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잔혹 동시를 가로지르는 '악의 연대기'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5. 18. 09:56

영화 '악의 연대기' 스틸컷.ⓒ(주)비에이엔터테인먼트
지난 5월 14일, MBC '경찰청 사람들 2015'에 출연한 경관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대적일 수 있음을 강조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일 수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것. 이런 점은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특징을 사적 복수라는 단어로 묶기도 한다. 사적인 복수는 특정인에게 개인의 원한을 갚기 위해 폭력이나 상해 등의 불법적인 행위를 가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여기에 담긴 것은 악의 상대적인 관점이 대중문화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악의 연대기'는 이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영화에서 살인교사범이 말한대로 자신의 작은 허물을 감추기 위해 더 큰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핵심 주제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었다. 다만, 이 영화의 내밀한 속살은 사적인 원한과 그에 대한 복수가 핵심이다. 그러나 급격한 반전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는 했지만, 허술한 논리의 결함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급격한 반전은 서사구조의 설득력을 비약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일단 괴롭힘을 당하는 아버지를 고통받은 어린 소년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불합리와 불의에 대한 저항과 공격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실적을 위해 무고한 아버지를 집단살인범으로 가둔 경찰에 다시 후일 복수를 가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경찰은 가해자를 쫓아 피해자를 만든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가해자이면서 나중에 피해자가 된다. 소년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고 다시 가해자가 된다. 

그러나 극적 반전에서 갑자기 공감을 할 수 없는 부분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 소년은 처음부터 사이코 패스의 요인이 다분했다. 일반적인 감정과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설령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해도 보통 그러니까 평균적인 사람이 그런 매우 잔혹하고 치밀하며 용의주도한 악행을 하기는 쉽지 않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절제의 연기를 펼치기도 하는 것은 역시 평범하지만은 않다.

당연히 사람에 따라 똑같은 피해의 상황을 당해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반응을 보이는 법이다. 그것은 성인이나 소년에게 다른 것이 아니라 공통적일 수 있다. 어린이는 아름다운 동시만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잔혹 동시를 읽고 잔혹 동화를 빠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손벽이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 이 영화의 처음 출발은 그런 상황과 취약한 심리적 상태에 있었다. 

주변 환경이라는 외적 조건과 취약한 내적 심리가 만날 때, 가공할만한 잔혹 동시와 잔혹동화가 실제 현실에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통은 이러한 실현화를 위해 나서지 않거나 크게 후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 이후의 행동에 나서는 것 자체에 머뭇거리거나 포기한다. 내적인 조건과 외적인 조건이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악행을 감추기 위해 더 큰 악행을 저지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지 몰라도 그런 악의 연쇄를 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선의지가 매우 강하기 때문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주체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것일 수도 있다. 악행의 연속을 자행하는 본인은 그 상황의 노예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연속과 연쇄의 메커니즘을 끊어버리는 이들이다. 그 의지가 있는 이들이 그나마 사회의 긍정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사적 복수의 정당화도 여기에 해당한다.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은 평균적으로 일어나는 패턴이 아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인 복수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없음이 본질이다. 물론 수사관이나 사법 기관은 그러한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곤란하다. 영화를 창작하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일 수 있다.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적 세계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그것은 자칫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것에 경도되는 것 자체가 이미 평범함을 뛰어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잔혹동시를 넘어 잔혹 콘텐츠에 쉽게 영향을 받는 취약 심리 계층이 있다는 점에 착안한 제도적 정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