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첨성대 정신의 실종?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2. 13. 22:36

 

 

드라마 < 선덕여왕 > 에서 덕만이 미실을 결정적으로 제압한 것은 '시간'을 얻었기 때문이다. 미실에게서 천신황녀의 지위를 가져오는 것은 바로 일식이 일어나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아냈기 때문이다. 미실의 권력은 시간의 지배에서 시작했다. 미실은 책력으로 신라인들을 지배한 것이다. 이점을 덕만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점은 있었다. 미실은 독자적으로 시간을 장악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책력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월천대사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덕만은 월천을 설득래 책력으로 정확한 시간을 알아내게 했다.

고대 사회에서 책력의 시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덕만에게도 책력을 장악하는 것은 권력의 출발이었다. 중요한 것은 덕만이 그 시간을 백성에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덕만은 미실 권력의 핵심인 책력을 장악했고, 그것을 백성에 공개하려 했다. 그 시간의 공개는 백성에게 권력의 근원을 두려는 것과 같았다. 백성에게 시간과 그에 따른 권력을 돌리는 것은 첨성대의 건립과 공개를 통해 구현하려 했다.

책력이 중요했던 것은 시간이 바로 농사를 짓는데 필수적인 자연현상들을 예측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비가 많이 오는 절기를 알지 못한다면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막연한 기다림은 막대한 사회적 가용 자원의 소모로 나타난다. 시간을 알 수 없는 사람은 항상 불안과 공포감에 시달려야 한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통제하면서, 자신의 지위와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권력자를 꿈꾸는 이들은 시간을 먼저 선취하거나 이전의 시간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덕만이 책력과 첨성대에 집중한 것도 결국에는 새로운 권력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해서 미실이 가지고 있었다면, 신라인들은 미실만을 기다라면서 그녀가 행사하는 권력에 복종하고, 부당한 힘의 행사나 착취를 용인해야 했다. 고대이래로 권력자들은 더 정확한 시간을 예측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간과 달력체계에 대한 연구를 집중했고, 다른 나라의 정확한 시간체계를 수입했다. 현대에서 시간은 경제적 이윤과 자본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시계가 발달했다.

국가와 사회문화에서 시간에 관련한 투쟁은 매우 첨예하고도 격렬했다. 종교권위는 권력을 강제하고 합법화하는데 달력을 수단으로 사용했다. 혁명세력들은 이전의 달력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했다. 1793년 프랑스 국민의회는 그레고리력을 대체하기 위해 혁명력을 제정했다. 새해는 9월 22일부터 시작되고, 매월은 30일로 삼았다. 30일로 삼게 되었을 때 남는 여분의 5일은 마지막 달에 넣었다.

러시아 혁명가들도 이런 시간 혁명을 추구했다. 스탈린은 기독교력을 대체하기 위해 혁명력을 제정했다. 일주일은 5일, 한 달은 6주로 구성했다. 달력의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새로운 사회적 리듬과 템포를 부과해서 사람과 사회체제를 장악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레고리력은 이전의 율리우스력 대신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사용하도록 했다.

바꾼 이유는 기독교의 춘분이 부활절을 정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율리우스력을 쓰다보면 춘분일이 10일 이상 앞당겨지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오늘날 세계에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은 기독교적 영향력에 따른 것이다. 율리우스력이나 동양에서 음력을 쓰는 세력들은 붕괴되었다. 한편, 섬머타임 제도를 도입하여 할 때 극보수의 종교단체들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체제를 변경할 수 없다면서 극렬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정치적 차원의 권력보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따른 시간의 개념과 권력의 재편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지배한 자는 자본과 부, 조직을 장악한 존재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시간을 둘러싼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세계정치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았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프랑스 국민의회와 러시아 스탈린 정권의 혁명력은 모두 실패했다. 시민과 인민들의 뜻과 욕망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라마 < 선덕여왕 > 에서 미실은 덕만이 시간을 백성에 돌려주려 하자 무엇으로 백성을 지배하고 통치할 것이냐며 비웃는다. 덕만은 마침내 미실을 죽음으로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럼 덕만은 미실이 물러난 자리에서 어떻게 통치했을까. 구체적인 사항은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첨성대를 통해 시간의 지배를 백성에게 돌렸을 때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지만 이에 관련한 사항은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드라마 < 선덕여왕 > 은 백성에 대한 치세는 없고, 내부 권력투쟁만 점철시킨 채 끝나려는 모양이다. 덕만이 미실과 대적 과정에서 다짐하고 실현하려 했던 정신과 통찰은 미실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고, 그 대표적인 것이 시간과 권력의 주체 문제이다.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백성에게 돌린다는 것은 단지 백성에게 시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의 정치와 밀접하다. 시간의 통제권을 쥔 사람은 남을 기다리게 할 수 있다. 왕실과 백성이 모두 미실의 행동만을 기다린 것은 그녀가 시간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리게 하는 자는 권력자이고, 기다리는 자는 피권력자였던 것이다. 시간의 주체가 바뀌는 것은 백성이 권력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권력자가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을 주도하는 것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첨성대의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근간이 국민임을 말해준다. 시간은 템포이자, 페이스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간에 따른 템포와 페이스는 시민과 국민에게 맞추어져야 한다. 정책드라이브에서도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템포와 페이스를 가지고 몰아간다면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