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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내곁에´에 담긴 남성들의 불안과 공포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0. 7. 13:36
 

'내사랑 내곁에´에 담긴 남성들의 불안과 공포

-외로워진 사회의 정책적 고민 되짚기


하나의 사라짐은 다른 하나의 탄생과 관련된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종우 어머니의 죽음이 없었다면 주인공들의 만남과 사랑의 탄생은 없었듯이. 사회가 변화하면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는 반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있기 마련이다.


노령인구가 많아지면서 그에 따른 직업도 같이 생기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다. 최근 국내에 요시다 다이치(吉田太一)가 낸 <유품 정리인은 보았다!>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요시다 다이치는 2002년 최초로 ‘키퍼스’라는 유품정리와 사후 청소를 도맡아 처리하는 업체를 만들었고 스스로 유품정리사가 되었다.


유품 정리사가 하는 일은 주로 쓸쓸하고 고독하게 세상과 이별한 사람들을 수습, 장례를 치르는 것은 물론 남긴 물건을 처리한다. 뿐만 아니라 재산이나 금융, 상속 등의 법적 절차 등도 담당한다. 만화와 영화도 이러한 직종을 다룬 작품들이 있다.


<나인틴>의 작가 기타가와 쇼의 만화, <데스 스위퍼>(Death Sweeper)는 시체의 흔적을 치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주인공은 유품 정리와 청소 담당회사 스위퍼스의 직원 미와 레이지가 아니다. 갑작스런 형의 죽음을 맞게 된 동생의 시선으로 죽음과 흔적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할리우드 영화 <선샤인 클리닝>(Sunshine Cleaning, 2008)은 비슷한 내용이지만, 약간 다른 면을 보여준다. 미혼모인 로즈는 동생과 같이 청소업을 하게 되는데 이른바 범죄 현장 등을 청소한다. 가정폭력이나 폭행, 살인의 현장이나 그로인해 흔적이 심하게 남아있는 실내 공간을 청소한다. 그들이 하는 일 가운데는 독거노인이 자살하거나 홀로 사망한 자리를 청소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유시다 다이치의 유품 정리인처럼 각종 재산이나 금융관계까지 처리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은 고령화 사회와 나홀로 가정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례지도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에 관련학과가 있고, 상조에 관한 업체도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대기업도 이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 유품정리사가 없지만, 고령화 사회와 나홀로 가정이 늘어나면서 부각될지 모르겠다. 장의사가 아니라 장례지도사로 바뀌어 나름 전문직업인으로 인정받은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도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김명민, 하지원 주연의 <내사랑 내곁에>에는 장례지도사가 등장한다. 아직은 죽음의 문화에 대한 특성 때문인지 장례 지도사는 여주인공 지수(하지원)의 결혼 생활을 평탄하게 하지 못하는 직업이 된다. 지수는 두 번이나 장례지도사라는 직업 때문에 이혼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주는 이가 종우(김명민)이다. 하지만 종우는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지수는 종우와 결혼한다. 그리고 종우의 애를 갖고 싶어 한다.


결국 영화의 핵심적 장면은 아내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을 염(殮)하는 것이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지수가 자신의 손으로 결국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몸을 닦고 염을 하는 장면은 여러 가지 함의를 가진다. 영화의 많은 에피소드는 전체적으로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의 뒷받침이다.


사실 종우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항상 지켜주던 아내가 있었고, 그가 죽은 뒤에 아내가 깨끗하게 씻어주고, 고운 옷을 입혀주었으니 말이다. 아직은 한국사회에서는 이렇게 누군가 지켜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현실을 영화가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일까.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는 남성들의 불안과 공포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 없이, 아니 지켜주는 사람 없이 혼자 쓸쓸이 세상을 떠나갈 것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더구나 종우는 자신의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을 서서히 맞는다. 그는 법전을 항상 손에 쥐고 심지어 근육의 힘이 점점 떨어져 책을 볼 수 없자 지수가 읽어주기도 했다.


사법고시는 웬만한 남성들이 꿈꾸었을 만한 것이다. 그것은 남성의 못 다 이룬 꿈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회적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는 남편에게 예쁘고 그를 사랑하며 항상 존중하는 아내는 있었다. 오히려 아기를 갖자는 제안을 남편은 숭고하게 거절까지 한다.


죽어가는 남편의 아이를 받아 아내가 혼자 키우겠다는 것, 남성의 로망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장례 지도사 아내를 등장시킨 것은 이 영화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장례지도사와 불치병인 루게릭병을 등장시켜 결말을 너무 쉽게 예측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극적 긴장감이 덜하게 만든 감이 없지 않았다.


한편,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93만 명이고, 이 가운데 17만명이 독거노인이라고 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독거노인들의 사체가 발견되어 매체에 오르내렸다. 또한 노인자살도 그렇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자살사망자 수는 4365명이었다고 한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자 수는 나아가 들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20대 22.6명, 30대 24.7명, 40대의 28.4명, 50대 32.9명, 60대 47.2명, 70대 72명이며, 80대 이상의 자살사망자수는 112.9명이었다. 무조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가운데 독거노인도 많다. 외롭게 세상을 등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상담서비스체계도 중요하다. 독거노인의 죽음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문제이다. 또한 누군가 정리해주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유품정리사나 사망 현장 청소업이 더 이상 남 일이 아닌 것이다. 국가적, 공공적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헌식 콘텐츠 애널리스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