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속의 하이테크놀로지

메이드 인 코리아-고려동경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5. 6. 21:27


한반도 거울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 이르러 청동거울 제작이 활발해지고 유물 또한 많이 남아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삼국시대 전후 거울은 300점 안팎이고 고려시대 거울은 1500여점이라는군요. 거울은 원래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으며, 또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처럼 화장용구로 쓰이게 된 것일까요.

국립중앙박물관이 8월 29일까지 여는 ‘고려동경-거울에 담긴 고려 사람들의 삶’은 거울에 대한 갖가지 궁금증을 풀어주는 테마전입니다. 고고학자들은 거울이 처음엔 제사를 지내는 데 쓰인 의례용품이었다고 설명합니다. 하늘에 빛을 비추어 소원같은 것을 기원하는 상징물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게 되고 나아가 화장할 때 쓰는 실용품으로 발전했다는 것이죠.

고려시대 구리로 만든 동경(銅鏡)은 중국의 거울을 본뜬 것이 대부분이랍니다. 충북 청주 용암동과 단양 현곡리, 충남 서천 추동리 등 유적지에서 청자, 토기, 금속용기, 중국동전 등과 함께 출토된 동경은 중국 저장성(浙江省) 북부 후저우(湖州) 등의 생산지가 표기된 것이 많아 수입산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지요. 그렇지만 출토품 전부가 중국산은 아닙니다.

개성 부근 고분에서 출토된 동경에는 ‘고려국조’(高麗國造·사진 하얀 점선 안)라는 글씨가 새겨진 것도 있으니까요. 이 명문(銘文)은 고려 국가에서 거울을 제조했다는, 해외 수출용 공식 상표로 요즘으로 치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인 셈이지요. ‘밝게 빛나고 창성한 하늘’이라는 뜻의 ‘황비창천(煌丕昌天)’ 글씨와 그림이 새겨진 거울, 용과 나무가 전각무늬로 새겨진 거울도 고려 자체 생산품이랍니다.

고려동경은 출토된 고분의 유물이나 무덤 주인 신분 등으로 짐작컨대 일반인보다는 호족 등 상류층의 전유물로 추정됩니다. 동경의 유통 관리는 국가기관에서 했으며, 서민들이 일반 장터에서는 살 수 없었던 물품이라는 것이죠. 꾸깃꾸깃 돈을 모은 남정네가 연인에게 줄 거울을 사는 것은 고려시대엔 꿈도 꾸지 못할 풍경이었던가 봅니다.

거울에는 만들어진 시기를 기록하지 않아 제조연도가 불투명합니다. 하지만 서천 추동리의 물고기무늬 동경(雙魚文鏡)은 연대를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랍니다. 12세기 초 송나라 동전인 ‘숭녕중보’와 11∼12세기에 사용된 녹청자가 함께 출토된데다 ‘기해’(己亥)라는 간지가 적힌 묵서(墨書)가 발견됐기 때문이지요. 이를 근거로 제조연도를 1119년이나 1179년으로 판단할 수 있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거울에 대한 과학적 성분분석을 실시한 결과, 고려에서 직접 제작한 거울의 경우 구리 70%, 주석 15%, 납 12%, 수은과 니켈 등 3%의 합금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산의 경우 주석이 20% 정도로 거울 표면이 좀 더 반질반질하다는군요. 이렇게 다양한 역사를 지닌 1000년 전의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오늘 자신의 모습을 반추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광형 문화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