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고독이라는 병은 여전한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7. 1. 30. 21:05

고독이라는 병

 

전후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불리는 이 책이 50년만에 재출간된 사실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5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출간되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음미해야할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한국의 1세대 철학자의 글이라면 외국 철학서를 읽는 것보다는 그안에 우리의 정서와 일상에 맞물려 있는 내용들이 많을 수 밖에 없겠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어떤 점을 되새겨 봐야 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독이라는 병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지난 50년 동안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을 경제적인 상황에 연결지어보면 고성장 사회에서 저상장 사회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고성장기에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이에 맞게 변화해야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독이라는 병에 담길 글에는 저성장 시대에서 우리가 다시금 헤아려볼 삶의 원칙과 방향들이 어두운 저녁 하늘에 박힌 별빛처럼 빛나고 있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걸어왔던 행보와 우리가 가야할 행보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어리석은 진리라는 글에서 담아낸 약장사를 하는 필자의 아버지 이야기였다. 곤궁한 집에서 어머니는 고생을 심하게 했고, 이에 아버지는 약장사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약장사는 신통치 않다. 옆에서 돕던 어린 필자는 희한한 일을 목격하게 된다. 약병에 붙어 있는 가격보다 더 낮게 파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약값이 비싸다고 말하면 깎아주었다. 돈이 없다고 말하면 거져주다시피했다. 그러나 항상 밑지게 팔았다.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나 아들인필자는 속이 터질노릇이었다. 참다못한 필자가 말하자, 아버지는 엉뚱한 답변을 하기에 이른다. 이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애야, 내가 그것을 왜 모르겠니? 그러나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약값이비싸서 못사다 먹게되면 그 앓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겠니? 만일 그러다가 병신이 되거나 죽는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겠니?”


이말을 들은 필자는 동의할 수가 없었고, 부친과 같이 어리석게 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을 하는데 마침내 몇 달 안되어 약방이 문을 닫는다. 결국 부친은 이익을 챙기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된다. 그것은 월남한 필자에게 고향 사람이 전해준 말을 통해 대변되었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필자의 아버지는 염려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베푼 일이 있었기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약값을 바득바득 챙기며 재물을 벌려고 했다면, 아마도 생존 조차도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저자는 부친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실제로 실천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 사회나 구성원이 이런 어리석은 진리의 결핍 때문에 고통과 모순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말한다. 지혜롭다고 하는 현대인들이 모든 가치의 표준을 자기에게 두고, 생명의 존엄이나 인간성보다는 실리 타산을 우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었다.


저자는 보람있는 비극이라는 에세이에서 이런 논지를 더욱 세밀하게 말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공리적이며 타산적이어서 얕은 지혜에 붙잡혀 살고 있다고 말한다. 눈앞의 이익에만 치중하는 현대인들의 공리성, 당장의 것만 볼줄 아는 지혜를 약은 지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해타산과 공리성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나 간디의 희생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되지만 저자는 우리가 살아갈수 있는 것은 이런 분들의 눈물과 희생, , 눈물, 생명의 대가때문에 가능하며 그 희생이 우리 사회, 질서 나아가 삶을 보존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비공리적이며 타산적이지 않은 지성을 거부한다면, 승산이 없는 싸움은 안하고 손해가 되는 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진리인줄 알면서 어려움이 온다고 피하고 정의감을 인정하면 승산이 없다고 버리는 것, 참된 인생의 값을 몇 푼의 금전으로 다루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어둡게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말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많이 들어 본 말이지만 더이상 이런 말을 하는 책들은 보기 힘들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오히려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더 치중하는 강의가 일반화되었을 뿐이다. 시민단체종사자도 수익사업을 하는데 뭇지식인들은 물론 대학 교수나 학교 선생님들도 재테크나 투자 기법에 열풍인 사회가 되었으니 이는 낯선일도 아니면서 새삼 낯설기도 하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사람을 필자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더 인상적은 대목은 다음에 있었다.


그런데 더 곤란한 사람들이 있다. 뿌리가 없는 사람, 기초가 놓이지 못한 건축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꽃과 열매만 되려고 애쓴다. 보이지 않는 뿌리, 나타내지 못하는 기초를 모두 거절해 버리면 어디에서 꽃과 열매를 기대할 수 있으며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겠는가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한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추종하면 위험하다. 왜냐하면, 고성장기에는 이렇게 뿌리 없이 나무를 꽂기만 해도 싹이 낳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제 정상적이 지 않기 때문이다. 저상장기 일수록 차근히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세심하게 심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수확을 할 수 있겠다. 자기 혼자 뿌리에서 꽃과 열매를 모두 독차지 않으려는 것은 어리석다는 저자의 말은 더욱 그러하다. 서로 그렇게 다툼을 하는 사이 서로를 죽이게 되는 형국이 될 뿐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더욱 배려하고 포용하는 사람들일수록 위험에 빠질 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필자의 아버지 사례에서 짐작할 수가 있었다. 또한 고독이라는 질병에 걸려서 헤어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나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고성장기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격화될 수 있는 문제이다. 저자의 부자된 이야기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소박한 삶속에서도 부유하게 살 수 있는지 체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난하지만 하나하나 불려가던 삶의 자세에서 우리는 어느새 단번에 대박을 꾀하며 손에 모든 것을거머쥐기를 원한다. 밭을 갈고 고르고 씨앗을 뿌려 싹을 틔워가는 과정을 지키는 이들은 바보로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아는 이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부자는 아닐 지라도 굶어죽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즐거움을 잊고 이러한 소박한 일에만 안주하는 생활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즐거움은 물질이 아니라 미의식이라는 말이 인상적인 이유다


고독이라는 병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저자는 모든 소유물은 언제인가 떠나기 마련이라서 돈도, 재산도, 지위마저 그렇지만 단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언제든지 나와 더불어 같이 있고 누구도 빼앗을수 없는 재산이다.바로 조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미의식이라고 한다. 아름다움을 아는 것, 그 미의식은 부와 이름에 못지 않은 나의 소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미의식이 없으면 그림 한 장 제대로 감상을 못할 것이며, 위조작인지 알수 없는 채 그림만 고가에 사두려 할지 모른다. 집에 그림을 쟁여두고 그 그림이 아름다움을 스스로 모르는 것보다 전시관에 걸린 남의 그림 이라도 행복하고 즐겁게 만족할 수 있는 미의식이 정말 큰 재산이겠다.


저자가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이시대에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지식인은 비록 유약한 존재로 치부되어도 아무리 이익을 위해 사회가 돌아간다해도 사회의 생활과 사상의 바람빅한 방향을 만들어 제시하고, 무엇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수 있어야 사회의 비극적 운명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변화와 위기 상황이 닥쳐 올수록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그것을 고찰해주는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전망이 불투명하기로는 전후 시기와 비슷한 상황에서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 조차 없어진 이 시대에 노철학자의 혜안은 오래된 미래다.  

글 김헌식(교보문고 북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