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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서희・아들 서눌(徐訥) 3대(代)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8. 27. 13:57

위기를 기회로 만든 담략가(膽略家) - 서희(徐熙)이경일 영남과기대 명예교수
경남도민신문  |  gndm10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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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13  16: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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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의 아버지 서필(徐弼), 901-965)은 고려 광종(光宗)때의 청렴강직을 겸비한 인물이다. 당시, 광종이 중직(重職)에 있던 3인에게 ‘금(金)으로 된 술잔’을 하사(下賜)하자, 서필만이 받지 않으면서 한 말이 “신하가 금그릇을 사용하면 임금은 무슨 그릇을 써야 하겠습니까?”하자, 광종은 감동했다. “그대는 보물을 보물로 여기지 않으니, 나는 그대의 말을 보물로 여기겠다”고 하였다.

그 서필의 둘째 아들 서희(942-998) 역시 아버지를 닮아 ‘성품이 엄정하고 성실’했다. 그는 광종 11년(960)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문무(文武)양면에 능력을 보여, 성종(成宗)의 총애를 받았다.

당시 아시아 정세는 송(宋)・거란(요・遼)의 대립으로 군사적 압력이 있었고, 고려의 입장에서는 우수한 송문화를 수입하는 등 친송정책을 썼다. 따라서 거란의 중원(中原)진출의 야망과 동진책은 고려의 북진정책으로 거란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결국, 거란의 성종(聖宗)은 993(고려성종12), 소손녕(蕭遜寧)의 80만 대군으로 침입하였다. 고려는 상・중・하 군사 30만으로 대적(對敵)하였는데, 서희는 중군사(中軍使)로 평안도 방어 중이었고, 소손녕은 서경(평양)함락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때 고려조정은 공포에 떨었다. 항복을 하거나 서경이북땅을 거란에 넘겨주자는 절망적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서희는 단호히 반대했다. 서희는 소손녕이 보내온 항복요구 문서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그들과 화의할 수 있는 조짐이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것은 사실 고려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과 고려의 문물(文物)수입과 화친의 뜻을 정확히 읽어 내었다.

서희는 담판을 자원하여 안융진(안주)에서 소손녕과 마주대했다.

소손녕은 “나는 대국의 귀인이니 그대가 나에게 뜰에서 절하여야 한다”는 위압적인 요구를 하나, 이를 거부하면서, 서희는 “신하가 임금을 대할 때라면 모르겠지만, 양국의 대신들이 대면하는 자리에서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서희의 비범함을 인정한 소손녕은 그때부터 예(禮)로써 대우하였다.

이어 고구려 논쟁에서, 소손녕은 “고려는 신라땅에서 일어나 거란이 차지한 옛땅을 침식하였으니 신라 국경인 대동강 이남으로 후퇴하라”그리고 “거란과 통교하지 않는 점과 친송책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고,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의 후신이다. 국호도 ‘고려’라 하고, 고구려의 수로인 평양을 서경(西京)으로 중시하고 있다. 국경을 논한다면 거란의 수도인 동경(요양)도 고구려 땅”이다.

서희는 또한 “여진이 평안도 일대를 강점하고 있고, 통교를 방해하고 있으니, 송나라와 통교할 수밖에 없다”고 강경히 변박(辯駁)하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소손녕은 거란의 성종과 논의 끝에 철군을 결정한다.

담판 후 소손녕은 서희를 크게 환대한다. 거란의 군영에서 7일간 융숭한 대접을 하고, 올 때는 낙타 10마리, 말 100될, 양 1000두, 비단 500될을 예물로 증여하고, 거란의 성종도 크게 기뻐하면서 강변까지 나와 환송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서희의 ‘삼촌지설(三寸之舌 : 세치의 혀)’ 외교술이다.

그 후 서희는 여진을 물리치고, 압록강유역까지 영토를 확대하여 ‘강동(江東) 6주(州)’를 확보하였다. 서희의 담략있는 외교수완과 분명정대한 논리, 성의 있는 태도는 평화와 영토회복의 실리(實利)로 국익(國益)을 극대화하였다.

또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지혜, 상생(相生 : win-win)의 관점에서의 접근이 돋보인다.

아버지 서필・서희・아들 서눌(徐訥) 3대(代)가 모두 정승(政丞)에 올라 이주(利州 : 경기도 이천)서씨는 고려의 대표적인 명문가다.

이제, 우리는 21세기의 서희를 배출해야 한다. 그것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국가 간의 경쟁은 치열하고, 또한 협력의 중요성은 보다 강조되고 있다.

역사와 국제정치를 보는 냉정한 균형감각과 치밀한 대외정보수입의지와 판단력이 보다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대한민국은 1970년대 이후 ‘조국근대화’를 위한 새마을 운동과 산업화의 성공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고 있다. 더욱이 민주화도 이루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4대강국(美・中・러・日)은 경제 군사 문화 역사도 강하다.

우리는 우리를 정확히 알고 경허히 수비해야하고, 최악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겠다. 또한 실용적 사고를 바탕으로 진정성있는 대화와 남・북의 상생과 공영의 길을 모색해가면서, ‘평화통일의 위업(爲業)’을 이루는데 우리 모두의 역량을 쏟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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