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헌식(중원대학교, 평론가)
조기 대선 바람이 불면서 출판가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바로 대선 주자들이 자신의 책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김문수, 김동연, 한동훈, 홍준표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책 출간은 인쇄업, 제지업, 서점, 출판사 등에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다. 더구나 나들이 다니기 좋은 계절은 출판의 비수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정치인의 책 출간은 순기능도 있고, 그 이면에 전제되어야 할 조건도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인에게 대체로 책을 낸다는 것은 대선 주자로 완주하겠다는 뜻일 수 있다. 다만, 이번에 오세훈 서울 시장이 중도에 사퇴하면서 이례적인 사례를 만들어내긴 했다. 요즘에는 SNS와 유트브가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하는 와중에 책 출간이 러시를 이루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은 다른 미디어 매체보다 분명 장점이 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책을 낸다면 높이 평가하는 저자 우대의 문화가 있다. 정치인에게는 좀 더 품격의 이미지를 준다. 학위를 받으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이미지 제고 차원의 기능만 있는 것이 분명 아니다. 다른 미디어 매체와 비교했을 때 나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매체와 비교할 때, SNS와 유튜브는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SNS는 단편적인 내용을 다루게 된다. 현안에 관해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지만, 체계적이거나 심도 있는 내용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튜브 방송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다. 더구나 생생한 육성과 모습을 전하는 장점의 유튜브 방송은 보여지는 것을 더 신경 써야 하기에 SNS보다 메시지 등은 간략하게 다뤄야 한다. 아울러 구체적인 내용-텍스트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SNS도 지난 시기의 내용을 다시 펴보기 어렵다. 하지만, 책은 심도 있게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는 적합하다. 무엇보다 선거 공약과 미래 비전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낼 수 있어서다.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와 세계관을 내밀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정보성과 체계성을 갖추고 있다. 더구나 책의 특성상 언제라도 필요한 부분이나 확인할 대목을 찾을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비용 관점에서 볼 때도 다른 미디어 매체보다 제작비가 저렴하다. 이런 책을 바탕으로 북콘서트와 같은 대면 행사를 전국적으로 열어갈 수 있다. 이를 통해 홍보 효과를 더욱 배가시킬 수 있다. 디지털 채널을 통해서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홍보 콘텐츠를 확보하게 된다.
단점으로는 자기중심적으로 기술하기 때문에 자칫 공감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자화자찬하거나 특정 정치인을 비판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오랫동안 준비하지 않는다면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에 출간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던 ‘안철수의 생각’이었다. 안철수 신드롬과 함께 신간이 크게 집중을 받았지만, 그 내용 면에서는 혹평에 시달렸다. 2025년 대선의 경우에는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사례라서 대선 주자들이 난데없이 책을 내야 했다. 준비 기간이 짧기에 함량 미달이 될 수도 있었다. 다만, 어차피 오랫동안 책은 준비하는 경우라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비교 우위 대상이 될 수 있다.
책의 내용 면에서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지라면 팬덤 정치 차원에서만큼은 무난하게 용인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팬덤 정치에 부합하는 책일수록 외연을 확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대선은 전국 단위 선거이기 때문에 지지세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팬덤은 마치 케이 팝 아이돌 팬들이 초동 판매량 순위를 위해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것과 비슷한 패턴을 보일 수밖에 없다. 당장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는 것이 지지도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다시 이러한 순위가 주목도를 높일 수 있어 보이니 말이다. 잘못하면 듣지도 않을 앨범을 차트 올리기 위해 사는 팬덤과 읽지도 않을 책을 구매하는 지지자들의 행태가 자칫 닮을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이라면 정치인의 책 출간이 단순히 합법적인 정치 자금을 모으는 수단이라는 혹평이 맞을지 모른다.
주식시장에서 쉽게 오른 1등은 쉽게 떨어지고 쉽게 폭락한다. 정치인들이 대선을 앞두고 내는 책들이 대부분 그러했다. 계속 정치인의 책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비록 출판계는 반짝 활성화해도 나무만 죽이는 셈이니 반생태학적인 문화 선택이 될 뿐이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 무엇보다 전 국민이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온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책 원고를 급조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집필하고 매만져 출간하는 짜임새 있는 저술 출판 활동이 정치권에 자리잡혀야 한다. 독자나 유권자들도 이러한 관점에서 책 구매에 나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