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 전성시대, 핵심은 나만의 새로운 가치창출
부캐릭터 트렌드를 <트렌드 코리아>의 ‘멀티 페르소나’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엄밀하게 본다면 적절하지 않다. ‘페르소나’(Persona)는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유래한 단어로 사회적 역할이나 배우의 연기로 등장하는 인물을 말하는데,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인 성격을 가리킨다. 혹은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투영된 성격을 말한다. 페르소나는 숨겨진 성격에 관한 개념이지만, 부캐릭터 트렌드는 성격보다는 새롭게 드러난 재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우리 안에 있다는 멀티 페르소나에서는 다중적인 성격의 특질을 말하는 것이고 각자의 역할과 입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며, 우리의 자아가 다중적일 수도 있다. 부캐릭터는 이와는 결이 다르다.
본래 부캐릭터는 온라인 게임에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다른 캐릭터라는 용어로 사용이 되었다. 이른바 서브 캐릭터였다. 초반에 게임을 할 때는 잘 모르고 캐릭터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정말 자신의 정체성이나 실력, 역량에 맞는 것인지 모르고 선택을 한다. 하지만 점차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맞는 캐릭터를 찾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캐릭터 즉 서브 캐릭터를 전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에 단순히 내안의 여러 캐릭터라고 규정하는 것은 부캐릭터 트렌드의 본질을 놓칠 수가 있는 것이다.
흔히 연예인들이 상황에 따라 연주자가 되기도 하고, 운동선수나 가수가 되는 등 전혀 다른 일에 도전할 때 부캐릭터를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부캐릭터의 부분적인 묘사에 불과하다. 부캐릭터가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것은 MBC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전격 트롯 가수 유산슬로 변신해서 부캐릭터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다. 하지만 방송 프로그램에서 부캐릭터의 시작점은 유재석이 아니라 다른 가수에서 찾기도 한다. 바로 래퍼 마미손이다. 그가 2018년 케이블 채널 엠넷의 ‘쇼미 더 머니 777’에서 고무장갑 스타일의 분홍 복면을 착용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면 캐릭터를 쓰고 나온 방식은 이미 ‘복면가왕’에서도 볼 수가 있었다. 이런 복면 캐릭터의 등장은 우리의 인식과 그것이 낳는 편견을 뛰어넘어 그 사람의 또 다른 재능을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파격적이며 사회문화적 가치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복면가왕 유형은 방송 프로그램의 인지도를 높일 뿐 개인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수많은 복면 캐릭터가 재주를 넘고 사라질지라도 프로그램만 계속될 뿐이었다.
유재석이 유산슬로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자신의 또다른 캐릭터를 적극 부각해 낸 수준이 아니라 신곡 ‘합정역 5번 출구’와 ‘사랑의 재개발’을 크게 유행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그 유산슬이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실제로 했고 크게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했다. 예능인 김신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다비라는 중년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 트롯 가수활동을 했는데 김신영과는 조카와 이모 관계로 설정을 했으며, 이른바 캐릭터 역할놀이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컨셉화 했다. 같은 한 사람이지만 김신영과 김다비가 같이 공존하는 것인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수입의 비교였다. 김대비 이모의 수입이 조카 김신영의 10배에 이른다는 언급은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단순히 역할 변신 수준이 아니라 경제 효과까지 컸던 것이다. 또다른 사례로 추대엽은 카피추라는 캐릭터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가 단번에 찍은 1개의 광고 가운데에는 과거 배우 이영애가 모델이었던 것도 있었다. 펭수의 정체가 추대엽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겨날 만큼 그는 캐릭터 역할 놀이에 역량과 재능을 잘 뿜어냈다. 번외 에피소드로 펭수와 목소리가 비슷해서 그냥 펭수인 척하자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부캐릭터가 극단화된 형태는 바로 펭수다. 펭수는 9개월동안 100억의 수익을 올렸고 펭수를 한번 출연시키기 위해서 몇 개월 동안 줄을 서야 할 정도가 되었다. 펭수빵은 2주만에 100만개이상이 더 팔렸고 우산조차 맑은 날이 많았음에도 전월 동기대비 30배나 많이 판매되었다. 특히, 물병은 무려 800%의 판매신장율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펭수는 부캐릭터가 메인 캐릭터가 된 셈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의 메인 캐릭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펭수를 좋아하는 이들은 주로 20-30대들인데 그들의 트렌드는 본래 캐릭터보다는 자신들이 공감하고 선호하는 캐릭터가 우선일 뿐이다. 펭수처럼 인형이나 탈을 뒤집어 쓰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자신의 존재감을 전폭적으로 알리는 기제가 된 것은 그 부캐릭터성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소한 부캐릭터라도 메인 이상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부캐릭터가 단지 연예인이나 스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니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진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한가지 전문직종으로 평생 살아가겠다는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한 조사를 보면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이 N잡러가 되고 싶다고 밝혔는데, 그 가운데는 취미 활동이 부업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 취업 사이트에서는 직장인 22%가 투잡을 뛰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그냥 좋아해서 덕질을 열심히 하다가 그것이 또다른 삶의 방편이 되거나 제 2막 인생이 열린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뿐만아니라 최근 플랫폼 노동과 긱이코노미(Gig Economy) 환경이 형성이 되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개별 노동자들이나 직장인들이 다직종, 다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일과 시간 이후에 대리기사를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택배를 배달하거나 유튜브와 1인 미디어는 물론이고 온라인몰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한가지 캐릭터가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은 경제적 활동과도 맞물린다. 택배하면서 사무직원이고 콘텐츠 제작자일 수도 있고, 사장이면서 종업원이고 종업원이면서 사장이 되는 복합 캐릭터를 갖는 일은 흔하다.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 직종이나 직장에 근무하면서 그 안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추면 무난히 정년을 마칠 수 있었지만 산업구조나 신기술의 변화 등으로 안정성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은 이렇게 부캐릭터 현상과 맞물리고 있다. 대중이 중심이 된 사회구조는 더욱 이러한 부캐릭터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다. 연예인과 스타들도 끊임없이 변화를 하고 대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스타 파워는 이제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요지부동일 듯 싶은 마이아틱한 팬덤도 팬클럽을 옮겨 이동한다. 아무리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와 팬들이 원하는 모습과 재능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고객의 기호와 니즈에 맞게 변신을 하는 기업과 구성원들에게도 같은 화두이다.
이제 초지일관 하나의 모습이나 역량을 유지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부차적이 되었다. 한번 정해진 대로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찾아가는 것이 부캐릭터 트렌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2막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부캐릭터 트렌드가 보여주고 있기 그것을 아직 찾지 않았다면 끊임없이 캐릭터 변신을 통해서 정말 잘할 수 있고 경제적 활동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시도 하면서 만들어 가야한다. 그것이 정말 사소한 것일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글/김헌식(평론가, 박사, 대구대학교 대학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