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문화공감]70년대식 대사에 까르르… 엄마-아이 세대벽 사르르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6:28

[문화공감]70년대식 대사에 까르르… 엄마-아이 세대벽 사르르



[동아일보]

《영화 연극 콘서트 전시 방송… 즐기기 위한 공간뿐 아니라 만들어지는 공간도 문화공간이다. 매주 관심을 끌 만한 생생한 문화현장을 찾아 소개한다.》

“어린 시절 당신의 영웅은 누구였습니까….”

17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극장.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낯익은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화면에 이런 자막이 뜨자마자 아줌마 관객들이 외친다. 

“태권V요!”

잠시 후 ‘빰빠라 빠빠빠 빰빠라라’라는 태권V 테마송이 나오자 분위기는 웃음과 함성으로 가득찼다. “와∼.”

“엄마 그림이 왜 저래”라고 묻는 아들에게 “응, 저건 30년 넘은 만화라서 그래”라고 설명하는 엄마들…. 김청기 감독의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V’(1976년 작)의 디지털 복원판 시사회장은 과거(1976년)와 현재(2007년)의 교차지점이었다.

30년 터울의 아이와 엄마가 한자리에서 ‘로보트 태권V’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데는 디지털의 힘이 컸다. 2003년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발견된 원본필름은 표면 긁힘, 얼룩으로 크게 훼손돼 있어 상영이 불가능했다. 복원 전문가 72명은 필름을 클리닝한 뒤 컴퓨터 스캐닝을 통해 원본을 디지털 파일로 만들었고 수작업으로 프레임을 하나씩 수정했다. 한 프레임을 완성하는 데 하루 종일 걸릴 정도. 18개월 동안 총 1170컷, 10만8852프레임이 완성됐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관객들은 ‘디지털’ 태권V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빨리 가보자 영희.”(훈), “난 인간이 되고 싶어.”(메리)

극중 성우들의 대사가 1970년대식 대사법으로 과장되게 흘러나오는 순간 영화관은 순간 웃음바다가 된다. 아날로그로 녹음된 원본 사운드 중 복원이 불가능한 대사는 원본의 목소리와 비슷한 성우를 뽑아 새로 작업했다. 가수 최호섭이 어린 시절 불러 유명해진 주제곡 역시 목소리가 흡사한 성우가 다시 불렀다.

그러나 일부 태권V 마니아들은 ‘새로 녹음한 성우들의 연기력이 떨어지는 점’, ‘디지털 스캐닝 과정에서 원작의 인간미 나는 붓 터치 느낌이 사라진 점’, ‘음향이 5.1채널로 바뀌다 보니 옛날 만화 특유의 독특한 효과음이 없어진 점’을 아쉬워했다.

“야, 훈이랑 영희는 옷도 없냐? 왜 저 옷만 계속 입고 나오냐.”

‘옥에 티’를 지적하는 아줌마의 목소리도 들린다. 3D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아이들은 오히려 촌스러운 2D 그림을 신선해했다.

시큰둥한 젊은이들도 있다. 대학생 김종철(26) 씨는 “30년 전 만화영화임에도 구성이 탄탄하지만 과연 디지털 시대에 이런 아날로그 만화가 젊은 세대들에게 호응을 얻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역시 중년층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직장인 김종철(44) 씨는 “30년 전 봤던 ‘태권V’를 통해 마치 내가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아이를 데려온 30, 40대 관람객은 30년 전 부모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갔던 자신의 모습을 옆 자리에 앉아 열심히 태권V를 보는 자식들에게 오버랩 시켰다.

딸과 함께 시사회장을 찾은 주부 최은경(46) 씨는 “어릴 적 10번도 넘게 본 만화를 딸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태권V’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며 웃었다. 

이같이 세대마다 반응은 달랐지만 18일 개봉된 태권V는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 때문에 ‘세대 간 공감의 매개체’가 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외국의 로봇과 달리 주먹이나 발을 이용해 적과 싸우는 원초적인 육체성과 악의 상징인 카프 박사마저 선인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추구하는 정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를 복원 기획한 ‘신씨네’의 장순성 기획실장은 “태권V 복원은 ‘7080콘서트’ 같이 단순히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상품을 넘어 세대 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감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한류 드라마, 노래 등 아시아에서 각광받는 한국 문화 콘텐츠의 강점은 인간에 대한 정감”이라며 “디지털로 복원된 태권V 속에서 인간미를 중시하는 아날로그 정서가 많은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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