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나만 쳐다봐! > 조명효과
코넬의 토머스 길로비치 교수는 실험에서 한 학생에게 유명가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티셔츠를 입게하고 4~6명의 대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실험실로 들어가게 했다. 실험실에는 아주 잠깐 동안만 머물게 했다. 그런 후에, 티셔츠를 입은 학생에게 실험실에서 만났던 학생들 중에 몇명이나 자신이 유명가수 티셔츠를 입었는지 알아차렸을 것 같은지 추측하게 했다. 실험실에 있던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그 학생이 무슨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지 물었다. 그 결과 티셔츠를 입은 학생은 실험실에서 만났던 학생들의 46% 정도가 자신이 유명가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맞힐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23%만이 그 학생이 유명가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답했다. 이후의 실험에서는 학생들에게 코미디언의 티셔츠를 입게 한 후 동일한 실험을 반복했다. 역시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8%의 학생만이 그 학생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기억해냈지만, 티셔츠를 입었던 학생은 절반가량인 48%가 자신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알아맞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 연극 무대에 선 주인공의 머리위에는 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주인공의 머리위로 동그랗게 비춰지는 조명은
주인공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다니고 관객들은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 감정의 흐름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주인공이 어떤 의상을 입었는지,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어떤 대사를 하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관객들에게 그대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은 종종 자기도 이러한 연극 배우처럼 조명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는데 이를 조명효과(Spotlight effect)라고 한다. 가끔 '이런 옷을 입고 어떻게 그런 자리에 가지?'
라거나 '이 신발은 이 옷과 어울리지 않아'라고 걱정을하는데, 그러한 걱정들은 대부분 과장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천자칼럼] 스포트라이트 증후군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ng.com심리학자 A H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생리 · 안전 · 소속감 · 인정 · 자아 실현)을 들먹일 것도 없다. 누구나 등 따습고 배 부르면 인정받고 싶어한다. 주위의 사랑과 인정은 존재감을 드높일 뿐만 아니라 금전적 이익 내지 대접과 연결된다.
연예인은 특히 더하다. 연예인들 상당수가 퇴직금 콤플렉스에 시달린다는 말도 있다. 인기와 수입이 비례하는 만큼 퇴직금을 받는 직장인에게 부러움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인기의 상징은 스포트라이트다.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의 존재요,스포트라이트가 사라진다는 건 존재가 사라진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지나친 노출 드레스로 논란을 빚은 배우 오인혜의 해명은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얼마나 절실한 건지 전하고도 남는다. "처음이라 잘 모른데다 사진 한 장이라도 찍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스포트라이트에 전전긍긍하는 건 유명인도 마찬가지다. 인기란 거품같아 늘 조마조마하다는 이들이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톱스타의 경우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면서 자신을 향하던 불빛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 실로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이른바 스포트라이트 증후군이다. 연예인만 그런 것도 아니다. 대중의 관심 속에 살던 정치인,갑 중의 갑으로 생활하던 고위공무원,승승장구하던 직장인 모두 물러나거나 뒤로 밀리면 극심한 상실감과 굴욕감을 느낀 나머지 우울증에 시달리고 그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연예인이나 고위직 출신들의 돌출 발언이나 행동도 실은 주목받고 싶은 심리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는 일은 생각만 해도 두려울 게 틀림없다. 그러나 제아무리 잘나가던 이도 언젠간 무대에서 내려온다. 데뷔 20년차 가수 김건모가 KBS '승승장구'에 출연,자신의 인기가 전만 못하다는 걸 안다며 한때는 인기 있던 시절이 생각나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선배 가수 김수철로부터 "내려올 때 잘 내려와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뒤 마음이 편해졌다고 고백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고 너무 힘주지도,어둠 속으로 떨어졌다고 기죽지도 말 일이다. 환한 레드카펫 위를 걸어가자면 싫어도 좋은 척,힘들어도 안 힘든 척해야 한다. 모든 건 지나가고,어둠은 어둠대로 자유롭고 아늑한 구석도 지니게 마련일 테니.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ng.com
[천자칼럼] 상실감
"답답하기가 콧구멍 없는 사람 같다." "누군들 자기 인생이 그렇게 마음에 들까,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알면서도 나는 내 인생이 정말 마음에 안든다." TV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독립을 감행했던 주부 한자의 독백이다. 논란에도 불구,수많은 주부들이 공감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이유는 한자와 다르지 않다. 이름도 없이 누구 엄마로 살아온 인생에 대한 허망함 때문이다. 결혼 이래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밤낮없이 헌신했건만 남편은 "당신이 뭘 알아" 식으로 몰아붙이고 자식은 자식대로 "엄마랑은 안 통한다"며 돌아서는 데서 비롯되는 상실감이 그것이다.
나이 들어 존재에 대한 회의와 상실감에 시달리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다. 많은 남성들이 현역에서 물러난 뒤 평생을 바친 일이나 직장에 더 이상 자기 자리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괴롭고 우울해 한다. 그러니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나 인기스타가 내리막길에 섰을 때의 심정이 어떨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년 주부나 은퇴한 남편,권력이나 인기의 정점에서 내려선 유명인사가 느끼는 상실감은 가족에 대한 헌신,업무,힘과 인기를 자신의 존재와 동일시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희생적인 어머니나 승승장구해온 사람일수록 주위의 무관심과 냉정한 시선에 당혹스러워 하는 걸 보면 그렇다.
남들이 필요로 하는 자신을 자신이라고 믿은 나머지 누군가 자신을 찾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어쩔 줄 모르는 셈이다. 그러나 자식은 크고 회사와 조직의 주역은 바뀌고 인기는 시든다. 모든 건 지나가고 정상에 선 누구라도 내려와야 한다. 자리와 힘은 영원하지 않다.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시절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거니와 지금까지 자신의 전부라고 여겼던 것들을 잃었을 때 진정 소중한 것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상실에 따른 허탈감과 자괴감에서 벗어나 그동안짊어지고 오느라 낑낑 대던 것들을 내려놓고 진정 필요한 것들을 새로 챙겨보면 살아가기가 한결 수월해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