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만화철학책을 왜 읽어야 해?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7. 1. 30. 21:42


-닉 수재스의 언플래프닝 생각의 형태

 

 

토머스 웨스트(Thoams G. West)는 매우 창조적인 사람은 글자가 아니라 이미지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그의 책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In the Mind's Eye-Creative Visual Thinkers, Gifted Dyslexics, and the Rise of Visual Technologies)에서 밝힌 바가 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이미지가 훨씬 자유로운 상상력을 반영하고,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면에서 사물의 본질을 드러 주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이클 패러데이제임스 맥스웰,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이미지로 생각한 인물들이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닉 수재스의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도 이러한 맥락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이미지보다 언어가 더 강조된 것이 사실이다. 언어가 본질이며 이미지는 본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언어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만, 이미지는 비합리적이며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언어는 진리에 가깝지만 이미지는 진리보다는 진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삿된 것이라고 규정되어 왔다. 이는 오랜 철학사에서 플라톤에 근거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언어와 이미지에의 비교우위의 역사를 요약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언어는 도구이자 가장 적합한 설명 수단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누려왔다. 반면 이미지는 예술의 영역으로 밀려나 있었고, 진지한 논의에서는 텍스트를 뒷받침하는 한낱 삽화 역할을 하며 찬밥으로 취급받았다. 즉 이미지는 언어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동반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역사적 편견의 기원은 플라톤으로 올라간다. 플라톤은 우리가 눈으로가 아닌 눈을 통해 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만약 현상들이 기만적이라면 이미지들은 더더욱 신뢰할 수 없다. 불을 태양으로 착각 할수 있듯이 그림자의 그림자인 이미지들은 진리를 향한 탐색을 방해할 수 있다.” 플라톤은 이미지가 본질이 아닌 그림자일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이콘 논쟁도 이와 같은 맥락안에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는 사유를 표현하는 주요 수단으로 텍스트에만 의존하게 되면 언어의 선형적인 구조 바깥에 있는 것들은 무시된다. 비이성적이라 낙인이 찍히는데 이미지는 존재 자체를 텍스트는 주장을 표현한다.”라고 표현했다. 이 책은 바로 저자의 이러한 관점이 잘 담겨 있다.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책의 표지는 천재적 사유와 독보적인 드로잉의 만남이라하여서 그림 철학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만화 철학책이라 해도 된다. 어떤 스토리가 있기 보다는 시각적인 도상을 통해서 시공을 넘나드는 시계를 담아낸다. 어쨌든 시각적 비주얼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한정된 지면은 무한한 공간으로 변한다. 이 책은 좁은 지면을 무한한 공간으로 깊고 넓게 확장하는 놀라운 솜씨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메시지는 단조롭거나 획일적인 사고에서 머물게 되는 우리들의 환경과 시스템에 대한 강조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생각과 그에 따른 상상력과 다양한 관점을 취하는 방식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 읽는 이들이 공감을 하거나 호응을 보낼 수 있는 내밀한 점들이 많을수록 선호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개인적인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의 사유를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만화는 예술 작품을 지향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드러내는데 치중하기 쉽다. 많은 학자들의 자신만의 관념의 생각이나 경험적 사유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서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종의 논증과정을 겪어 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그러한 인용이 단지 텍스트에 그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다른 책들과 차별화 된다고 보겠다. 학자들의 사상이나 사유를 시각적으로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풀어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텍스트를 읽으면 머릿속으로는 다른 연계하여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지면적인 구현화는 다른 이미지들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그가 말하는 상상력이란 익숙한 두 공간을 낯선 방식으로 연결하는 사이 공간이다.


대개 만화책에는 각주가 없다. 만화책은 학술적이거나 논문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저자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만화 형식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학술적인 텍스트와 드로잉의 결합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만화도 충분히 학술적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를 시각적 이미지로 발상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와 사유를 접하게 된다. 그러한 사유과정에는 다 연원이 있는 셈이다. 이 책은 그 연원을 밝혀주는 내용도 같이 곁들여서 시각적 작업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고 그것이 진화되어 가는지 그 궤적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식일 뿐만 아니라 발상의 진전에서 좋은 준거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철학책이라고 하면, 사상가의 이름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시대이래로 자연 철학자부터 근현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명 사상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책 그리고 그 책에 나와 있는 이론이나 사유를 열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일단 자신의 생각과 사유가 우선이다. 그것이 먼저 성립해 있고 이러한 점들과 관련이 있는 철학 사상가들의 논리나 사유를 적용하거나 언급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에서 강조하는 개념이자 도상 중에 하나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알아낸 방식이다. 1차적으로 앞부분에서 강조하는 것은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알아낸 공식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에라토스테네스가 가지고 있던 관점과 발상의 전환이었다. 하지의 정오가 되면 시에네에서는 해가 수직으로 내리쪼이면서 기둥의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고 우물 안 깊은 곳까지 햇빛이 닿았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여전히 기둥의 그림자를 볼 수가 있었다. 햇빛이 수직으로 내리쪼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기록에서 알게 된 에라토스테네스는 이것은 지구가 둥글 경우에 위도가 달라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다시금 이같은 사실을 지구의 둘레를 알아내는데 이르렀다. 다른 이들도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의 위도가 다르기 때문에 햇빛과 그림자의 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더 달랐던 것은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의 변위각을 알아내고 그것이 지구 전체의 원주각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두 도시 간 거리와 변위각으로 지구의 크기를 알아 낸 것이다. “두 지점 즉 두 눈이 연결되면서 시야가 확장되고 지구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를 토대로 우리는 다름과 같이 정의내릴 수 있다. 입체화란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는 하나의 고정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생활도 천편일률적이 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이러한 공간을 플랫 랜드이고 그에 익숙한 사람들을 플랫랜드인이라고 칭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하나의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서 여러 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자신만의 관점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으로도 인식을 해야 한다.


이 책의 강점은 그래픽과 드로잉의 다채로움이 주는 시각적 상상력의 구현이지만 그의 메시지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그는 관점의 관계를 중요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각각의 관점이 관계 안에서 새롭게 참여함으로써 또 다른 관점이 탄생한다.” 라고 하거나 우리의 눈이 시선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해 관점을 새롭게 하듯. 사유를 촉발하고 전복하는 수단 역시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발견된다.”라고 말한다. 이런 관계성 속에서 새로운 관점들이 나오는 것은 그것이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물론 관점간의 거리는 늘 남아 있다. 늘 차이는 존재하는 법. 미지의 공간, 상상력이 흘러나올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한 대목이 눈길을 끌게 된다. 또한 흔히 우리는 관점들이 완전하기를 바라고 혹은 자신의 관점이나 견해가 완벽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 그런 상태를 지향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수록 더욱 바람직할 수 있다. 저자는 불완전함은 새로 발견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징표다.”라고 한다. 완전하지 않을수록 다른 관점을 용인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 사고와 인식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몸에 관해서 간과할 가능성이 많다. 사람은 신체활동과 그의 경험을 통해서 사고와 인식을 하고 그에 따라 다시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상적 지각 및 신체 활동을 통해 우리는 이미지와 유사한 역동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경험을 체계화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미지 구조는 우리의 자각적 의식 기저 속에서 작동하며 생각과 행동들을 형성한다.” 몸이 만들어내는 것은 구체적인 경험이다. 따라서 저자가 구체적인 경험은 이미지 구조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이로부터 우리는 사고 능력을 신장시키며 더 추상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근원적으로 우리는 완전하지도 완전할 수 없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상호작용을 통해서 존재한다. “우리는 고정된 존재도 아니며 종료된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힘의 상호작용으로 즉 벡터들의 수많은 조합으로 탄생하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변하기 쉬운 특성을 지닌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우리를 지탱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다고 할 수 없고 다 할 수 있다고 할 수 없으며 고착이나 아집에서 벗어나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서 텍스트를 풀어가는 것도 논리와 언어의 텍스트 중심에서 다른 면을 보며 접근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무한하며 정답일 수는 없다. 이 책이 글과 그림을 결합하면서 우리의 다양하고 입체적인 사고와 판단, 행동을 견인하도록 유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롭고 색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려 할수록 오히려 그것에 얽매일 수 있음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 그 경계를 초월하여 오가는 경지를 향해 우리는 부단히 갈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뤄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오로지 변하를 위한 시도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알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자 길이다.


글 김헌식(교보문고 북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