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만화 속에서 생존철학을?!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0. 9. 27. 23:05

 만화속 사회 생활의 멘토링

-김봉석의 ‘1화일지는 몰라도 끝은 아니야.’

 

 

빨강머리 앤, 곰돌이 푸, 보노보노... 얼마 전까지 만화책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에세이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기억이 난다. 대개 만화 주인공들이 작품에서 말했던 대사들을 두고 저자들이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은 책들이 있었다. 그 캐릭터들을 좋아했던 독자들이 많이 찾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 청소년기에 그 주인공들에 감정이입을 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해왔던 세대들에게는 소장하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킬만 했다. 만화를 통해 인생의 정체성과 철학을 정립했던 그들에게 만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책들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 청춘들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조직 생활에서 자신이 지쳐가고 있을 때,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릴 때 다시금 만화 주인공들이 말을 걸어 올 것이다. 버트란트 러셀이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나게 한다. “사람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점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런 책들도 뭔가 확인하고 싶은 말들이 책에 담겨 있을수록 베스트셀러가 된다.

 

 

김봉석의 ‘1화일지는 몰라도 끝은 아니야는 만화 관련 에세이로 만화책에 나오는 대사를 다루지만, 만화 주인공의 그림조차 없다. 오로지 만화책에 나온 문장들이 있을 뿐이다. 그 주옥같은 만화책에 주인공들이 없으니 만두 속이 없는 만두가 된 듯 싶다. 독자들은 만화 주인공들을 보고 싶어 이런 종류의 책을 산다는 전제를 멋지게 날려버린 기획의 결과물로 보인다. 설마 저작권 문제 때문에 캐릭터들을 뺐을까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애써 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중심에 두고 있는 점은 저자가 겪어 온 11개의 조직 경험과 솔직한 사회생활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부제목이 아예 인생 만화에서 끌어올린 직장인 생활철학 35가지. 앞서 나왔던 달콤한(?) 책들 보다 한 발 더 나간 책이자 노골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명작만화 에세이를 읽는 독자들은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 괴롭고 외로움에 처한 20-30대일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직장에서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솔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냥 그들에게 낭만적 가치를 독야청청 지키라거나 단순히 존버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에서는 다른 책들처럼 주인공이 읊조리는 대사를 주옥같은 말을 명문처럼 받아들고 인생의 철학을 논하지는 않는다. 실제 조직 생활에서 겪은 경험에서 오는 깨달음을 만화의 대사들이 표현한다. 그렇기에 만화책 주인공의 말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화에 나오는 문장을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낫다고도 한다. <베가본드>세상 사람들은 다 비웃을 거야 상관없어 하늘은 비웃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비틀어 하늘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자신을 인정하는 세 명을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또한 직장은 자아실현을 시켜주는 공간이 아니라며 <무뢰전 가이>에는 나는 풍요로웠어, 혼자였으니까, 고립되어 있었으니까라는 말과 다르게 저자는 그렇게만 살지는 말라고 한다. “혼자 당당하게 살아라.” 이런 말은 정말 멋져 보이고 만화책만이 아니라 많은 인문서에 나오는 말이고 아마 젊은 시절에는 한 번쯤 매력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자유롭게 살기! 얼마나 멋진가. 밥벌이에 연연해하지 않고서 말이다. 저자는 아예 자아실현 이전에 이는 경제적 독립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글을 쓰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고 솔직하고 털어놓는다. 낭만적 글쓰기, 젊은 시절부터 영화 글쓰기로 살아온 저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경제적 자립을 하기 위해 조직 생활을 했고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도 마찬가지라는 것. 하지만 저자는 <빨강머리 앤>의 말을 놓지 않으며 세속적인 생활을 합리화하지는 않는다. “네 낭만을 전부 포기하지는 말아라. , 낭만은 좋은 거란다. 너무 많이는 말고, 조금은 간직해둬.” 그래 낭만만 찾으면 현실의 조직 생활 즉, 밥벌이를 할 수가 없으니 사람이 애초의 가치관도 아예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저자는 현실적인 낭만은 조금만 남기고 살아남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말한다. 예컨대, <진격의 거인>쓰레기는 구별하지 않으면 안돼.”라는 말을 들며 그렇지 않으면 나까지 물들거나 지저분해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직 안에 개인 처세에 대해서는 저자는 <꼴찌, 동경대 가다!>“‘개성을 살리면서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사회란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를 인용하며 사회에는 룰이 있고 그것에 따라 살 수밖에 없지만,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고 때를 기다리고 하거나 <슬램덩크>나는 팀의 주역이 아니라도 좋다.”는 말을 인용하며 조직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한다.

 

묘하게도 이 책의 만화 속 대사들은 서로 상보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라이온 킹>과거는 상관없어. 아프긴 하겠지. 하지만 둘 중 하나야 도망치든가 극복하든가.”라는 유명한 말은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는 낙원이란 없는 거야.”<베르세르크>라는 말과 이어진다. “복수는 무의미한 비생산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복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원한해결사무소>”라는 말은 총을 쏴도 되는 건 총에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뿐이다. <코드 기어스>“와 연결된다. 저자는 만화 대사를 통해 이렇게 자아실현 해주는 낭만의 공간은 없다며 적극적인 타개는 물론 복수까지 말한다.

저자의 삶이 점철된 만화 대사들을 만화든 영화든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현실의 도피처가 아니며 그렇게 만드는 책들에 빠진다면 위약(僞藥)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만화 속에서 이런 현실 처방전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읽는 책들은 대개 명작 만화가 아니고, 학습만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화를 그렇게 봤다면 여전히 만화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이겠다.

/ 김헌식(박사, 평론가, 대구대학교 대학원 교수)

 

*기획회의 7월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