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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강화는 논란 마케팅 덕을 보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1. 12. 20. 08:51

 

낭만적이었다. 낭만의 끝은 곧잘 현실의 차가움에 닿는다. 남파 간첩이 공작 가운데 위치가 탄로나 잡힐 위치에 처한다. 필사적인 도주 끝에 여대 기숙사에 숨어 든다. 운동권 학생으로 착각한 여학생들은 그를 숨겨준다. 이라한 1980년대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때는 정보기관원들이 간첩보다는 학생들을 잡아다가 간첩으로 만들고 았다는 인식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첩을 숨겨진 학생이 운동권이라는 설정이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인식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학생들을 정보기관원들이 잡아갔고 고문에 투옥에 조작질을 당하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그런 환경에서 불안과 공포 그리고 트라우마를 갖고 청년기를 보냈던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시대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당사자들이  드라마 '설강화'에 불편한 기색을 일찍부터 표출하고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한 시대적 트라우마는 개인에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논란의 드라마 '설강화'의  주연배우 정해인과 지수

일부에서는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아직 드라마 방영이 다 되지도 않았는데 평가를 마치고 방영 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방영이 완료되고 전체를 평가받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그래서인지 제작진은 매우 억울해하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특정 시대나 배경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이를 더 키울 수 있었다. 복고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설 정도로 구체적인 당대의 문화 코드와 상징과 콘텐츠들이 사실적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응답하라시리즈 이상으로 신경을 써서 놀랍기도 하다. 그런 사실적 맥락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 그 효과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KBS 드라마 스페셜 'F20'은 잘 다루지 않는 조현병을 다루어 일찍 부터 화제가 되었다. 장애인 차별을 현실을 사실감 있게 다룬다고 하여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예고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았고, 정작 조현병과 관련한 당사자들은 이 콘텐츠에 대한 공개 방영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리얼리즘 미학이 보이는 역설이다. 사실대로 적나라하게 그리는 것이 호평을 받았던 시대는 이미 갔다. 조현병 장애인을 둘러싼 편견과 고정관념이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지는 것은 방송과 영화가 확성기 스피커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포와 불안, 트라우마를 후벼파는 내용들이 그대로 자극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는 선한 의도의 악한 효과라는 전형적인 콘텐츠 패러독스 현상이었다.  좋은 뜻으로 즉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가운데에서도 사회적 편견이 심한 조현병을 다루는 것이 인식 개선을 위헤 드라마를 기획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반대의 반응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조현병 범죄는 극히 드문 예이다. 범죄가 일어났는데 조현병 장애인 저지른 일일 뿐이다. 그 비율은 대단히 낮다. 또한 사람들의 편결과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그리는 것은 아주 조작적 극작의 전형이다. 그런데 이러한 패러독스 현상은 드라마 '설강화'에는 있지도 않다. 애초에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고 제작진이 표현한대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위해 설정을 가져 왔을 뿐이다. 더구나 주인공들이 운동권이라는데 운동권적인 인식과 가치관은 없고 파편화되고 있고 개인주의적이다.

 

왜 이런 설정이 등장하는 것일까. 흔히 운동권 코드를 드라마에 차용하는 경우가 곧잘 있는데, 그만큼 그것은 표적 시청자층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운동권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 아쨌든 그런 코드를 다뤘을 때 호평을 이끌어냈던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 이후 모래 시계 세대라는 말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그 뒤로 이런 내용을 다루면 의식 있는 드라마로 간주되었다. 이른바 비즈니스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권 코드가 등장하고는 한다. jtbc 토일 드라마 '언더 커버'도 김현주와 지진희라는 배우들을 통해 운동권 학생과 안기부를 코드화 했다. 영국 BBC 드라마 리메이크작인데 이런 코드화는 어떤 전형성을 반영하고 있는 패턴의 재확인이었다. 어느새 운동권 민주화는 어떤 장식주의에 흘러버렸다. 남녀 사랑이야기를 추억의 복고 코드로 버무리고 그 시대를 낭만화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수용자들이 싫어하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아마도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다. 엄혹한 시대 군부독재 치하에서 목숨을 걸고 외상을 당했던 이들은 당사자이며 그들의 상처를 건드리는 설정은 제외 해야 한다. 조현병 당사자들의 상처를 건드린 'F20'과 이런 점은 같다. 당시 민주화에 관심이 있고 행동을 모색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남파간첩과 연루설이었다. 북한의 사주를 받고 움직인다는 의혹과 조작은 인생 자체를 좌우하고 파괴하기까지 헸다.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가 만연했고, 아직도 그러한 메커니즘은 여전히 작동을 한다. 색깔론으로 특정 누군가를 낙인 찍고 파멸 시킬 수 있는 공작 여지는 완전히 제거 되지 않고 있다. 그런 것은 낭만화하여 액션 로망스처럼 그려내려한 기획의도는 정작 모래시계 세대가 원하는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단순히 특정 장면이나 묘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세계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관점으로 그려내는가의 문제가 걸린다. 더 나아가 민주화를 하나의 장식처럼 다루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한 장식주의 소재화는 결국 '설강화'와 같은 드라마처럼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러한 논란이 드라마 자체에 대해서 많은 주목을 낳고 시청율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당대를 살아낸 많은 이들에게 다시금 상처를 주고 만들어낸 성과아닌 성과일 수 있겠다.

 

글/김헌식(평론가, 박사, 상생정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