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티셔츠에서 볼륨을 높여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0. 9. 27. 22:39

 

-백영훈의 음악을 입다리뷰

 

MTN(MOUNTAIN), NATURE, FOLLOW ME, LOVE ME, DOG FAMILY... 티셔츠에 들어간 영어 문구가 사실은 낯뜨거운 뜻을 가지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되고는 했다. 티셔츠는 그만큼 새겨진 문구의 뜻도 모르고 편하게 입는 옷이라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티셔츠를 아무거나 입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는데, 그들은 바로 대중음악 애호가들이다. 아마도 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다면 티셔츠에 들어간 문구만이 아니라 이미지, 캐릭터만이 아니라 내력까지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문화연구자들 대부분은 이런 티셔츠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티셔츠 문구에 들어간 음란성에만 귀를 쫑긋 세우고 기껏해야 맹목적인 문화 사대주의를 운운해 왔을 뿐이다.

 

백영훈의 음악을 입다는 매우 중요한 음악적 예술의 오브제이면서도 그동안 외면해왔던 뮤직 티셔츠에 대해서 눈이 번쩍 뜨이게 했다. 이른바 뮤지션 티셔츠 수집가의 책은 생소하기만 했고 이제야 이런 책이 나왔다는 아쉬움과 반가움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 저자는 많은 뮤지션들의 이름과 그들이 발표한 수많은 앨범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곡들이 소개 되고, 음악적 특징과 세계, 그리고 의미와 가치를 음악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곧잘 분석한다. 하지만 상당 분량은 티셔츠에 관한 에피소드인데 티셔츠 한 장이 뭐라고 티셔츠를 향한 열망이 어떤 때는 눈물 겹기도 하다. 특히 꼭 구하고 싶은 티셔츠는 일찍 품절이 되거나 아예 팔지도 않는 경우는 왜 그리도 흔한가 말이다. 그나마 인터넷 구입이 가능해진 모바일 상황에서도 말이다. 사실 이런 티셔츠는 굿즈 즉, 기념품의 하나였다. 손쉽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의 옷이었지만 입는 사람의 취향과 스타일이 담겨 있는데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그들의 티셔츠도 마찬가지일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티셔츠가 그런 옷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고 취향과 정체성의 진화라는 문화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단순 간편한 옷이지만 나름 역사가 있는 티셔츠는 19세기 속옷이 상의와 하의로 구분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1900년 대초 미 해군의 유니폼 안 속옷 상의로 사용되면서 오늘날의 디자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군 선원 크루(Crew)들이 입어 오늘날의 크루넥(Crew-necked)으로 이어졌는데 하나의 대중 패션이 된 것은 1950년대 미 할리우드의 배우 말론 블랜도가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근육질 핏을 살려주면서 하나의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티셔츠는 비록 단순한 옷이지만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취향과 세계관,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옷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음악 티셔츠를 찾는 팬들은 단지 기념품이기 소장 욕구가 발동하고 이를 과시하기 위해 구입하는 것일까. 적어도 그렇게 대답하는 팬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과 음악인과 그들이 추구하는 삶과 그들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싶은 팬들의 바람이 담긴다.” 문화예술은 바림직한 이상적 삶을 미학적으로 담아내는 영역이며 뮤지션들은 음악과 노래로 이를 구현하려 한다. 이를 이미지 형태로 반영하는 것이 티셔츠이다. 다른 굿즈는 소장하는데 그치지만 티셔츠는 몸에 항상 착용할 수 있다. 티셔츠를 입는 것은 단지 편한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말대로 음악을 입는 것이며 이상적인 삶의 지향점을 입는 것이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별스럽지 않거나 조악할 수 있어도 그렇지만 미학적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어필 할 수 있어야 그들의 음악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뮤지션 티셔츠는 책안의 요 라 텡고의 에피소드처럼 문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물이다. 음악인과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티셔츠를 통해 무언의 대화를 할 수 있고 음악을 공유할 수 있다. 뮤지션들에 대한 충성도와 연대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티셔츠이기도 하다. 하나의 문화운동처럼 뮤지션이 꿈꾸는 세상을 티셔츠를 통해 공유하고 널리 확산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뮤지션 티셔츠를 입고 음악을 듣는다는 점이다. 마치 클래식 공연장에 정장을 입고 들어가는 격식인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한발 더 들어가는 심미적 원칙일 것이다. 여기에서 옷은 왜 입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과 닿게 된다. 사람이 옷을 만들지만 옷이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단지 몸을 보호하는 생물학적인 차원이 아니라 어떤 이상적 지향점을 더 잘 느끼고 분명하게 환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비록 티셔츠 한 장일 지라도 원시인들이 몸에 새긴 문양하나도 그들이 죽음과 고통을 넘어 선 피안의 땅에 대한 갈구가 담겨 있는 것과 같다. 단지 뮤지션들과 음악은 그 대리자이면서 분신과도 흡사할 뿐이다. 옷은 자신을 위한 것이자 세상과 상호적 관계를 위한 언어이다. 저자는 또한 뮤직 티셔츠를 골라서 입는다는 것은 내가 나라는 사람을 전시하는 갤러리 큐레이터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표현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자신이 방문한 공간, 기분과 감정, 상황에 따라서 티셔츠를 맞춰 입는다고 했다. 아마도 일상생활에서 음악이란 우리들이 삶을 때로는 위로받게 하고 견디며 나아가게 하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다. 이를 통해 음악을 우리가 왜 듣고 공유하는가라는 화두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직도 전문가들에게나 뮤지션들에게조차 티셔츠는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의 음악 세계를 티셔츠를 통해 잘 제작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티셔츠에 음악과 음악 세계를 잘 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미학적인 화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좀 더 많이 풍부하게 다뤄져야할 것이 티셔츠에 담긴 음악과 음악인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티셔츠는 단지 굿즈가 아니라 또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음악과 융합한 움직이는 모빌리티 회화들이다. 요즘 음악을 갤러리에서 전시회롤 통해서 더욱 팬들과 깊이 그리고 가깝게 만나고자 하는 노력들이 활성화되고 있으니 뮤지션 티셔츠 갤러리가 등장할 날도 기다려 보게 한다.

/김헌식(박사, 평론가, 대구대학교 대학원 교수)

 

*기획회의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