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영화평론이 아니라 배급평론을 꿈꾸고 싶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0. 9. 27. 22:45

왜 지금 배급을 주목하는가

-이화배의 영화는 배급이다.’

 

어느 꽤 유명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다. 진행자가 꽤나 지명도가 있어서 그의 이름을 내세워 프로그램명을 지었을 정도였다. 그 진행자는 연륜이 있고 객관적 합리적이면서도 의식 있는 지식인으로 통했다. 그런 지식인의 말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생방송이 시작되자 그는 첫 마디를 이렇게 떼었다. “연말 결산이라 월요일부터 정치 경제 사회 분야를 했고, 이제 문화분야를 할 순서인데, 오늘은 좀 재밌게 하시죠. 어제까지 너무 딱딱했거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준비해온 내용이 궁색해지는 기분이었고, 이제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하나 싶었다. 어디 이 진행자만일까, 이런 말은 흔하게 듣는다.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대개 레저나 엔터테인먼트와 일치한다. 하지만 문화는 꼭 말랑말랑하고 재밌지만은 않다. 영화나 드라마도 심각한 내용이 많듯이 문화 영역도 딱딱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이 얼마든지 있다. 인간 세상이 그렇듯이 갈등과 분란,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문화를 가볍고 재밌게 소비하려는 방식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영화평론가들이 3천명이 된다는 통계를 들은 적이 있다. 많은 청춘들이 영화 평론을 꿈꾸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은데 이들이 다루는 것은 말랑한 영화 콘텐츠 자체에 머문다. 영화를 기획하고 그것이 관객에게 전해지는 데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들에 대해서는 영화평론에서는 대개 생략된다. 아무리 훌륭한 영화들도 그 중간 과정 때문에 창작되거나 되지 못하고 흥행에 참패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데 말이다. 대표적인 그 과정이 배급이다. 영화 평론가는 꿈꾸는 유튜버들은 있어도 배급사를 꿈꾸는 이들은 없다. 배급은 작품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얼마든지 중요하지만 홀대 받기 십상이다.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영화는 제대로 평가를 받기는 힘들고 다시 재창작으로 이어질 수도 없다. 이를 간과하면 작품 자체만 분석하는 행위는 부질없게 되고 마는 것은 필연임에도 잘 부각되지 않는다.

 

방송 콘텐츠를 잠시 보면, 흔히 시청률을 바탕으로 방송 프로그램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 쉽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들어도 경쟁 프로가 잘못 만나면 시청률은 낮을 수 있다. 어느 시간대, 어느 방송국에서 시청자에게 노출되는가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즉 방송은 편성이 성패를 좌우한다. 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본래 책을 읽지 않기 때문에 캠페인을 벌이는 것임이 공공연한 비밀인데 어디 책만이 그러겠는가. 영화처럼 방송 프로그램도 계절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야외로 놀러 가기 좋은 날에 영화를 보지 않듯이 방송 프로그램도 잘 만들어도 시청률이 낮아질 수 있다.

 

이화배의 영화는 배급이다.’는 책 제목이 도발적이고 직접적이다. 이렇게 배급을 강조하는 것은 거꾸로 영화를 배급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배우나 연출 관점, 스타일이나 스토리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말이다. 아마 이 지면에서 영화에 관한 책을 다룬다면 아마도 영화 에세이나 마니아틱한 B급 영화로 다뤄야 그럴듯할지 모르겠다. 분명 그런 책들도 의미가 크지만 정말 영화를 사랑한다면 영화의 산업적 시스템을 정밀하게 인식해주는 책도 중요하다. 산업이라는 말이 거창한데 영화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생존이자 생계의 문제이고 배급은 이를 전적으로 좌우한다.

다시 출판 이야기를 좀 하면, 분배를 강조하고 사회 공헌을 강조하는 의식 있는 지식인들도 대개는 큰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를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큰 출판사들을 선호하는 것은 영화로 치자면 그 큰 출판사들이 배급을 잘 해주기 때문이다. 골고루 잘 사람들에게 노출을 시켜주기 때문에 많은 개인이 부가수익까지도 얻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심지어 평소 영화는 비즈니스도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출판도 돈이 중요하듯이 영화는 더욱더 강조할 바가 아니기에 이 책의 저자는 배급의 중심은 돈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아서 오히려 자본과 시장을 비난하는 영화 평론 서적보다 솔직하고 신뢰가 간다.

 

이 책에서 새삼 놀라운 것은 많은 용어들에 대한 담백/명료한 정리다. 그렇기에 많은 관련지식이 압축이 되어 있고 압축을 푸는 디코딩을 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대목도 자주 있다. 하지만 그 용어들은 과거 영화 관련 서적에 나오는 이론적 수사학에 관련한 용어들이 아니며 실무 담당을 오랜 동안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자신감과 확신이 농축되어 있어 생생하고 실용성이 더한다. 영화가 기획, 투자, 제작, 유통, 소비는 물론 부가판권과 리메이크뿐만 아니라 그 수익을 나누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자세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배급주체들이 단순히 영화를 각 영화관에 나누어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창작 단계에서도 적극 개입한다는 점 등 배급이 갖는 적극적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내용들이 어떤 외서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한국적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실제 겪고 목도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성찰에서 비롯한다. 때문에 영화 평론을 넘어 배급 평론도 필요해 보인다.

 

잘 만든 영화도 관객을 만나야 빛을 발하고 당연히 관객을 만나야 투자제작자도 빛을 쬐이게 되어 살 수 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19 확산이 그칠 줄 모르는 가운데 개봉 영화들은 연기를 계속하고 있고 배급 일정은 계속 버퍼링의 홀드백 상황이다. 언제까지 연기만 할 수 없으니 이럴수록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늘어나고 있고 모두에게 생존이 치명적으로 위협당하고 있다. IPTV, OTT가 아무리 비대면 컨텐츠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정도가 증가한다고 해도 여전히 영화관의 수익이 차지라는 비율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배급 전략의 최우선 과제는 물리적 보건 안전이 최우선 일 수밖에 없다. , 보건안전의 공간을 중심으로 배급이 최적화되고 이것이 관객들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영화계의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고 여기에 산업적 명운이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 소비가 전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것은 암묵적으로 명확하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인 구축에 누군가 나서야 하는데 그 주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고려한다면, 배급사들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가 충분한데 말이다. 끝이 쉽게 보이지 않는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어디를 주체화 시키고 지원을 해야할 지 명확하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본다. /김헌식(평론가, 박사, 대구대학교 대학원 교수)

 

*기획회의 10월호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