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관점의 청년 정책이 필요.
‘카공족’이라는 현상이 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주로 청년들이 이에 해당한다. 흔히 이 단어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으로만 여긴다. 하지만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이나 정부는 이런 현상이 국가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을까. 일단 지난 19대 대선 공약에서 청년 정책은 없었다. 비록 청년 정책을 언급을 한다고 해도 청년실업과 미취업 등 일자리에 대한 담론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는 비단 대선 후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언론 매체들은 인터뷰 등을 통해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중심에 두었다. 청년들이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정책적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이는 거주공간은 물론이고 학습 공간 그리고 음식 권리 등에 관한 사항을 말한다. 밥을 굶은 대학생과 비싼 민자 기숙사 문제는 배제되었다. 문화 향유권은 사치로 보일 것이다. 청년들이 영화나 전시, 공연을 볼 수 있는 환경은 얼마나 되며, 여행 레저와 취미 활동 나아가 그들이 문화예술 창작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은 어떠한지 언급조차 없었다. 비단 청년은 대학생들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년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대학생으로만 한정하는 경우도 많다.
청년의 꿈은 오직 취직에 수렴된다. 청년의 뇌에는 기승전‘취직’ 밖에 없어서 그것만 해결하면 모두 다 해결되는 듯이 여기는 모양새다. 정말 그럴까. 오로지 취직만을 생각하고 그것에만 모든 관심과 열정을 쏟아내는 짓은 불행하다. 아니 실제로 그런 청년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 개별화 되고 파편화 되어 있는 개인 경쟁의 시스템을 혁파하지 않는 이상 일자리 창출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근본적인 모순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 취직을 하거나 정규직이 되어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충만하게 채워나갈 수 있는 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생 가치의 실현과 충만함은 일찍부터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가능하다. 물질과 본능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다우며 품격의 삶을 지향하는 것이 문화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을 바라보는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의 구조는 물질에 중심을 두는 물화(物化)적 관점에 머물고 있다.
인간은 노동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문화의 존재이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일하고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며 문화의 관점에 따라 주변 환경을 바꾸어 나가려 한다. 카공족이 등장하는 것은 문화적 관점이 학습 공간에도 반영되고 있음을 뜻한다. 답답한 고시원이나 답답한 도서관의 열람실이 아니라 좀 더 열린 개방적 문화적 공간에서 학습하기를 선호하게 되었다. 카공족은 음악도 들으면서 커피도 마시는 단지 외우는 기계 아닌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는 대학의 열람실이 카페식으로 모두 바뀔 날이 멀지 않을지 모른다. 구글이나 페북을 말하지 않아도 문화예술과 노동이 함께 존재하는 기업이나 작업공간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북구의 스타일이라는 것도 물화가 아니라 문화적 스타일의 삶을 반영한다.
일자리에서 물화 관점을 보자. 안정적인 일자리로 먹고 사는 것이 지속가능하게 유지되어야 결혼과 출산이 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기계적으로 꼭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산업시대의 국가의 관점이다. 정치권과 정부의 관점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인들의 삶이 가치 있고 충만하게 될 수 있는 문화적 관점의 공동체 모델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물화적 관점에만 머물 것이며 호응을 받기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단순히 일자리를 갖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그 덕분에 정규직에 취직하는 것이 청년의 꿈이 갖는 완결성은 아닐 것이다. 그 이후에 어떤 인생과 삶을 만들어나갈 것인지를 청춘기에 도전하고 학습하고 체화해야 한다. 그것은 현실을 넘어선 미래 성취의 역량을 말한다. 물화는 현재의 본능에 충실한 것이며 문화는 미래를 뜻한다. 이 시대 청년들의 꿈은 무엇인가 물어본 적이 있는가. 정말 청년들이 돈 많이 주고 안정된 일자리 찾기만 몰입해 있을까. 청년이 미래를 꿈꾸어야 나라의 미래도 존재할 수 있다. 국정운영의 원칙은 청년들이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청년이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삶을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비전의 존재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데서 출발한다.
글/김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