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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3. 5. 07:31

일본에 수출한....반가사유상 성왕상

석굴암


<경제萬華鏡>한국의 對日 첫수출은 가마니

호화사치품 수입, 고구려시대 부터 유행 

(서울=聯合) 국가간의 상거래인 무역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원시적인 형태의 무역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오늘날 국가간의 무역은 주로 철도와 선박을 이용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초창기 무역은 주로 육로를 통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등짐이나 달구지가 육상수송의 대종을 이루던 그옛날 이웃나라에 팔 물건을 나르기 위해 몇날며칠을 두고 한가롭게 중국대륙을 오갔을 선조들의 모습을 그려보면 희화적이기까지 하다.

교환경제의 원시적 형태는 부족공동체 시절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으로 확인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무역은 B.C 7세기경 古朝鮮과 濟나라간에 이루어졌다. B.C 3세기경에 편찬된 중국사서 「管子」에 따르면 古朝鮮은 이미 子母錢이라는 화폐를 사용한 것으로 돼 있어 교환경제가 꽤 활기를 띠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부족국가 발전기인 扶餘와 三韓시대를 거쳐 삼국시대로 내려오면 중국과의 교역은 한층 활기를 띤다.

근세이전의 우리나라 무역은 주로 중국대륙에 부침했던 국가들을 상대로 이루어졌으며 일본과도 부분적인 교역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高句麗는당시 중국을 지배했던 漢, 魏 등과 활발히 교역했으며 제6대 太組王 이후 귀족계급이 출현하면서 사치품의 수요가 급증했다. 당시의 수출주종품은 말, 계피, 금, 은, 角弓, 곰가죽 등이었으며 수입은 귀족의 사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衣冠과 견직물, 깃발장식, 물소, 앵무새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오늘날 여론의 지탄을 받고있는 외제 호화사치품 수입도 근원을 따져보면 역사가 꽤 깊은 셈이다.

百濟는 이웃 고구려와 신라, 중국대륙의 南朝諸國은 물론 일본과도 公무역을 했다. 수출품목은 錦布와 해산물, 조랑말, 角弓, 화살, 불상, 藥劑, 卜書, 쇠도끼 등이었으며 수입품은 불전, 絹絲, 布, 錦袍, 활 등이었다. 삼국중에서는 백제가 일본과의 교역도 가장 활발해 약제, 角弓, 화살, 鐵鋌佛像, 佛典, 卜書 등을 수출하고 말과 활, 絹絲, 布 등을 수입했던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으나 교역품목으로 보아 오늘날과 같은 무역역조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新羅는 지리적 여건때문에 고구려와 백제에 비하면 대륙과의 교역은 많이 늦었 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도 公무역을 했으며 수출품은 玉, 견직물, 불상, 사슴가죽, 綾羅, 병풍, 약제 등이 주류였고 수입품은 絹, 錦, 絲, 선박 등이었다.

통일신라와 高麗시대로 내려오면 교역품목이 다양해져 금, 은, 동, 바늘, 그릇, 細布, 견직물, 海豹가죽, 거울, 朱砂, 불상, 黃丹, 인삼, 병풍, 꿀 등이 수출되고 비단, 도자기, 玉, 금은세공품, 문방구와 서적, 차 등이 수입된다.

이무렵 신라의 豪商이었던 淸海鎭(지금의 莞島)대사 張保皐는 黃海와 東지나해의 무역권을 장악해 巨富가 됐다. 張保皐는 일본 규슈(九州)지방과도 교역하면서 만금의 富를 이뤘으며 回易使라는 무역사절을 자주 일본에 파견해 오늘날 종합상사의초기조직도 갖췄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시대와 개항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50년대에 들어오면 생선과 중석, 生絲, 철광, 海藻類가 수출주종품이 되면서 6.25 전쟁 등 당시의 궁핍했던 식량사정을 반영, 처음으로 쌀과 밀을 비롯한 식량과 식물성원료, 동물성기름, 설탕, 생고무, 섬유류, 화학비료 등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무렵 對日 첫 수출품이 가마니였다는 점이다. 정부수립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對日민간무역에서 당시 東亞상사와 天友社는 가마니 5백만장을 일본에 수출했다. 우리나라 이외의 국가에서 가마니가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의외이긴 하지만 美군정말기에 일본에 발주한 비료를 수입하는데 포대가 없으니 가마니를 급히 보내 달라는 美극동군사령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동아상사와 天友社는 가마니 수출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으며 이를 계기로 50년1월1일 일본에 지점을 개설했는데 우리나라기업이 해외에 지점을 설치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나라의 무역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62년의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다. 이때부터 70년까지 우리나라의 수출은 통관기준으로 62년의 5천4백80만달러에서 70년엔 8억3천5백만달러로 늘어 연평균 40% 이상의 높은 신장률을 기록했다. ‘수출입국’의 기치를 내세운 우리나라의 수출은 70, 80년대에 연평균 25% 안팎의 순조로운 성장을 계속해 86년 단군이래 처음으로 31억3천만달러, 88년엔 88억8천6백만달러의 기록적인 흑자를 냈으나 지난해 다시 1백억달러 가까운 적자를 내고 말았다.<경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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