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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은 왜 사라졌을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8. 3. 27. 12:48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리뷰 


우진(소지섭)은 운동선수였다. 운동 가운데 수영. 체육 특기생이었기 때문에 오전 수업만 했고 수업시간에도 잠을 자는 일이 많았다. 사실상 공부와는 담을 쌓은 상태였다. 운동선수는 몸의 움직임이 많다. 수영은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전신 운동이므로 그 격함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어느 한곳에 집중할 때 보통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 그것이 운동이든 공부든 말이다. 한쪽에 집중하는 것은 다른 쪽에 대한 결핍을 낳게 되고 그 결핍에 대해서는 선망을 할 수도 있다. 우진이 수아(손예진)을 좋아하게 된 것은 이때문이지도 모른다. 항상 모범생, 1등을 하는 여학생. 그것은 단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인 차이에서 비롯하는 호감에 더해진 것이다. 우진이 수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육체적인 장점이었다. 실제로 우진은 수아를 수영장에서 위험에 빠진 구하기도 한다.


수아가 우진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 것은 거꾸로 자신이 할 수 없는 운동, 수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남 여성이란 자신에게 없는 이성의 매력에 호감을 느끼고 사랑의 감정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장점이 자신을 위해서 배려로 지켜주거나 지지를 해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진은 더 이상 수영을 할 수 없게 된다. 수영선수가 수영을 못하게 된 것이다. 이유는 다른 누가 방해한 것도 아니고 우진의 몸에 있었다. 뇌호르몬 분비의 이상으로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졸도를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수영은 물론이고 선수의 생활을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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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애인을 둔 남성에게 전형적으로 보이는 한가지 현상이 있다. 바로 갑자기 잠적을 하거나 관계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우진도 수아에게 연락을 끊고 관계단절을 선언한다. 수아는 우진이 왜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짐작을 하지 못한다. 우진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수아가 싫어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감슴을 저리게된다. 우진이 그렇게 수아를 내치는 것은 수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것이다. 적어도 착한 남자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관객은 이해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리게 만든다.


요컨대, 수영 국가 대표 선수를 꿈꾸었던 우진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연인 수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남자는 경제적으로 여성을 책임져야 하는 점이 뇌리에 항상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생들이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점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더 이상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해 남도 사랑할 수 있는데 우진은 더 이상 자신도 사랑하지 않게 되었으니 남을 사랑할 여유가 없어진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진은 격한 움직임을 하면 졸도하기 때문에 노동력도 상당부분 상실되고 경제활동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무엇보다 육체적인 건강함이 매력이고 자산이었는데 그것이 없어질 경우에는 정신적인 황망함도 있을 수 밖에 없다. 삶의 의욕이 사라지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현실에서 운동 특기생이 진로교육이나 지도를 따로 받은 것도 없고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시스템도 없다. 그러니 절망감은 클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우진은 먼저 수아를 내치고 자신을 보호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 무능해진 자신을 수아가 지켜줄 리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차피 현실을 냉혹한 것 아닐까. 영화에서 관객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적인 냉혹감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애써 영화를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좀더 바람직한 상태를 보고 싶어할 것이다. 수아는 떠나지 않고 오히려 우진옆에 남는다. 수아가 그렇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우진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좀 더 오래 삶을 영위할 수 있었고 가족과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기때문이다. 


우리는 거꾸로 미래를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변수나 요건을 보고 선택을 한다. 어떤 대상은 선택을 기피하거나 피하고 어떤 대상은 적극 선택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이 반드시 좋은 결과나 소망스런 삶을 만들어 낼까.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삶은 반드시 그렇게 획정되지는 않는다. 좋은 경제적 조건을 갖춘다고 해서 바람직한 삶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그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고 사랑마저도 그에 포획되기 일쑤이다. 수아는 몸에 장애를 얻게 된 우진을 떠나지 않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산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는 했지만 만약 우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더 짧은 생을 마감했어야 한다.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삶을 더 연장하고 행복감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것도 정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말이다. 


장애를 갖는 것은 우리가 예상했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중도장애가 주는 치명성이다. 그것은 대부분 자신때문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나 요인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스럽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예상과 다른 삶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한편 장애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아니 이것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그렇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투쟁 때문에 가능했다. 새옹지마는 감나무 밑에서 떨어지는 감을 기다리는 태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이다.


영화에서 우진은 뇌호르몬 분비 이상 장애를 가졌지만 아내와 아이를 사랑한다. 비록 예전처럼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없어 아이와 같이 운동장 계주를 할 수는 없을 지라도 그에 맞추어 삶을 영위한다. 장자의 말대로 오히려 못생긴 나무가 오히려 장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수아가 사랑을 선택한 것은 그래서 한번 걸어볼만한 것이 사랑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적어도 사랑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게 말이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꿈꾸고 있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