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체계적인 피서 계획이 갈수록 필요
글/김헌식 중원대학교 사회 문화대학,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피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야외 공간과 실내 공간 활용이 있는데 야외에서는 여행과 체험 이벤트로 나뉠 수 있다. 여러 설문조사를 살필 때 해외여행보다는 국내여행을 가는 경우가 전년보다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 보상 심리가 조정기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젊은 세대의 경우에는 해외여행에 대한 선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 20대가 가장 높고 30대가 그 뒤를 이어 해외여행을 선호한다. 다만 양극화 현상이 있기에 아르바이트는 하거나 수험 생활을 하는 이들은 언제나 예외다. 국내 여행이라도 약간은 거리가 있는 곳을 여름 피서 여행지로 꼽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또 비중의 증가를 볼 때, 여행을 가지 않으려 하거나 간다고 해도 편하게 쉬려는 정도가 늘어나고 있다. 폭염이 강할수록 익스트림 즉 모험을 하는 피서 휴가는 상대적으로 덜한데 이러한 경향은 폭염이 기승을 부릴수록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전반적으로 생활 페이스를 유지하는 피서 문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예전에는 7말 8초에 매우 무더운 상황에서 피서를 며칠 갔다 오면 무더위로 인한 피로를 해소할 수 있었지만 갈수록 폭염일수와 열대야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다른 자구책이 필요하다. 즉 피서를 갔다 와도 여전히 폭염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피서 휴가와 관계없이 여름을 버텨낼 방안이 중요해졌다. 서울시에서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여러 피서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수도권이나 지자체 주요 도시에서 제법 긴 기간 피서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강원도 지역이 피서 지역으로 많이 선호됐다. 이유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합적인 동기로 강원도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대적으로 교통편이 좋아진 점도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 아무래도 오가기 편하고 비용이 적절한 곳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차량을 이용해 부산의 해수욕장도 많이 방문하며 상대적으로 광안리 해수욕장은 밤에 차량으로 많이 이용한다는 데이터가 있다. 열대야가 늘수록 도심에서 가까운 이런 바닷가를 찾을 수 있다. 한강공원도 야간에 방문자가 늘기 때문에 이에 맞춰 여러 행사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강 공원에서 야간 풀장을 만들어 영화를 볼 수도 있다. 다만 한강 공원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일상 속 피서라는 측면이 강해질 것이다.
실내 공간을 통해서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것은 ‘몰링(Malling)’일 것이다. 쇼핑과 외식을 겸비할 수 있는데 특히 근래 도시 외곽에 들어선 대형 쇼핑몰 등은 널찍한 공간을 통해 많은 이용자를 흡입하고 있다. 다음으로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등에서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유형을 생각할 수 있다. 단순 관람이 아니라 체험과 그에 따른 성과물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 많아졌다. 특히 가족 단위로 방문할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이며 무엇보다 교육적 효과까지 기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도서관에서 북캉스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주어지기도 한다. 주변에 수목원이나 숲을 찾을 수 있는 도서관도 추천된다. 이는 피서 자체도 있지만 시각적 효과를 누리기 위한 점도 있다. 무엇보다 단순히 책을 읽거나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는 콘셉트로 확장 진화하고 있다.
한편으로 실내 공간에서는 콘텐츠 소비를 통한 피서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관의 경우 과거에 비해 방문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최근에 ‘F-1’ ‘쥬라기공원 시리즈’ 때문에 4D 특수 상영관의 관객 방문이 늘었다. 정부에서는 할인권 450만장을 제공하며 영화관 관객 증가를 위한 정책을 펴기도 했다. 어느 때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없고, ‘노이즈’같은 공포스릴러 영화가 주목 받기도 했다. 넷플릭스에서도 층간 공포스릴로 소재로 삼은 ‘84제곱미터’를 선보였으니 오컬트보다는 일상생활 공포물이 트렌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연계에서는 ‘렛미인’이나 ‘스위치’ 같은 명불 허전의 작품이 관객을 찾기도 했다. 연극 ‘2시간 22분’은 소리를 매개로 공포감을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에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미스터리스릴러전’은 신작 시리즈를 통해 팬덤을 형성해가고 있다.
여행과 실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호캉스를 떠올릴 수도 있다. 폭염의 기승으로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용자들을 위해 가족 체험과 미디어아트 등 문화 예술적인 접목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호텔에 머물며 근거리에서 바캉스를 보냈지만 지금은 해외여행을 간다고 해도 호텔 밖으로 나오지 않고 푹 쉬다가 오는 개념이 확립됐다.
어느 곳을 가도 밤에는 잠을 자기 힘들 수 있기에 영상 콘텐츠를 볼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 시리즈이건 예능이건 정주행 즉 ‘빈지와칭(Binge Watching)’으로 무더운 밤을 견디려 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 OTT 콘텐츠가 강세이기도 하다. 통계청의 ‘202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가 시간은 좀 늘었지만 절반 이상인 2시간 43분이 미디어 이용 시간이고, 특히 스마트폰 등 ICT 기기 사용 시간은 5년 전보다 약 2배 늘었다. 그 때문인지 만 10세 이상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5년 전보다 8분 줄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무더위에 따른 피로감은 얼마든지 가중될 수 있다. 한편 ‘태백 쿨 시네마 페스티벌’ ‘정동진 독립영화제’ 등은 지역이자 실내와 실외를 결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살필 때 무엇보다 현명하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기 위해 짜임새 있는 계획이 필요해졌다. 길게는 6월부터 9월 중순까지 더위를 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기업과 정부, 지자체도 이에 발맞춰서 움직여야 하는 이상기후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폭염에 충분히 쉬고 잘 이겨나가는 피서 문화의 모색과 확립은 개인이나 가정의 행복과 건강만이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 나아가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