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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실과 영화, 동시에 도끼가 난무할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8:55

<김헌식 칼럼>왜 현실과 영화, 동시에 도끼가 난무할까

 2010.08.15 09:27

 




[김헌식 문화평론가]영화 < 이끼 > 에서 김덕천(김상호)은 자신을 귀찮게 캐고 다니는 유해국(박해일)을 살해하기 위해 도끼를 든다. 장작을 패는 큰 도끼가 아니라 손도끼다. 집에서 계곡까지 도끼를 들고 집요하게 따라가는 모습은 일상 속 살인자의 공포를 느끼게 하도록 했다. 영화 < 아저씨 > 에서 태식(원빈)은 전직 특수요원에서 도끼를 든 응징자로 나선다. 도끼로 머리를 치고 동맥을 끊어낸다. 도끼의 등장은 최근 한국영화에만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최근 부산 도끼 사건이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사건 현장은 피가 낭자했고, 피해자들에게 끔찍한 상해를 입혔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경찰이 늑장 대응을 하고 사건을 축소해서 공분을 샀다. 공권력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색해졌다. 더구나 연속살인과 성폭행 사건이 범람하는 가운데, 신고 된 사안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낳기에 충분했다. 법과 공권력이 시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때 개인들은 사적인 복수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 < 모범시민 > (Law-abiding Citizen)의 클라이드(제라르 버틀러 분)는 자신의 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가정을 파탄나게 만든 범인들에게 너무나 유한 사법제도에 대해서 분노하고 복수를 다짐한다. 그 복수는 범인들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담당 검사 닉(제이미 폭스)에게도 가해진다. 클라이드 처럼 사적 복수에 나서지 않더라도 가족을 죽인 범인이 유유히 풀려나는 것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영화 < 이끼 > 에서는 치알디니 교수가 'influence'에서 부각시킨 '상호성의 원리'를 강조한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21장 24, 25절 '눈은 눈으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는 구절이 영화를 관통한다. 복수를 말하는 이들이 명분으로 잘 삼는 것이 바로 이 상호성의 원리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빼앗긴 만큼 빼앗는 것이겠다. 

영화 < 악마를 보았다 > 는 자신의 약혼녀를 해친 범인에 대한 국정원 요원(이병헌)의 복수극이다. 공권력에 몸을 담고 있는 요원이 경찰의 해결을 기다리지 않고 사적인 복수를 한다. 더구나 장인어른은 바로 강력계에 30년 동안 몸을 담은 이들이다. 

그렇다면 공권력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 공권력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는 셈이다. 영화 < 이끼 > 에서 김덕천은 이장 용덕(정재영)을 해치려한 유목형(허준호)에게 "아저씨(허준호)와 우리가 다른 게 뭐요?"라고 말한다. 평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그가 행한 것은 결국 사랑하지 못하고 사적 제재를 가했다. 

직접 못하는 것을 누가 대신했으면 좋겠다는 대중심리도 있다. 영화 < 아저씨 > 에서 태식은 악당(?)에게 자신의 아내를 잃고 만다. 결국 아내가 임신하고 있던 아이도 지키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자신과 친한 옆집 소녀(김새론)을 구하려 나서고, 소녀가 죽었다는 말에 극단적인 복수에 나서게 된다. 

결국 믿을만한 것은 피가 경찰도 학교도 아니고, 옆집 아저씨가 된다. 위해를 가할 지도 모르는 옆집의 아저씨가 든든한 수호천사가 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거꾸로 옆집 아저씨는 유괴, 납치, 성폭행범이기만 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옆집에 낯선 아저씨가 산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운 현실에서 자신을 끝까지 잊지 않고 구하려는 아저씨야 말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갖고 있는 꿈이겠다. 

이러한 영화들이 대중에게 노출이 되는 것은 대중의 복수 심리에 닿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강력 범죄 사건들이 끔찍하게 일어나지만 사법제도는 그에 상응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중심리다. 하지만 사적 복수의 남발은 생각지 못하는 연발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영화속의 대리만족으로 머물러야 하겠다. 

국정원 요원이 사적인 복수를 통해 범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으니 영화 < 악마를 보았다 > 에서 사적인 복수는 공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복수에서 약간의 트릭을 통해 직접 복수하는 방식을 피해가고 있다. 문제는 사적 복수가 낳는 아전인수 격의 명분의 창궐이겠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영화 < 악마를 보았다 > 에서 지독한 살인마 경철(최민식)도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준다며 약혼녀의 가족들을 해친다. 

현실에서 이러한 사적 복수는 자기 중심적인 아전인수식의 명분에 빠지게 한다. 영화 < 악마를 보았다 > 에서 경철의 아들이 어떠한 복수를 할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복잡계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소한 복수가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