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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에 빠지는 '그녀들'의 문화 심리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6. 1. 08:58





영화 ‘그녀’에서 손 편지 대필 업체 직원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매일 대신 써주며 직업적 만족감을 얻는다. 만족감이 배가 되는 것은 그의 편지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다.

중요한 점은 한번 대필 편지에 맛을 들이면 의뢰인들은 감동의 손 편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대필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감동의 기분에 빠져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손 편지 일을 계속하려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편지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손 편지를 쓰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행복할까. 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그이지만 일상생활은 공허함이 가득 채우고 있다. 그가 느끼는 만족감은 대필 편지로 다른 사람들이 기분 좋아할 때뿐이고, 집으로 돌아오면 고독감이 엄습할 뿐이다. 오랜 동안 같이 자라고 성장하며 반려자 생활을 했던 아내와도 이혼을 앞두고 별거 상태에 있다. 오랜 동안 옆을 지켰던 아내와의 사랑도 허허로움만 남았으니 삶의 낙이 없어 보인다.


테오도르는 어느 날 우연히 컴퓨터 OS, 사만다를 접하게 된다. 처음에는 대화용 컴퓨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낯설게 느낀다. 아무래도 컴퓨터이기 때문에 기계적일 듯싶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곧 컴퓨터 OS일뿐이라 생각한 사만다에게 빠져들고 만다. 이런, 컴퓨터 가상 프로그램에 빠지다니. 왜 그랬을까?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마음을 매우 잘 헤아린다. 필요한 때 언제라도 부르면 나타나고, 자신에게 필요 없으면 언제라도 내버려 둬도 된다. 절대 불평이나 불만을 터트리지 않는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감정을 살펴 그에 정확한 대화를 구사한다. 그는 결국 컴퓨터 프로그램인 사만다를 사랑하게 된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을 오히려 컴퓨터가 해낸 것이다.


하지만 점차 많은 이들이 컴퓨터 OS를 이용하고 심지어 자신의 오랜 친구도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어느날 문득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수 천 명과 동시에 대화를 하고 수 백 명을 같이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는 곧 사만다가 손 편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편지가 OS로 진화하며 더 정교하게 실제감을 지니며 변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배우자에게 바라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즉 사만다가 사랑스러웠던 것은 자신을 배려하고 잘 맞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고 기분에 맞추어 적절하게 응대해주었기 때문에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즉 손 편지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말과 감장,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것과 같다. 편지는 불평이 없다, 컴퓨터도 불만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독자적 자존감과 욕망을 지녔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소유하려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태오로드를 통해 던지고 해답을 모색한다. 무엇보다 테오도르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녀의 말 때문이었다. 육체도 이미지도 없는 사만다를 정말 테오도르는 사랑한다. 심지어 다른 여성의 육체를 동원하여 섹스 행위를 유도한 것이 오히려 테오도르의 거부감을 낳았다.


오로지 정신적인 감응이 서로간의 사랑을 더 깊게 한다는 설정은 육체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랑을 구현하는 듯싶다. 감독은 인간과의 폰섹스는 변태적이고 컴퓨터와 나누는 섹스가 더 절절한 사랑인 것으로 담아낸다. 오로지 청각적인 효과 나아가 말소리만으로도 깊은 사랑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테오도르는 시각적인 물리적인 사랑에 대한 염증을 느낀 남자이기 때문에 사만다와 사랑에 빠졌지만 현실의 남자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남성성은 오랜 육체성 중심의 사랑 관계가 피로증을 유발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육체성이 없어도 육체성에 버금가는 성적 엑스타시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정신과 육체성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점이기도 하겠다. 테크놀로지는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싶다.


무엇보다 테오도르는 현실의 자아를 갖고 자기 생활을 구현하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추어 줄 수 있는 여성을 원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냈던 아내조차 그의 마음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는 없었다. 사실상 이는 여성이나 남성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자신을 완벽하게 맞추어주고 배려해줄 수 있는 배우자를 원한다. 거꾸로 테오도르의 아내도 마찬가지인 점이 있었을 것이겠다.


이 영화는 결국 그런 완벽한 인간, 남성과 여성은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만약 다른 이성의 마음을 완벽히 반영하고 그에 맞춤식 행위를 하는 이들은 컴퓨터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테오도르를 컴퓨터조차도 버거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OS 사만다와 같이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존재는 한 사람에게만 머물 수가 없으며 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는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역설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사람 마음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사람들은 그런 이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까지 차례가 올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부족할수록 한 사람을 절실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한사람이라도 매우 소중한 것을 깨달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 할까. 육체성을 떠난 사람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말만을 듣고 감정의 접대를 받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것이 자칫 얼마나 허무할수 있는지,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초월적인 존재에게만 가능하다는 점을 영화가 드러내주고 있다. 인간과 살려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래서 김수현보다 더 뛰어난 감정의 초능력 외계인이 등장해야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가 대기하고 있는지 모른다.




글/김헌식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