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영화 '싱 스트리트'가 한류 '케이 팝'에 경고한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6. 2. 10:00

영화 '싱 스트리트' 스틸 컷.ⓒ(주)이수 C&E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낭만적이기만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그러나 매우 중요한 음악 활동의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영화가 '싱 스트리트'다. 이렇게 애써 말하는 이유는 케이 팝이라는 이름으로 범람하고 있는 기획형 가수 육성 프로그램이 과연 바람직한 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난 기획사 자체의 트레이닝 시스템만이 아니라 방송사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 주인공은 고등학생이다. 카니 감독의 전작 '원스', '비긴 어게인'등보다 좀 더 대중적이고 좀 더 연령대가 낮아진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아이돌 가수 중심의 풍토가 어떤 문제점을 지닐 수 있는 지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이 영화는 그들이 과연 음악적으로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기획부터 음악 창작 그리고 프로듀싱이나 무대 연출까지 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 밥을 벌어먹을 수는 있을 듯 싶다.

주인공 코너는 가정 분란 속에서도 자신의 음악적 꿈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마음에 드는 여성을 위해 본격적으로 밴드를 결성한다. 밴드의 구성원은 그렇게 잘 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문제 덩어리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일뿐이었다. 영화에서는 노래 하나 하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에피소드 별로 보여진다. 그 음악적 결과에 맞추어 뮤직비디오 컨셉을 잡고 실제 촬영도 한다. 물론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그 과정은 조악하고 어설프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창작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을 해간다. 여기에서 성장이란 자신들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가 있다. 다양성은 각 자의 개성과 정체성이 존재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 기획 훈련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발생적인 상황은 결국 예술에 정답이 없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음악 기획 육성 프로그램들은 정답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막대한 물량 공세로 이뤄진 마케팅의 결과물에 불과한 데 말이다. 인터넷과 한류 현상의 담론은 이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마치 청취하는 사람들은 사육당하는 셈이다. 단순 반복 효과 때문에 길들여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어떤 작품이 어떤 음악이 대중적 호응을 받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아무도 몰라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좀 더 다양한 음악이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대박을 노리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대박 컨텐츠가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일도 견제가 되고, 대박을 지향하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건재할 수 있는 토양이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결과는 좀 더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가진 팬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팬들이 있어야 다시 좋은 음악을 시도하는 혹은 여러가지 실험을 모색하는 음악적 활동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 주인공 코너는 마침내 자신들의 밴드 공연을 연다. 그리고 공연뒤 그는 여자 친구와 배를 타고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향한다. 더 재능과 꿈이 있던 형조차 못했던 용기와 선택이었다. 코너와 여자친구,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그동안 만든 포트폴리오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것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미래 희망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절망과 우울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었기에 성취감은 물론 앞으로 살아가는 미래의 추동력이 될 수 있을 법했다.

누군가의 계획과 프로듀싱속에서 길들여지고 훈련을 받는 케이 팝 뮤지션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화려하진 않아도, 설령 그 뮤지션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해도 그들이 스스로 갖춘 자생적 창조력은 어디에도 적용이 가능한 일이다. 그것만이 미래의 창조를 열 수 있는 힘일 뿐인데, 과연 케이 팝은 그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 의문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