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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에 열광하는 문화 심리와 SNL 패러디의 착오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4. 11. 1. 16:41

글/김헌식 (중원대 특임 교수,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평론가)

 

드라마 정년이는 이런 드라마가 제작되는 것 자체가 놀랍고 매주 시청률을 갱신하는 점은 더욱 기적과 같다. 단순히 복고 수준이 아니라 과거의 예인 모습과 활동을 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문화예술인을 다룬 드라마의 흥행은 그리 썩 좋지 않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어서다. 이렇게 큰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전통음악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그것을 형상화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드라마 정년이를 보면, 최근 불고 있는 여성 서사의 정점이라고 생각이 절로 든다. 등장인물의 거의 여성이라는 점은 애써 여성주의를 내세우지 않아도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다. 여성 서사가 중심이기 때문에 낡고, 친숙하지 못할 수 있는 판소리와 민요, 그리고 국극도 매우 정겹고 살갑게 느껴진다. 이렇게 드라마에서 판소리를 많이 들어볼 수 있던 적이 있을까 싶다. 특히, 국극단의 조직과 운영, 그 안의 인간관계에 주목한 것이 참신했다. 물론 그런 정도의 조직을 갖춘 국극 단체를 생각할 수 있을지는 실제에서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전통 사회에서 근현대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꿈과 사회적 활동을 매개로 한 성장 서사를 잘 보여준다. 판소리에 이어 국극단 그리고 방송국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과 활동 공간의 진화 속에서 예인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개인의 꿈을 사회적 가치와 맞물리게 실현해 나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정년이 스토리는 비단 예인을 꿈꾸는 소수의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소재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했다. 당시 여성들이 자신의 직업을 갖고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아울러 드라마 정년이는 어머니 대()에 이어 딸의 삶으로 이어지는 예인의 삶은 자신이 일을 갖고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려는 보통 일반 여성들의 소망과 맞물려 있다.

 

물론 여성들이 열망하는 사회경제적 활동에 대한 드라마의 수용적 태도는 대개 백마 탄 왕자나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보여준 남성 구원 서사에 함축되어 있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남성이 여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나 여성이 여성을 돕고 상생하는 모티브를 보여준다. 오히려 방송국 피디로 대변되는 남성 권력자들은 모녀를 이용하려 했다. 다만, 여성 사이에서 경쟁이 있는 것도 사실임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여성들 간의 시기나 암투의 갈등 플롯은 일부일 뿐 전적으로 서사 전개의 동력으로 삼지 않는다. 일부 일어나는 갈등도 화해와 상생의 지평선으로 모이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SNL 시즌 6’에서는 드라마 주인공 정년이를 외설적인 모습으로 패러디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외설적인 음담은 물론이고 성행위 묘사까지 하는 차원이라 매우 수준 낮은 콘텐츠로 전락했다. 하니 그리고 한강 여기에 정년이까지 주로 약하고 힘없는 여성들을 우스개의 소스로 삼아 버린 셈이 되었으니 그간 이룬 풍자코미디 프로그램이라는 SNL 명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례였다.

 

생각해야 하는 것은 패러디의 기존 지향점과 원칙이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면 단순 모사에 따른 희화화에 불과해진다. 린다 허천이나 바흐친의 주장을 종합하면 패러디는 창조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패러디이고, 기존의 관념이나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는 가치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패러디이다. 더구나 풍자와 해학은 현실에서 절대적인 권력과 강자에 대한 표현을 유희적으로 삼아내는데 그 과정에서 패러디가 그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만약 패러디를 통해 풍자와 해학을 이뤄내는데 드라마 정년이를 활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년이가 성장하며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장애나 그런 존재, 대상에 대해서 묘사하고 그것을 지적하는가 하면 때로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면서 바람직한 문화적 가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정년이를 이용하려 한 방송국 피디의 행태를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것이 필요했다.

 

덧붙여 중요한 핵심은 정년이가 크로스슈얼이나 젠더리스를 지향하는 점이다. 그런데 오히려 ‘SNL 시즌 6’에서는 여성의 성적 섹슈얼리티를 저렴하게 강화했으니 착오도 심각한 착오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성적 관심사는 필요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꿈을 이뤄가기 위해 국극에서 정체성을 찾고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