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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윤정희, ´광대뎐´의 배우가 빛난 이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8:12

<김헌식 칼럼>´시´의 윤정희, ´광대뎐´의 배우가 빛난 이유

2010.05.22 11:23

 




[김헌식 문화평론가]국제영화제에 출품하는 영화의 여주인공은 대개 신선한 얼굴이거나 이미 수상을 한 배우가 맡는다. 여기에서 여우주연의 뛰어난 연기력이라는 평가는 나이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 된다.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원로 여배우가 더 나을 것이다. 대개 영화에서 여성 배우들은 조금만 나이가 들면 배제된다. 그들의 젊은 육체성을 바탕으로 국제영화제에 대시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영화 < 박쥐 > 의 김옥빈이 그렇고, 이번에는 영화 < 하녀 > 의 전도연이 그렇게 되었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 참새들의 합창 > 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장을 잘 보여준 모하마드 아미르 나지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여성배우들이 모하마드 아미르나지처럼 노장에도 연기력을 잘 보여주며 수상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 < 시 > 의 이창동 감독은 이제 원로배우라고 할 수 있는 윤정희를 캐스팅했고,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물론 그녀는 최고의 스타로 과거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하지만, 한동안 잊혀졌다. 나이 때문이다. 66세다. 나이는 연기력의 가림막이다. 유배 이유가 된다. 그런데 영화 < 시 > 에 많은 나이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좋은 연기력도 보였다. 그 연기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체화된 것이겠다. 대중문화에서 상품성은 젊음으로 끊임없이 교체되면서 진정한 가치를 놓치고는 한다. 

아무리 대중적인 '스타'라고 해도 '광대'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본격적인 대중문화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각광을 받기 전에 광대들은 모두 같은 범주에 있었다. 하지만 광대들의 일부가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프레임에 수용되면서 광대에도 층위가 생기기 시작했다. 

장마당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진 광대들은 약간의 극장에 편입되기는 하지만 결국 대부분 소멸의 길에 들어섰다. 아무리 장마당에서 인기가 있어도 그것은 하지만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들어간 광대들은 대중적 영광과 명예 그리고 부유함을 갖기도 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상설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 유랑광대뎐 > 은 장마당에서 삭고 삭아 감칠맛 나는 토종광대의 진가를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여기에는 평생을 장마당 공연을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체화시킨 광대들이 등장한다. 78세의 강준섭, 79세의 손해천은 그야말로 초야에 묻힌 광대 명인이다. 뺑파막, 마당쇠막 등을 통해 굿판의 식은 밥을 먹으며 어린 시절부터 유랑 공연의 삶을 통해 발효시킨 재담과 춤, 연기의 삼합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그들도 남성들이다. 

전통극에도 영화와 같은 '심청이의 딜레마'가 있다. 심청이의 딜레마는 왜 뺑파막이 < 심청전 > 가운데 가장 백미인지 알게 한다. 이는 정작 주인공인 심청이가 등장하지 않는 막이 더 재미있는 역설적인 효과 때문이다. 심청이의 딜레마는'인물은 되는데 소리가 안 되고, 소리는 되는데 인물은 안 된다'는 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는 어린 심청이 배역에 맞게 젊은 여성을 출연시키면 아직 '소리'가 완숙하게 되어 있지 않고, 소리가 완숙한 여성을 출연시키면 이미 인물이 노숙의 단계에 들어섰으니 인물이 안된다는 말이다. 심청전에서 가장 고도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는 뺑덕어미이다. 

< 유랑광대뎐 > 의 김애선은 68세다. 뺑파 어미 연기의 달인이다. 만약 '뺑파어미'라는 영화를 만든다면 당연 주인공 감이다. 그것은 김애선이 어느날 갑가지 한번 맡는 배역으로 드러나는 연기력 때문에 내려지는 평가가 아니다. 일평생 뺑파 연기에 호흡을 맞추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뺑파막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그야말로 평생을 뺑파 연기로 삶을 이끌어온 배우가 출연하는 셈이 된다. 삶과 연기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겠다. 

더구나 젊은 배우만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영화의 세계에서 노익장의 여배우가 주연으로 스크린을 누비는 것은 여성성의 상품화에 일침을 주는 쾌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윤정희라는 배우가 영화 < 시 > 를 통해 칸에 진출한 것과 맥이 닿는다. 따라서 뺑파막의 여주인공이 칸(국제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탈 때 한국적인 작품(캐릭터)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