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보론

'스타트업(Startup·신생 벤처기업)' 열풍 문제...수요를 만들어야 하는데 창업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4. 8. 08:28

[더 나은 미래] "정부, 물만 뿌려도 될 곳에 비료를 주는 愚를 범하지 말아야"

조선일보 | 사회 | 입력 2014.04.08 03:05

'스타트업(Startup·신생 벤처기업)' 열풍이다. 지난 2008년 1만5000개에 불과했던 '스타트업'은 2012년 2만8000여개로 늘었다. 창조경제와 청년 일자리 문제를 '청년창업'으로 풀려는 정부의 의지와 청년들의 관심, 대기업과 벤처 1세대의 지원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런 흐름 속에서 스타트업을 전문적으로 발굴·양성하는 기관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업무 공간을 공유하고, 벤처캐피털(이하 VC)이나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전문기관) 등을 연결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이들이다. 더나은미래는 정부, 공익재단, 기업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지원 기관의 리더들에게 국내 스타트업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이번 좌담회에는 박용호 '드림엔터' 센터장, 이나리 '디캠프' 센터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정남이 '마루180' 팀장이 참석했다.

사회=지원 기관이 많아지다 보니, 외부에서 각 기관의 성격과 강점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먼저 각 공간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

이나리='디캠프'(dcamp·서울 강남구 역삼동)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출자해 작년 3월 27일 오픈했다. 우리 특징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를 강조하고, 청년들이 멘토링을 받을 대상을 직접 고르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의 교육을 진행한다. 또한 리더십이 아닌 '파트너십'을 중요시한다. 작년에 민·관 실무자들이 함께 모여 진행된 '스타트업코리아 라운드테이블' 같은 것이 좋은 예다. 디캠프에는 5000여명에 이르는 온라인 회원과 간략한 검증절차를 거쳐 뽑히는 '인증회원'이 있다. 인증회원은 현재 2500명 정도로, '코워킹 스페이스'(업무공간을 공유하는 것)를 사용할 수 있다. 17개의 입주 스타트업도 있는데. 3~6개월 동안 무료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2층은 유료공간인데, 해외투자자나 미국이나 유럽의 스타트업들이 들어와 있다. 창업자, 투자자, 관계자 등 하루 평균 500여명이 디캠프를 찾는다.

박용호='드림엔터'(Dream Enter·서울 종로구 세종로)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곳으로, 오픈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작년 9월, '창조경제타운'(creativekorea.or.kr)이라는 온라인센터를 열었는데, 그 오프라인 모델 격이다. 창의적인 상상을 현실화시키겠다는 의도다. 우리는 '개방형커뮤니티' 성격이 강하다. 365일 24시간 운영하며,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만 하면 소규모 회의실(4곳)과 대형 콘퍼런스홀(1곳)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한 달간 누적 이용객은 3000명 정도인데, 80%가 청년이다.

정남이='마루180'(서울 강남구 역삼로)은 아산나눔재단의 대표 철학인 '기업가 정신'을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 규모로, 오는 14일 개관한다. 우린 외부의 VC나 액셀러레이터들과 협력하는 모델이다. 1층 '코워킹스페이스'에 벤처기업 '마이크임팩트'가 들어와 창업가들에게 특화된 공간을 운영해주는 게 좋은 예다. 2층부터 5층까지는 VC 2곳과 액셀러레이터 2곳이 들어온다. 같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마주하며, 교육과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지하 1층과 1층은 예비 창업가들을 위한 공간이며, 2층은 단기(3개월 단위) 인큐베이팅 공간이고, 3층~5층은 장기간(1~2년) 입주할 수 있다. 입주할 9개의 스타트업을 최종 선발했다. '열린 공간'(오픈 스페이스)으로 꾸며져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게 한 것도 특징이다.

임정욱='스타트업얼라이언스'(STARTUP ALLIANCE·서울 강남구 삼성동)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 민·관이 협력하는 모델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도했고, 네이버가 100억원을 출연했다. 인터넷 기반의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한다. 실리콘밸리의 생태계 구축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함께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형 인터넷 기업들은 스타트업의 가치를 잘 모르고, 그들과 멀리 있었다. '이런 부분의 연결고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연결'에 초점을 맞춘다. 스타트업끼리의 연결,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연결, 해외 스타트업 커뮤니티들과의 연결, 스타트업과 지원기관의 연결 등이다. 지난주에 '케이그룹(K-Group)'이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는 실리콘밸리의 한국인들을 초청해 우리 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사회=각각의 공간이 차별점이 있지만, 대상이 겹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나리=청년들이 공간을 선택하는 문제는 운영하는 곳의 문화와 관계된다. 우리는 청년들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편인데, 그런 스타일과 문화가 좋으면 여기로 올 것이다. '청년허브'에 갈 수도 있고, '씨즈'에 갈 수도 있다. 도움을 받고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일단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어디도 거부하는 곳은 없다.

임정욱=각 공간을 굳이 차별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공통된 목표가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직접 만들어보는 친구가 많아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공간이 많아져도, 이를 채워주는 사람 없이는 의미가 없다. 지난번에 런던에 갔는데, 런던 구글 빌딩 지하에 청년들이 바글바글했다. 프랑스에는 스타트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다 런던으로 온다고 한다. 분위기를 경험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청년도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런 문화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서로 협력할 수도 있다.

정남이= 새로운 수요가 계속 생겨난다고 본다. 집에서 혼자 하던 사람들이 이런 공간과 문화가 형성되면서 밖으로 나온다. 이를 통해 실패하더라도 더 값지게 할 수 있다.

사회=청년창업의 관심이 커지면서, 창업으로 떠밀리는 청년들도 있을 것 같다. 청년들이 스타트업을 꼭 해야 하는가.

임정욱=대학을 다니면서 자기의 관심 분야에서 일을 해본 경험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이스라엘에서는 대학 때 일을 굉장히 많이 한다. 절반 이상이 일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는데, 이미 졸업할 즈음에 창업해도 성공할 만한 경험이 돼있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발전한 이유다. 우리나라처럼 경험도 없이 '창업을 위한 창업'을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자리 잡은 스타트업들이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이나리=창업 관련 설문조사를 하면, 20대의 70%가 외식업을 하겠다고 한다. 창업이 '돈 버는 것'이라는 인식에 그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창업이라는 것은 결과인데, 그 과정에는 우리가 '기업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어떠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뛰어들어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해보려는 마음이며, 자기 삶에 주인이 된다는 신념과 가치관이다. 모든 대학생이 창업을 할 필요는 없지만 기업가 정신을 가질 필요는 있다. 디캠프의 프로그램 중에 '디매치'라는 게 있다. 작년에는 스타트업과 특성화 고교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했고, 올해는 '다문화 가정'에서 대학생이 된 친구들과 스타트업이 함께 문화적인 뿌리를 되새기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런 활동들은 창업이 아닌,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박용호=센터를 맡은 후에 기업가 정신에 대한 강의를 많이 했는데, "창업은 기회가 되면 할 수 있지만, 기업가 정신은 꼭 가지라"는 말을 강조한다. 기업가 정신은 도전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기업을 다니다 벤처를 운영하면서, 많은 고난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깨지고 무뎌지면서 내공이 쌓였다. 그렇게 정신 무장된 청년들은 직장생활도 다르다. 더 생산적이고, 주인의식도 크다.

정남이=재단에 '아산프론티어아카데미'라는 비영리 리더십 프로그램이 있는데, 캐치프레이즈가 'NGO와 기업가 정신이 만나면 세상이 더 행복해진다'이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건 비영리는 물론,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결국 이들 모두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사회=직접 겪어보니, 요즘 청년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

이나리=어릴 때부터 좋은 지원을 받았다. 기술적인 것에 대한 적응도 빠르고, 아이디어도 좋다. 그런 자질이 일종의 총알이라면 그 총알을 격발시키는 것이 기업가 정신인데, 그 부분은 많이 억압돼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기성세대가 합심해서 그들이 방아쇠를 못 당기게 막고 있는 것 같다. 이걸 풀어주면 그 어떤 세대보다 가능성이 많은 친구들이다.

임정욱=일본의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지인이 '한국 사람들은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굴레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충분한 역량에도 리더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도나 중국 사람들이 '내가 왜 못해?'하고 달려드는 것과 반대다.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서 회의를 하면 사람들이 말을 잘 안 하는 것을 느낀다. 가부장적인 문화에 갇혀있다 보니 생긴 현상인 것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질문하는 교육'을 엄청나게 받는다. 이런 부분이 '도전'이 자연스러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정남이=한국인들의 점잖은 기질이나, 가부장적인 문화가 '기업가 정신'의 제약이 되기는 하지만, 그 제약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 또래는 가정을 잘 건사하는 부모를 보며 '롤모델'로 삼아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위 '유학파'가 여러 문화를 경험하고, 이를 한국에 전파한다. 자연스럽게 해외의 자유로운 문화가 이식됐고, 그에 대한 수요도 생겨나고 있다.

이나리=같은 세대 안의 격차가 큰 것도 문제다. 해외 경험을 할 수 있는 청년들과 그런 문화 혜택이 없었던 청년들 사이의 격차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 인도나 남미 등지에서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기업가 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사회 활동이 많다. 작게 장사를 해본다든가, 뭔가를 만들어보는 식이다. 이를 통해 '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성공 경험을 준다.

사회=건전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향후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가.

이나리=공간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에서 혁신센터 17개를 더 만든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보고자 하는 성과는 창업기업의 '숫자'일 가능성이 높다. 전시행정의 우려가 있다. 전국에 창업을 지원하는 기관이 300개 가까이 있고, 각 대학에도 있다. 그곳의 인력은 거의 다 계약직이며, 박봉에 시달린다. 창업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전문성을 키울 시간과 대책이 없다. 이런 부분부터 먼저 돌보는 게 건전한 생태계 구축의 시작일 것 같다.

임정욱=정부 쪽에서 원하는 부분을 무조건 경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함께 일하면서 현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고, 설득해서 좋은 정책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역할이라고 본다.

P.S. 참석자들은 정부가 창조경제를 기존 성과 중심의 지표로 평가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맞추려다 보면, 물만 뿌려도 될 곳에 과하게 비료를 줘서 생태계를 더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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