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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영화 왜 붐인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3. 9. 26. 00:40


영화 ‘관상’이 큰 흥행을 하고 있는 가운데 충무로에는 사극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선보일 사극 영화는 8편 이상이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거나 촬영완료 된 작품도 여럿이다. 현빈·조정석의 ‘역린’,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군도: 민란의 시대’는 하정우와 함께 출연하는 강동원의 복귀작이며, 이병헌과 전도연의 무협 연기가 기대되는 ‘협녀: 칼의 기억’, 최민식·류승룡의 ‘명량-회오리바다’는 이순신의 유명한 명량대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외에 손예진·김남길 주연의 '해적' 하지원·강예원의 ‘조선미녀삼총사’, 송승헌의 ‘전령’등도 있다.


사극은 이제 하나의 대중적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드라마는 좀 주춤하고 있는데 영화 ‘왕의 남자 이후 영화 ‘활’, ‘후궁: 제왕의 첩’,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사극 영화는 흥행성을 인정받았다. 팩션이라는 장르로 오해할 만도 했다. 요즘 사극 영화는 추리기법을 사용하거나 5%사실에 95% 상상력 법칙의 정도가 아니라 매우 다채롭다.


그렇다면 사극 영화는 왜 붐일까.

일단 사극은 구세대나 보는 영화가 아니라는 인식이 대중 흥행으로 이미 검증되었다. 물론 영화제작자들은 퓨전 사극 드라마의 흥행 사례를 통해 전 세대를 모을 수 있는 장르임을 알아챈 지 오래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작품들은 모두 정극이 아니라 퓨전 사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경은 과거이지만 단순화된 설정과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꿈을 반영하고 있다.


사극은 주로 과거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과거는 복잡하기보다 단순하게 인식된다. 더구나 그 시공간은 제한된 사회이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관객들은 기본적인 시대적 배경지식이 있으므로 작품 이해에 용이한 면이 있다. 예컨대 조선시대는 왕권과 신분제라는 기본 전제가 있다. 따라서 현재의 문화적 다양성과 민주의 시대보다 한결 사회 구조와 양상이 단순하다. 왕권을 둘러싼 절대북종과 신분제를 통한 상승의 부자유는 누구나 알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인공들은 고통을 받거나 성취감을 느낀다.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과 좌절 그리고 달성은 만고불변의 삶을 관통하는 코드이기 때문이다.


사극은 현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은유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개혁에 실패하는 왕은 현대에서 대통령의 좌절을 의미하는 형태로 등장한다. 단순히 은유적이 아니라 감정이입과 동일시의 은유다. 천민 광대가 왕이 되어 백성을 위한 정치를 잠시 시도 했던 '왕의 남자, 광해'를 떠올릴 수 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왕이 될 수 있어도 결코 될 수 없지만 왕을 통해 세상을 뭇사람들을 위해 바꿔보고 싶어 한다. 이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충족의 심리를 만족시킨다.


또한 사극은 이제 고증의 틀에서 자유로워졌다. 학계서도 이에 유연한 태도를 보인지 오래다. 이때문에 소재와 주제 그리고 볼거리가 다양화되었다. 사람들이 주로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그 역사적 사실은 고증에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예컨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현재를 배경으로 할 때 보다 더 자유롭게 상상력을 투영할 수 있다. 현대로 접어들수록 논란될 일과 고려해야할 세세한 사실이 많다.


드라마 사극 보다 영화 사극이 유리한 점이 있다. 드라마 사극은 일단 좀 더 평이한 그리고 무난한 소재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무래도 텔레비전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극 영화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좀 더 새롭거나 인식적 전환을 꾀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낯선 면이 대중적인 호응을 못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효과와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다채로운 볼거리와 조연들의 열연을 보완장치로 활용하기도 한다. 사극 드라마는 극적인 상황을 연장하여 시청자를 잡아두지만, 사극영화는 압축적 스케일과 폭발적인 감정 흡입으로 관객을 잡아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새로운 관점보다는 기존 사실에 영합하는 내용이 더 많다. 과거의 사회는 희화화 되거나 공포의 사회로 극단화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 대부분은 과거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가능성과 왜곡이 같이 배태되어 있는게 사극 영화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빅브라더는 과거를 바꿔 현재와 미래를 지배한다. 과거를 잘 살피면 현재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사극이 단지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는 매개체에만 그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자아의 투영이 지향하는 꿈이라면 좋을 것이다.

김헌식(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