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티파니 가슴 터치론과 팬 노이즈 마케팅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12. 22:34

-성은 권력인가?

‘폭로’(Disclosure, 1994)에서 남자는 성희롱을 당했다는 누명을 쓰고 위기에 빠져든다. 불교에서 시각은 가장 천한 감각기관이다. 쉽게 현혹되기 때문이다. 남성은 시각적인 현혹에 약하다. 성적 행동이 시각적 현혹 현상 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영화 ‘폭로’와 같이 여성은 분명 약자이지만, 성적 욕망의 문제에 있어서는 남자가 약자일 수 있다. 물리적으로 여성을 유혹하기보다 남성을 유혹하기가 쉽다. 더구나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구도는 약자가 많은 상황에서 강자에게 불리하다. 성적 폭력을 휘두른 남성이라는 딱지는 남자들에게 쉽게 붙을 수 있다. 강자이고 욕망에 존재인 남자들은 그러한 존재라는 인식적 뿌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을 성희롱했다는 논리보다 쉬운 것인데, 누군가에게 약한 것은 거꾸로 상대방에게 강한 권력을 쥐어 준다. 약자를 보호하는 의식이 강할수록 영화 ‘폭로’의 메리더스 존슨(데미 무어 분)처럼 여성은 거꾸로 성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탁재훈이 소녀시대의 티파니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이 있다. 만약 티파니가 탁재훈을 성추행했다는 지적을 했다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티파니가 탁재훈의 가슴이나 엉덩이에 손을 댔다면 말이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남자는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더듬는 경향이 있다는 인식적 경향성은 쉽게 탁재훈의 행동을 성추행으로 몰아가기 쉽다. 하지만 티파니의 행동이 그와 같다면, 성추행으로 몰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예능에 출연하는 탁재훈스런 이 들은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야 하는지 모른다. 더구나 탁재훈은 나이가 많은 연예인이다. 동등한 연예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구준표나 장동건도 아니다. 만약 구준표나 장동건이 티파니의 가슴이나 엉덩이에 손길을 댔다면 그러한 지적이 나왔을지 의문이다. 글의 제목은 ‘구준표, 티파니에게 호감 있어’가 되지 않을까? 성추행 논란은 어떻게 보면 인식적 편견들이 종합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럼 왜 이러한 담론이 나왔는가 하는 생각해보면 그 하나는 팬들이 티파니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성추행 논란을 제기한 것은 티파니나 소속사가 아니라 네티즌이라는 점에서 비롯한다. 현재의 팬덤 흐름을 보면 스타에 대한 경배는 스타에 대한 단순한 열망에서 벗어나 보호에 있다. 더구나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표현과 선물은 포털에서 높은 검색순위와 페이지뷰를 올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열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정황을 보면 이른바 팬 노이즈 마케팅이라 부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비슷한 상황은 언제나 있어왔는데 하필 이번에만 문제가 되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만약 탁재훈의 손길(?)이 미친 티파니가 아니라 다른 연예인이었다면, 같은 액션이라도 성추행이라는 문제제기가 성립하지도 화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소녀시대의 티파니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신봉선이나 조혜련의 가슴이나 엉덩이에 손을 댄들 의혹은 없을 것이다. 탁재훈은 강자, 늑대, 티파니는 약자, 토끼가 되는 구도다. 어쨌든 티파니나 소속사로서는 손해 볼 일이 아니다. 그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면 역시 성(性)은 누군가에게 권력이 되는 셈이다. 영화의 ‘폭로’와 같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더구나 노이즈 마케팅은 인지도의 거품을 만들어내고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의 공멸을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