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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를린', 한석규는 댓글 달기를 거부했을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3. 2. 4. 12:24

이전 안기부 요원을 등장시킨 영화들과 달리1998년 영화 '쉬리'에서는 국정원 요원이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요원들처럼 참 멋지게 나온다. 정말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정보첩보요원같았다. 이후 국정원 요원들은 영화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할만 한 간지 나는 캐릭터로 등장하고는 했다. 무엇보다 안기부 직원들이 주로 국내 정치에 관여 했던 것과 달랐다. 절차적 민주주의 시대 담론이 많아진 것과 아울러 대중문화에서 이런 시대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영화 '쉬리'에서 국정원 요원 역으로 분했던 한석규는 14년 만에 영화 베를린에서 국정원 요원 정진수로 열연했다. 영화 '쉬리'에서는 자신의 업무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첩보요원이었다면 영화 '베를린'에서는 인생을 달관한 베테랑 요원으로 등장한다. 조직의 부당한 지시나 자신의 의사와 어긋나는 명령에 까칠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신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좌빨을 운운하며 자신의 일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그는 멋진 정보요원이다.

영화 '의형제'의 국정원 요원 송강호(한규 역)처럼 조직의 중심과는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려는 캐릭터다. 하지만 송강호와 달리 자신의 사익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영화 '베를린'과 달리 아직은 남북의 형제애를 부각 한다.

영화 '7공무원'에서 7공무원은 국정원 요원을 가리키는데, 이는 국정원이 갖는 정보기관의 면모보다는 직장의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국정원이라는 조직이 국가의 안보와 이익이라는 큰 명분보다 개인들의 삶에 더 밀접하다는 점을 담고 있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며 직장인 등의 고충을 겪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도드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처럼 요원캐릭터들이 진지하기만할 필요가 없어졌는지 모른다. 

특히 '하마리오' 팀의 팀장 원석 역의 류승룡은 국정원 요원 같은 진지함은 물론 코믹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국정원 요원들은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이지만, 여전히 안보와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요원임에는 분명하다. 그들은 명석한 머리에 무술실력과 각종 첨단기기운용의 달인들이다. 이러한 코드의 흥행성은 7급 공무원을 지상파 드라마로 리메이크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아이리스'는 꼭 국정원은 아니지만 최고의 정보기관이므로 그와 다를 바 없다. 스핀오프나 속편까지도 여전히 정보요원들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세계평화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한다. 이런 첩보영화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의식한 듯, 다양한 지역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들은 코스모폴리탄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국정원 요원들은 첨단장비들을 사용한다. 한국이 이제 IT강국이라는 점은 이러한 설정과 장면들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국정원 요원의 행위는 이런 드라마와 영화가 얼마나 허구적일 수 있었나 하는 점을 드러내주었다. 일단 국정원 요원은 국내는 물론 다양한 지역과 국가를 넘나들면서 활동한 것이 아니라 오피스텔에 틀어 박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컴퓨터를 이용해 댓글을 달고 있었다. 그 댓글들은 여당이나 현 정부에 유리한 내용들이었다. 그들은 정보요원이라기보다는 '키보드 워리어'였다. 그들의 손에는 권총이나 첨단 장비가 아니라 키보드가 있었으며, 업무는 목숨을 내놓은 총격전이나 탈출이 아니라 댓글 알바수준이었다. 다만 그들의 전쟁터는 사이버 게시판이었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은 2007년까지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이 즈음에 나온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국정원 요원을 긍정적으로 그린다. 다만 악인으로 등장할 때는 정권이나 기관 차원이 아니라 개인들의 욕망 차원에서 캐릭터가 설정되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이후 다시금 정보기관 국정원은 예전으로 돌아갔음이 국정원 요원의 댓글 달기 활동에서 드러났다. 대중영화나 드라마에서 국정원 요원을 하나같이 멋지게 그려 냈던 것이 얼마나 현실 착오적이었나 하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젊은이들이 되고 싶은 국가조직의 현실은 무참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보면 여실히 국정원 요원은 여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 여론 조작용 댓글을 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같은 국정원이라도 그 조직 구조상 여러 업무가 나뉘어져 있다지만 해당 사례를 보자면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해진 역사가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 '베를린'이나 드라마 '7급 공무원', '아이리스2'를 보는 게 불편한 것이다. 그런 국가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하려는 요원들을 댓글 알바생과 같이 만든 이명박 정권의 힘으로 탄생한 박근혜 정권에서도 국정원 요원이 멋있게만 그려질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양심적인 요원들의 솔직한 모습들이 반영되는 것도 좋다. 댓글 알바생같은 짓을 하기 싫어하는 정진수(한석규)의 모습이 현실적인 국정원 요원의 모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