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가 한국관광공사와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해온 ‘1마을1축제’가 29일자로 반년이 됐다. 지난 6월 21일 전북 김제 하소백련축제를 시작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자생적으로 출발한 축제현장을 찾아 숨어있는 마을의 스토리를 발굴해온 이번 시리즈는 무엇보다 국내 일간지로서는 처음으로 축제자문위원단을 구성, 동행 취재하면서 축제 컨설팅을 시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축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각 축제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재평가함으로써 양적인 확장을 우선시해온 국내 축제들이 질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마을의 전설을 바탕으로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김포의 ‘손돌공 진혼제’, 토착민과 귀농인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전북 진안의 ‘진안군 마을축제’, 지역의 자원을 글로벌 콘텐츠로 발전시킨 전남 강진의 ‘강진청자축제’ 등 총 15개 마을축제이야기는 공동체의식을 심어주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축제자문위원과 취재팀들이 지난 반년을 돌아보며 우리 축제의 아쉬움과 정체성, 앞으로 축제시리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봤다.
일사일촌 자문단 방담회...권영미 이성태 유경숙 김헌식 본사 회의실.안훈기자 rosedale@ |
-지난 반년간 ‘1마을 1축제’에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면서 느낀 우리나라 작은 마을 축제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들을 자유롭게 나눠보고 싶다.
▶이성태(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 연구원)=축제를 지자체나 단체장의 업적주의로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더라. 해당 마을의 축제에 컨설팅을 하고 개선 아이디어 등 대안을 제시해도 잘 반영하려 하지 않는다. 실패할 경우 책임 문제가 따르기때문에 아예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해오던 방식을 고집하거나 다른 축제에서 하는 이벤트를 따라하는 식을 되풀이하는 게 안타깝다.
▶김헌식(문화평론가)=예산 문제로 축제 운영에 딜레마를 떠안고 있는 곳도 많다. 장사항 ‘오징어맨손잡기축제’의 경우 오징어잡기가 핵심 콘텐츠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아 문제에 봉착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수상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트를 사는 데 예산을 투입하다 보니 적자에 시달리는 형편이 됐다. 이용료를 높이면 관광객이 감소하니까 올리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이런 경우, 개별 축제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있다면 유휴 장비를 저가에 임대해서 쓰는 등 더 나은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헤럴드경제의 이 시리즈가 네트워크의 매개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유경숙(축제연구소장)=좀 더 실질적인 대안을 제공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태스크포스를 따로 만들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마을 축제를 여행상품으로 만들 경우 여행사의 상품기획 전문가를 기용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해온 컨설팅을 구체화시켜 현실화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분야별로 객관적인 축제 평가지표도 만들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성태=축제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평가지표가 단체장이나 직원들의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방문객수 등 숫자적인 것, 외형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유경숙=한국은 축제를 즐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 과도기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선정하는 우수문화관광축제의 경우에도 ‘관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편의시설이나 접근방법 등 축제의 핵심 콘텐츠와 상관없는 요소가 평가지표에 중요하게 반영되는 것을 보게 된다. ‘관광축제’뿐 아니라 ‘문화예술축제’로서 콘텐츠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한국인의 특성이 응축된 축제들에 대해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축제만도 수백개에 이르지만 천편일률적이다. 우리의 정서에 맞는 한국적인 축제란 무엇인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는데.
▶김헌식=축제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지나치에 서구에 맞춰져 있다. 공공연하게 “한국의 축제는 축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현장에 돌아다니면서 내가 판단한 한국의 축제는 ‘잔치’의 개념이다. 우리가 평가하는 양적인 평가 자체도 서구적 기준에 맞춰진 게 아닌가 싶다. 숨겨져 있는 작은 축제는 그런 양적인 평가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고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만의 축제에 대한 개념 구축이 필요하다. 우리 마을 축제는 가족형 체험축제, 전원체험축제의 요소가 강한데 그 점이 강점일 수 있다. 주최 측과 손님을 구분하고 무조건 판을 벌여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은 단체나 회사들이 유대관계를 맺고 축제를 통해 또 다른 공동체가 되는 과정이 보기 좋더라. 과거 우리의 축제는 주인과 손님이 따로 없는 함께 어울리는 마당이었다. 이런 ‘잔치’ 의 개념이 마을 축제에 접목돼야 한다고 본다.
▶권영미=전통적으로 농가에는 24절기에 따른 ‘잔치’가 있었다. 남사당놀이, 굿도 우리 고유의 축제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을 신명나게 하는 전통축제 콘텐츠의 발굴과 육성이 중요하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우리 전통 축제의 개념이 농가 단위의 ‘잔치’인 것은 맞지만 개별 농가의 체험 프로그램을 모두 ‘축제’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매년 1300개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관 주도로 어디가나 똑같은 체험행사를 모아 놓아 식상하다. 스마트폰의 앱스토어에서 자생적인 앱이 사람들을 모으듯, 축제의 큰 줄기를 정하고 장을 마련해 놓은 뒤 즐기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나가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권영미=맞다. 축제의 본질은 신명나게 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뒤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컨설팅이 필요하다.
▶이성태=이는 ‘놀이터 이론’과 통한다. 국민의 선호도가 다양해지는 만큼 축제도 열린 콘텐츠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가령 요즘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간다. 게스트에 따라 연극내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축제도 그날그날의 관람객에 따라 유기적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
▶김헌식=달리 말하면 ‘플랫폼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굉장히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포항의 어떤 등대에 사람들이 몰려온다고 가정하자. 과거에서 콘텐츠를 찾기보다 등대가 만들어나가는 콘텐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등대에 누군가 낙서를 하고, 거기에 계속적으로 이야기를 남기면 그게 콘텐츠가 되고 그걸 보러 사람들이 오게 된다. 앞서 왔다간 사람들,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흔적이 또다른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내 관광객만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축제의 글로벌화도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조언을 해준다면.
▶유경숙=국내에서는 비교적 성공했다는 축제도 아시아에조차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를 알려면 일본의 ‘마츠리’ 문화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발돋움한 축제들을 보면 ‘마츠리’처럼 마을 중심의 자생적인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마츠리 축제라 하면 한 통으로 보지만 실은 동네마다 저마다의 마츠리를 가지고 있다.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축제야말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가령 청도 소싸움의 경우, 다른 나라는 가지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된다. 그런 콘텐츠를 발굴해서 모델로 제시하는 게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본다.
▶김헌식=국내외 각종 블로그와 연계해 다양한 정보와 현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가령 유럽의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마을의 축제도 누군가의 블로그에 올려지면서 세계인의 축제가 되는 식이다. 사실 그런 시골마을에 가보면 딱히 볼 게 많은 것도 아니다. 라벤다축제라면 온통 마을이 라벤다 향기와 보랏빛으로 바뀐다. 보여줄 뭔가에 연연해 이벤트를 많이 벌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헤경축제기획팀/meelee@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m
축제자문위원 : 권영미(한국벤처농업대학교수), 김헌식(문화평론가), 유경숙(세계축제연구소장), 이성태(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