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영화 '변호인' 보는 육아맘과 대디는 편치 않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1. 19. 13:26

영화 '변호인' 보는 육아맘과 대디는 편치않다


헤럴드경제 2013년 11월27일자 26면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육아 부모를 위한 극장 운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013년 국정 감사에 제출된 'CGV 서울지역 상영관 23곳 스크린 관별 장애인 좌석 설치현황'에 따르면, 총 188개 스크린 관 가운데 장애인 좌석이 1개도 설치되지 않은 곳은 30.3%였다. 장애인 좌석을 설치했었어도 한쪽에 몰아서 설치한 경우도 많았다. 또한 장애인 좌석은 잘 안 보이는 뒤편 등에 설치했다. 전체적으로 '장애인 편의증진법'에서 규정한 장애인 좌석 설치 기준 1%를 넘기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장애인의 편의를 증진시켰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장애인 좌석은 의무지정석의 할당에 대한 문제이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문화 권리 보장의 일환이다. 흔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문화적 공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배려 제도가 필요하다. 다만 비록 소수자가 아닐 지라도 문화적 공간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이들이 있다. 예컨대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여성들이 문화생활과는 오랜 동안 담을 쌓게 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 때문에 극장 관람을 못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제도적 배려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전당의 공연장에는 초등학교 취학 이전의 아동, 즉 우리 나이로 8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공연장 입장이 불가능하다. 음악을 하는 어린이는 입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입장 허용 연령 이전에는 어떤 경우라도 입장할 수 없다. 다만 어린이 연극이나 어린이용 발레 공연 등과 같이 드문 예외의 경우에는 입장허용 연령이 5살 정도로 낮아지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공연 안내 전단이나 티켓 등에 고지되기에 미리 확인을 해야 한다. 

영화 상영관에서 유아 입장을 막지는 않는다. 다만 48개월 미만(만 4세 이하)의 자녀와 함께 영화 관람하는 경우 1인 1좌석에 보호자와 자녀가 함께 앉을 때만 1인에 대한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48개월에서 만 6세 어린이까지는 영화관별로 티켓 예매 요금이 청소년, 어린이, 유아요금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엄마와 아빠들이 애를 안고 극장에 들어가지 못함을 알고 있다. 영화 '변호인'과 같이 많은 관객이 찾는 영화를 같이 극장에서 공유하고 싶어도 그런 조건이 되지 않는다. 누구라도 동시대의 문화적 향유를 누리려는 욕구는 있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극장과 관련한 국가제도는 관련 당사자조차 배제시키기도 한다. 영화 <화이>에서 화이 역을 맡았던 여진구는 극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지 못했다. 영화 <아저씨>에서 여주인공 소미 역을 맡았던 김새론도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의 서영주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영화 <화이>와 <아저씨>, <뫼비우스>가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해가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기도 있다. 자신 스스로 관여되어 있어도 관람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육아에 해당하는 영화인데도 그것을 영화관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없는 역설적인 위치에 있다. 

물론 제도적인 한계 때문이다. 예컨대 제6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제 역할 찾기를 모색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남성들은 한 번 꼭 관람을 할 필요가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극장에서 관람하기 쉽지 않은 여건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아기와 같이 영화를 상영관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영국의 클래펌 극장(Clapham Picturehouse, http://www.picturehouses.co.uk/)은 엄마와 아기를 위한 극장 상영 프로그램을 운영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미국의 릴 맘스(Reel Moms)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극장들은 입구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세요라고 하는 안내판을 걸었다. 이런 극장에서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마음대로 떠들 수도 있었다. 아이가 울거나 시끄러운 행동을 해도 모두 개의치 않았다. 이러한 면은 반드시 엄마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남편들 가운데에도 육아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수다와 잡담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한 극장들은 개방적이 되었다. 

<청중의 탄생>에서 와타나베 히로시는 정장을 차려 입고 앉아 진지하고 엄숙하게 기침 소리는 물론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음악연주회에 몰두하는 '근대적 청중'의 형성에 대해서 분석한 바 있다. 와타나베 히로시는 18세기 연주회의 풍경은 뒤죽박죽 청중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오페라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공연 내내 잡담을 하고 음식을 마음대로 먹으며 소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음악 연주회는 예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어둡고 진지하며 집중적인 청취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극장이나 공연장에서는 잡담을 하지 않고 조용히 관람을 해야 한다는 예술의식은 아이들을 모두 이런 문화공간에서 쫓아내게 했다. 

영화 상영관에서 조용히 감상하는 것은 물론 예술의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 대한 암묵적인 규정은 관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살폈듯이 아이를 키우거나 교육을 담당하는 엄마 그리고 아빠들도 배제시키는 기제가 되었다. 비록 영화공간이라고 해도 마음껏 소란을 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또 다른 문화 소외자, 문화 기호인들을 위한 공공서비스 제공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기업의 서비스 상품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문화 복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육아 부모를 위한 극장 운영은 장애인 좌석지정석처럼 일부 자리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함을 함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