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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네 식구들에는 '경력단절녀'가 없다, 왜?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9. 13:27

왕가네 식구들에는 '경력단절녀'가 없다?


KBS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여성 상처, 배신과 복수를 넘어서 자아실현 스토리 그려내야

한국 드라마의 여성은 크게 두 유형이다. 남자에 미쳐 연애와 결혼으로 잘 살다가 배우자에게 배신을 당하는 유형, 다른 하나는 그것에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잘 이루어가는 유형으로 일 잘하고 있으면 남자가 자동적으로 붙는다. 경력단절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에 떠는 여성은 존재할 수 없다. 여성이 자신의 경력을 잘 살려 삶을 일구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복수나 여성의 성공 자체만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는 일일드라마 주말 드라마에 더 눈에 잘 보인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인다면 남성의 덕을 보려는 여성 유형이 있는데 이런 유형은 파멸적인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이 유형 역시 경력단절현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드라마 속 여성들, 경력단절에 침묵 

'왕가네 식구들'에서 왕수박(오현경)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보다는 남편의 부유한 재산에 의존하는 인물로 마침내 그 허영 때문에 왕가네 식구들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남편 고민중(조성하)은 사업체에서 쫓겨나자 왕수박에게 급기야 이혼을 당하고 만다. 왕수박과 같이 미스코리아 출전경력을 자랑하며 튀는 메이크업과 스타일로 항상 이목을 집중시키는 캐릭터의 관점에서는 자기 삶의 경력이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고민은 없다. 어떻게든 편하고 풍요롭게 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캐릭터가 허영달(강예빈)이다. 명품점에서 일하며 허영심이 많은 인물로 그의 어머니 박살라조차 딸을 부유한 집에 시집보내 그 덕을 보려 한다. 당연히 결혼 때문에 일어나는 경력단절을 고민조차 없다. 

그렇다면 반대에 있는 여성은 어떨까. 왕호박(이태란)은 마침내 의류 매장 점장으로 승진하는 등 열심히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 간다. 그러니 말썽만 일으키는 남편 허세달(오만석)이 회개하고 찰싹 달라붙어 전업주부가 된다. 하지만 왕호박이 본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혼의 여신'에서 이태란이 맡았던 홍혜정은 과거에 아나운서 직업을 가졌지만,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이후 호텔 부사장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 한다. 또한 '왕가네 식구들'에서 왕광박(이윤지)은 학력이 낮은 최상남(한주완)을 주위 반대에도 남편으로 삼고, 전업주부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교사 생활을 접고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 한다. 7년 동안의 교사 경력은 중단되고 자발적인 그녀의 전업주부 생활이 이어진다. 이에 대해서 왕광박은 고민이 전혀 없다. 자신의 교사 생활이 아깝다거나 연장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이다. 

미련이 없는 것은 '따뜻한 말 한 마디'의 나은진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서 나은진(한혜진)과 김성수(이상우)는 캠퍼스 커플로 열정적인 사랑에 결혼까지 이르렀다. 나은진의 입장에서 김성수의 대학 3년, 군대 2년 그리고 다시 취직까지 2년 동안 뒷바라지를 했다. 은행원이 된 김성수의 아이를 가진 나은진은 출산 후 우울증에 빠진다. 그 사이 김성수는 은행 계약직 여직원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만다. 이 때문에 나은진은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와 방황을 겪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 여직원을 응징했고 이후 남편 김성수와는 불화가 잦은 사이 사업가 유부남 유재학(지진희)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유재학의 아내 송미경은 남편을 뒷바라지 하는 현모양처 전업 주부다. 하지만 남편의 불륜을 알고는 독한 아내가 되어 응징에 나선다. 나은진이나 송미경은 자신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 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남편의 사랑이고 삶을 파멸 시키는 것은 그들의 불륜이다. 두 사람이 고민하는 것은 남편의 배신 뿐이었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당차고 능동적이며 스마트 해 보인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녀들이 겉으로만 잘나고 똑똑할 뿐 허당이라는 점이다. 작가 김수현이 자신의 드라마에서 항상 강조하는 바이기도 하다. 쇼핑채널 쇼 호스트로 일하던 가운데 은수(이지아)는 정태원(송창의)을 만나 극심한 반대에도 25살의 나이에 결혼해 27세에 딸을 낳았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의 말 못할 괴롭힘에 견디지 못하고 이혼한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온 이후 이혼한 뒤 다시 쇼 호스트 일을 시작한다. 경력 단절은 없었다. 쉽게도 경력을 잘 잇는다. 물론 쇼핑 채널 업계에서는 20대의 어린 나이의 쇼 호스트를 뽑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쇼핑 채널의 주요고객이 20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쇼 호스트로 일하던 가운데 재혼한 은수는 남편의 불륜은 물론 나아가 은폐하는 남편의 행위에 분노한다. 첫번째 결혼도 온갖 반대를 돌파 했지만 두번째 결혼에서도 결과는 안 좋아 결국 세번의 결혼에 이른다. 은수의 자매 현수(엄지원)은 오로지 한 남자, 수의사 안광모(조한선)을 바라보지만, 그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는 천하의 바람둥이다. 현수는 꿋꿋이 애견 관리 업체를 운영한다. 

경력단절여성을 그리는 드라마는 없나 

2013년 가장 우수한 드라마로 꼽혔던 '직장의 신'에서도 경력단절을 고민하는 미스 김은 없었다. 아무리 능력 있고, 똑똑해도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 양육의 과정을 겪게 되면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일을 잃고 만다. 그리고 다시 연관 직종 등에 진출하지 못하고 경력이 단절돼 버린다. 이는 큰 노동적인 문제이고, 이는 개인으로나 사회전체에 걸쳐 손실임에는 분명하다. 경단녀(經斷女)는 경력단절 여성의 줄임말이다. 임신ㆍ출산ㆍ육아와 가족들의 돌봄 때문에 경제 활동을 중단하게 된 여성들을 말한다. 결혼 이전에 쌓았던 경력들이 이후 구직 활동에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미혼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거나 미루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결혼은 물론 출산과 육아를 여성들에게 매우 불리한 제도로 보는 강력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2001년 47.4%에서 2012년 48.4%으로 소폭 상승했는데 이렇게 10여 년 째 여성들의 고용률이 높아지지 않는 것은 바로 경력단절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연령대별 고용률은 20대 58.7%, 30대 53.7%, 40대 64.9%, 50대 57.5%다. 이는 마치 알파벳의 M자를 연상시킨다. 40대에 갑자기 여성들의 고용률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경력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전업주부로 남는 가운데 안정된 직종이 아니라 부분적인 노동에 종사하게 된다. '여성새로일하기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2만 여 명의 취업여성 가운데 40% 정도가 계약ㆍ일용직이었다. 특히 육체노동의 상당부분을 전업 주부들이 담당하게 된다.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머지 60%의 모든 여성들이 경력을 인정받아 경제활동을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부분 이전에 종사했던 업종과는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하게 된다. 많은 경력단절의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이력이 유지되면서 안정적이고 시간적 선택 조절이 가능한 일자리이다. '왕가네 식구들'의 왕호박처럼 일을 잘도 해내 관리직으로 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님이 분명하므로 이를 극찬의 대상으로 추켜세우는 것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같이 교육을 받거나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입사에서 여초현상도 보이지만 그것은 들어갈 때 뿐이다.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능력과 지식 경험을 가지고 있어도 경력이 단절되는 순간 도태돼 버리며 여성들은 이를 우려하여 결혼을 미루거나 기피하고 출산을 꺼린다. 이러한 점은 저출산 문제와 연결된다. 이는 비단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시민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주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해서 일자리 마련 정책을 취한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질 낮은 육체노동 중심의 비정규직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구나 양질의 일자리라 해도 그들의 능력과 소양 그리고 경험과 경력을 지속 가능하게 이어지는 일자리는 아니다. 그러니 여성들이 나설까? 경력 단절의 악순환 궤도는 한국사회의 교육은 물론 직업 훈련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므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개선책을 기업과 국가가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들의 자아실현과 행복 추구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드라마가 경단녀를 다뤄야 하는가? 

문화예술은 이상적인 상황과 지향점을 내포해야 한다. 대중통속드라마도 당대의 현실을 미래의 지향점과 맞물려 그려내야 하므로 이는 여전히 견지해야 한다. 더구나 '왕가네 식구들'과 같은 주말드라마는 해피엔딩이 예정된 수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끈금없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일하는 여성들의 자아실현 충족 차원의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남성에게 희생과 헌신으로 상처받는 여성들의 이야기나 남성들에게 의존하다가 배신당하고 복수하는 내용을 넘어 여성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모습들을 능동적으로 그려내야 한다. 정부가 그런 정책학적 상상력이 없으니 드라마라도 선도해야할 필요성이 있겠다. 무엇보다 공영방송에는 더욱 그러한 책무가 있을 것이다.

김헌식·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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