하다가 파국을 맡고는 한다. 이른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의 성향이다. 지난 1년간은 뼈를 깎는 인내와 고통 감수를 통해 견디어 왔지만, 앞으로는 지난 방식으로 지탱할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이제 문화예술의 뉴노멀을 부르고 있다.

 

글/김헌식(문화콘텐츠학 박사, 카이스트 미래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이글은 월간 '문학 사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