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규정을 세심히 친절하게 만들수록 피폐해지는 삶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7. 8. 10:49

규정을 세심히 친절하게 만들수록 피폐해지는 삶

-필립 K. 하워드의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




1970년 미 의회가 직업 안전보건법을 제정했을 때, 그 제정 목적은 모든 직장인들이 실행가능한 정도까지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부는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를 신설했다. 이 기관은 사업장 점검을 위한 많은 안전 규정을 제정했는데 25년간 그들은 4,000여건이 넘는 세세한 규정을 만들었다. 몇 년전 검사관은 한 기업에 나아가 직원 수염이 마스크 옆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마스크가 딱 맞아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그 직원은 아미쉬(Amish)라는 종교인이었고, 그의 수염은 신앙을 의미했다. 그는 마스크에 맞게 수염을 자르기보다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는 일자리를 안전하게 보호받기는커녕 직장에서 나가야 했던 것이다. 


메사추세츠에서는 6세 이하의 아동이 있는 가정에서는 납이 있는 페인트를 제거해야 한다. 납제거 과정에서 아동의 혈중 납 농도도 심해질 수 있다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한 가정에서는 다량의 주사를 맞는 바람에 몇 달 동안 아이가 악몽을 꾸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야 했다. 법 규정은 납중독의 증거가 없어도 의무적으로 주사를 맞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른 집에서는 아이의 납 혈중 납농도가 많은 사실을 아이의 아빠가 뉴욕주에 신고했을  때, 최근에 집안의 페인트칠을 다시 했기 때문에 안심하라는 공무원의 말을 들어야 했다. 결국 시위생국에 이 가정의 아이 사례는 접수가 되었는데, 검사관들이 갑자기 들어와 법률위반 스탬프를 페인트칠한 곳에 찍었고, 17개의 흠이 있다면서 집 자체가 유해하다고 판정을 내리면서 가족을 모두 내보내고 다시 페인트칠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8,000달러가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남성 가장의 아이는 8명이었고, 집을 나가 갈 곳은 달리 없었다. 그 사이 막내 아이의 혈 중납 농도는 수치 아래로 떨어졌다. 조사관들은 주거공간을 가족이 함께 살만하게 만들어주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규정을 적용하는데 바빴다. 결국 그들은 자기 집안에서 쫓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1978년 전직 판사이자 유명 변호사인 마빈 프랭클은 형량 선고가 들쑥날쑥인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양형위원회’를 도입하게 만들고, 이 위원회를 통해 258개의 형벌평가표를 구성하게 했다. 그는 이 기준표에 따르면 사건에 따라 균형있게 판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방법원은 이 평가표에 따라 모든 형량을 도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표를 사용하는 판사, 변호사, 검사는 실패작이라고 밝혔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마약 범죄의 형량은 마약의 무게에 따라 형량이 주어졌는데, 배달용트럭을 몰았던 조직원은 자신이 마약을 어느정도 운반했는지도 모른 채 종신형을 받았다. 아동에게 헤로인을 파는 마약상은 고작 2년의 형량만 받았다. 저명한 연방법원판사 로렌스 어빙은 이런 현실을 일컬어 “마약으로 멍청한 짓을 한 풋내기보다 살인자가 더 빨리 출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리건주의 유진시 외곽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치즈를 만들던 폴앳킨슨은 검사관들의 지적을 받았는데, 저온 살균의 스테인레스통이 규격에 맞지 않는다며 없애라는 내용이었다. 치즈에 유해 균이 없고, 청결하다는 판정이 났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규제 때문에 수익성이 없게되어 결국 치즈 공장을 폐쇄했다. 이런 비슷한 식품 관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뉴욕의 작은 카페에 검사관이 나와서 식기를 계속 손세척으로 하면 영업정치 처분을 내리겠다는 지시를 받는다. 규정에는 자동식기 세척기를 비치하거나 화학적으로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화학처리는 실용적이지 않고 세척기는 부피가 커서 주방에 놓을 수가 없었더. 결국 그 카페 주인은 플라스틱 용기만 사용해야 했다. 물론 플라스틱 용기가 신체에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이기에 이런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미 사례들에서 현명한 독자들은 눈치를 챘을 수 있을 것인데,  필립 K. 하워드의 ‘노스페이스의 지퍼는 왜 길어졌을까’는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삶을 더 낫게 한다는 법 규정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삶이 더 피곤해지고 망가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목에 나와있는 노스페이스 지퍼가 쓸데없이 길어진 이유도 시민을 보호하겠다고 제정한 정부의 법 규정 때문이었다.

우리는 무슨 사건이나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규정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쉽게 본다. 정치인이나 관료들, 리더들은 이러한 규정이 만들어질 때마다 무엇인가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것처럼 홍보한다. 하지만 그러한 규정이 많아졌는데도,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법 규정이 많아질수록, 맹점은 더 많아지고 그 맹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만 많아진다. 규정을 세세하게 만든다는 것은 권력자들의 일방적인 강압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명확한 근거에 따라 집행하라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세세한 규정을 만들어 강압을 통제하려는 의도는 오히려 더 큰 강압을 만 들어낸다. 법규정을 만들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즉각적인 판단과 행동은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적절한 기회를 놓치고, 막대한 예산 낭비는 물론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큰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강조하는 점은 수많은 법규정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좀 더 나은 상태로 만들려는 책임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법규정은 결국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을 책임의식에서 탈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에게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들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규정과 그에 따른 절차를 강조하고 자신의 책임감을 멀리 털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는 규정대로 절차대로 했을 뿐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일반 시민들은 달리 주장할 바가 없어지게 되었다. 미 환경보호국은 한 농약의 유해 여부를 위한 판정을 22년 동안 끌었다. 무려 천여 명이 매달렸다. 이렇게 시간을 끈다고 해서 유해한 물질이 승인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예를 보면, 신약개발에 2억 3,000만 달러가 드는데 이 가운데 3분의 2는 식품의약국의 요건을 충족시키는데 쓰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나 피해에 대해서 담당자들은 규정을 이야기할 뿐이다. 물론 신약이 늦어질수록 환자들은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런 절차에 들어가는 세금은 엄청나다. 뉴욕시의 경우, 한 해에 9,000여건의 계약을 하며 그 비용은 60억 달러다. 연방정부는 2,000억 달러를 쓴다. 모든 정부기관은 4,500억 달러를 쓴다. 국민총생산량의 10분의 1을 절차적 비용에 쓰는 것이다. 미 농무부는 학교급식 제도 보고를 월 1회에서 연 1회로 줄였을 뿐인데, 900만 달러를 줄였다. 책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듯이 한 보고서는 ‘복잡하고 불필요한 요식행위는 계약체결 과정 전체를 가리고 부패를 방지하려는 원래 목적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밝혔다. 


절차는 방어적인 수단이므로 절차가 많을수록 안개가 끼는 것과 같이 본래의 목적을 가린다. 안개에 가리는 상황에서 우선 해야 할 일은 목표에 대한 집중일 것이다. 애초에 절차가 강조된 것은 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절차의 숲에 관리자들은 숨어 버렸고, 책임을 지지 않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것을 개인의 사적 이익에 이용하려 하거나 범죄의 도구가 되는 것을 방조하기도 했다. 저자의 말대로 절차는 태만과 지연을 위한 신용카드도, 범죄자를 위한 무기도 아니다. 짐 랜디스는 효율적인 정부는 최고의 사람들을 데려와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 책에서는 차별에 대한 권리적 규정이 갖는 역설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차별에서 벗어나려는 권리의 주장은 이제 당연한 것처럼 받아 들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권리보장 요구의 제도적 절차화의 남용은 오히려 갈등을 악화시키고, 본래 권리자의 상처를 더 깊게 하고, 이익도 침해하게 되었다. 배제되고 차별받던 사람들을 사회안으로 들여놓기 위한 공민권 운동은 오히려 공민권 운동을 약화시켰다.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이익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고, 법과 정책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개인이나 단체의 권리의 주장이 다른 이들이나 사회전체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이 강해질수록 약자이며, 소수자였던 그들은 오히려 반감의 대상이 되거나 강자로 비쳐지게 되었다. 한 사람을 위해서 수백만 달러가 드는 건물 개조는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지만, 이런 조치에서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반감을 갖게 만든다는 점이다. 권리적 이익에 따라 다른 이들이 상처받고, 고통을 받는 점은 중요하지 않게 여긴 결과다. 


또한 남발하는 차별에 대한 권리 구제는 차별의 프레임으로 평가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어 버렸다. 예컨대 전 직장의 고용주에게 추천서를 받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 된다. 칭찬을 하든 부정적인 말을 하든 그것이 차별적인 것으로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말을 못하고 침묵해야 좋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작 차별받는 소수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차별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들은 그것이 세세해질 수록 그들을 기피하게 만든다. 갈수록 서로서로를 피곤하게 만들어 버리는 개념이 되었다. 조직안에서도 그들에게 기회는 덜 주어진다. 차별은 그 본래의 의도나 목적을 따져야 한다. 그런 의도와 목적에 관계없이 이뤄지는 모든 언행을 차별의 범주에 넣는 것은 사태를 악화 시키는 것이다. 모든 직장의 문제는 이런 차별과 이어지게 하는 법조계 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 직장의 분쟁은 차별에 따른 배상 문제로 귀결되게 만들고 수임료를 받아내는 변호사들이 대거 출현했다. 


때문에 권리 주장을 경의를 표하는 이들은 없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차별을 없애기 위한 권리 보장의 규정들이 많아졌는데도 그것에 비례하여,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으며 다시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차별이전에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들이 자활하는 것이다. 차별이 문제가 된 것은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차별에서도 적법한 절차가 중요하다. 두꺼운 규정집에 따를 뿐 휴머니즘이나 온정주의에 따른 재량적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규정대로 적용할 뿐이기 때문에 비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형식주의에 따라 실행할 때 결국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단절 시킨다. 복지제도라는 것도 결국 인간이 개입해서 주도적으로 해결하며 책임을 장려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권리가 민주주의 언어가 아니라 타협이 민주주의 언어라는 저자의 주장은 약해진 민주주의 토대를 다시 매만지는 단초가 될 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네가지 요소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법은 영원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낡은 법을 버려야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10년이나 15년안에 자동 만료되도록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예전의 법이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법은 가능한 세세해야 한다는 의식을 버리고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철저하게 간소한 법이 사람들의 판단련과 책임의식의 여지를 남겨놓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좋은 정부는 공무원을 책임에서 면제시키는 것이 아니며 그들 개인의 책임은 매우 정부의 중요한 요소임을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고 밝힌다. 형식적 관료주의가 법규정의 숲에 은거할수 없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네 번째는 소송은 개인적인 권리가 아니라 정당한 사회의 규범안에 놓이게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삶의 모든 세세한 사안을 모두 소송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사회적인 근본 규범의 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점은 법률만능주의를 통해 우리의 삶 자체를 불안과 염려증으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법이나 규정을 만들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작동하는지이어야 한다. 법이나 규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작용하는 효과가 오히려 반대 결과를 만들어내고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법이 너무 적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으면 더 문제이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판단의 자유와 역할의 책임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규정이 많아도 그것을 보고 판단 결정 적용하는 것은 사람일 수 밖에 없다. 그 판단과 적용은 흔히 공감할 수 있는 상식에 따르는 것이다. 상식에 따라 논의와 협력을 해야 법규정 만능주의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권력의 재량적 남용을 막기 위한 규정을 만들었지만 그들을 그곳으로 도피하게 만든 것을 수정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에게 책임지고 목표를 완수하라는 재량적 의무를 부가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을 청와대나 의회에 보내도 법규정 앞에 무력한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일이다. 법규정에 억눌린 것보다 스스로 판단하는 활력의 사회가 더 바람직하다. 벤자민 카르도조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선택의 고통에서 해방 시켜줄 원칙이 없다는 원칙을 널리 퍼트려야한다." 오로지 목적을 위해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마지막으로 ‘법은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고 사회전반에 사람들이 책임감을 발휘할수 있는 여지를 주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글/김헌식 -교보문고 북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