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왜 극장가는 스릴러가 대세인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8:56

<김헌식 칼럼>왜 올해 극장가는 스릴러가 대세인가

 2010.08.24 11:43

 




 

[김헌식 문화평론가]올여름 극장가에는 공포물을 별로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국 영화를 기준으로 < 고사-2 > 가 무더위 한 가운데에 개봉했고, 8월의 끝자락에 < 폐가 > 가 개봉했다. 그러나 반응은 스릴러물에서 더 컸다. 영화 < 이끼 > , < 아저씨 > , < 악마를 보았다 >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스릴러물이 여름을 장식하는 현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되고 있다. 

해마다 으레 여름철 무더위를 잊게 하는 공포물이 퇴조했기 때문에 스릴러물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 하나다. 사실 공포물이나 스릴러물이 사람을 긴장 후이완의 단계에서 안도와 청량감을 주는 면에서는 공통적이다. 하지만 공포물은 무서움을 많이 주는데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관객이 무섭게 느끼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스릴러물의 특징은 잔인함과 그로 인한 긴장감에 있다. 특히 이러한 차이는 한국 영화가 원혼 소재를 애용할 때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원혼 이야기를 많이 다룰 때 그것은 곧 양식과 미학의 빈곤에 빠지기 쉽다. 그동안 공포물이 식상해진 탓도 있는 것이다. 공포물은 적은 제작비로 상대적으로 큰 수입을 올리는 장르로 각광받았기 때문에 한동안 여름 기획 상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기획력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한철장사로 전락,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셈이 되었다. 

더구나 세대론의 관점에서 원혼을 풀어내는 방식은 달라져야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전의 세대와 달리 한(恨)의 정서가 그렇지 진지하지 않다. <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 와 < 구미호-여우누이뎐 > 의 코드에서 알 수 있다. 앞의 작품은 경쾌 발랄한 코드로 구미호를 해석하고 형상화하지만, 뒤의 작품은 진지한 한의 정서에 충실하다. 반응은 앞의 작품에서 더 뜨거웠다. 코드는 이렇게 다르다. 

외화를 기준으로 볼 때 공포물과 스릴러에서는 '살상(殺傷)'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점차 한국영화에도 자주 시도되고 있다. 공포는 살상의 잔혹함에서 비롯한다. 한국형스릴러의 기폭제가 되었던 < 추격자 > 는 극장판보다 감독이 판이 훨씬 잔혹했다. 본래 잔혹스릴러라는 새장르를 표방한 작품이었다. 

여기에서 살상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보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살상이다. 무엇보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동식물의 엄습, 심령적 현상은 부차적이 되었다. 공포는 이제 일상으로 내려왔다. 공포의 근원은 일상 곳곳에서 숨어있을지 모르는 살인마다. 공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공포는 갑자기 엄습하기 때문에 항상 경계경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현대 사회는 '위험 사회'가 아니라 '의심 사회'가 되었다. 그것을 외면하는 내가 파괴될지 알수가 없다. 누군가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강력한 불안과 경계 심리는 사람 사이를 소외시킨다. 이 때문에 한국영화에도 잔혹 스릴러가 주목받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의 가치는 돈의 수치로 정량화되어 파편화 되거나(영화 < 아저씨 > ), 이유없는 순간적 쾌락의 수단(악마를 보았다)이 될 뿐이다. 믿고 의지했던 사람은 갑자기 등에 칼을 꽂는다.(영화 < 이끼 > ) . 극단적인 살상의 대결은 액션영화인 < 아저씨 > 에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한 영화 < 이끼 > 에도 인간의 몸을 잔인하게 해하는 간헐적인 장면들이 영화적 자극을 배가시켰다. 

현대인은 원혼 풀이와 같은 대의적 코드보다는 자기 개체성의 유지와 보존, 안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공포와 스릴러는 육체성의 보존 혹은 파괴에 집중한다. 보존 혹은 파괴에서 긴장과 이완이 발생하면서 청량감과 재미를 남긴다. 영화의 특수효과는 잔혹성을 더 부각하는데 총동원되고 있다. 영화에는 어느새 한방에 간단히 끝내는 총보다는 칼과 도끼, 망치와 같이 인간의 몸을 산산히 난자해내는 도구가 더 많이 동원된다. 

보는 사람이 고통을 연상하고 그 해당자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음향소리를 최대한 살리는 것도 시각적 효과와 같이 중요하다. 실제감 높은 인간의 '부분 인형'은 실제 배우의 신체부위와 매우 같아야 한다. 물론 시각적 특수효과는 이러한 인간의 부분 신체가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 악마를 보았다 > 의 결말에서 최민식의 머리를 어떻게 부분신체화했는지 확인하면 된다. 육체의 지각화를 관객들 스스로가 상상하고 동일시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잔혹성이 힘을 얻으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개체성 유지와 보존의 심리에 충실해야 한다. 관객들은 영화 속의 사람 육체가 잔인하게 해체될수록 긴장하고 곧 영화와는 달리 안온한 현실에 편안해 한다. 

잔혹스릴러가 많아진 것은 공포물의 동서양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징후인지도 모른다. 서양은 동물이 등장하는 공포물이 많고 동양은 원혼이 등장하는 식의 분석이 더이상 먹히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 이끼 > 에는 약자의 감수성이 있고 < 아저씨 > 에는 약자의 감수성과 함께 한국특유의 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 악마를 보았다 > 는 가족주의적 요소가 강한 잔혹극이었다. 이러한 점들은 한국적 문화요소가 강하게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잔혹스릴러는 공동체적 정서에서 개인주의적 정서로 이동하는 그 중간단계적 과도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아시아와 유럽-아메리카 문화 충돌의 가교역할을 할수있는 가능성을 잔혹스릴러에서도 짐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