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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목지는 크게 흥행이 안되었어야 한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6. 4. 29. 17:13

 

-표현과 예술의 자유는 지역 소외 지역과 상생해야..

 

글/김헌식 박사(중원대)

 

스크린 투어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영화 관람이후 관련 장소를 방문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개 지역이 그런 투어 장소성의 대상이 된다. 투어는 여행을 말하는데 여행을 해당 지역에 사람들이 할 때 경제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 예컨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많은 이들이 청령포 등지를 방문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할 수 있어 보였다. 숙박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청령포를 오가는 선박이나 식당, 카페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목지같은 영화는 사람들의 방문을 유도하는 것 같은데 지역 경제 활성화는커녕 오히려 민폐를 준다. 이른바 장르의 차이 관점에서 공포 영화의 경우 이런 논란은 계속 되어 왔다. 영화 곤지암은 곤지암 정신병원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다보니 사유지에 침입을 유도하는 셈이 되었다. 물론 그 사유지는 괴담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소유지는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영화 치악산은 연쇄 살인의 공간으로 치악산을 설정해 지역 전체가 공분(公憤)한 바가 있었다. 치악산은 연쇄 살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굳이 치악산이라는 실제 지역 명을 사용해야 했는지 의문이었다. 더구나 관광 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치악산 주변의 주민들에게는 반갑지 않다. 영화가 함량 미달이라 흥행 참패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힘들게 만든 콘텐츠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응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역이나 거주민의 관점이 아니라 외부인의 시선에 따른 콘텐츠의 제작이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은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이는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저하되는 것을 의미한다.

 

스크린 투어리즘은 경제 효과 때문에 지역을 부각하는 면이 있는데 무엇보다 공포영화에 대한 선호는 그렇기 그치 않다. 이러한 점은 경제 효과의 한계를 의미한다. 2018년 맥스무비와 마이데일리가 영화 장르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액션은 25%, 스릴러는 11%, 로맨틱 코미디 9.9% 10%였다. 공포영화 선호는 1.8%11위를 기록했다. 앞서 멜론의 음악웹진 멜론 쥬스가 의뢰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2%가 무섭거나 잔인해서 안본다고 했고, 즐겨보는 응답자는 18%에 불과했다. 경제 효과는 여성에게서 비롯하는 경향이 큰데 무섭기만 하다는 의견은 영화관의 주관객인 여성들이 많았다. 여성들이(41.6%) 남성(24.9%)에 대비할 때 월등히 높았다. 당연한 결과로 남성(31.3%)보다 여성(53.0%)이 공포영화를 좀 더 꺼려했다. 이러한 설문조사 데이터를 봐도 공포물은 전체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마니아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단히 화제가 된다고 해도 실제 지역 경제 활성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왕사남처럼 일반인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영화가 도움이 된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의 경우를 보자. 한자는 다르지만 전남 곡성과 이름이 비슷하고 촬영도 곡성군 오곡면 구성리에 위치한 진둔치에서 진행했다. 이 정도라면 곡성에 대한 이미지는 공포의 공간이다. 곡성이 처음에는 주목을 받았고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했지만 더 이상 확장성은 없었다. 장르적 특성상 당연한 노릇이었다. 다른 명소가 크게 없다면 600만 관객을 돌파한 점 때문에 주기적으로 무서운 영화 곡성과 전남 곡성이 교차될 뿐이었다. 사실 곡성은 스포일러 때문에 영화 내용이 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크리쳐물인지, 공포물인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 영화 추격자는 달동네를 연쇄 살인범의 공간으로 만들었던 적이 있다. 달동네도 사람이 사는 공간인데 말이다. 소외와 배제 변방의 공간을 공포의 공간으로 만드는 문화예술은 그 반대이어야 한다. 특히 지역은 더욱 그러하다. 예술 미학의 역할과 기능이 그것에 있다.

 

영화 살목지는 실제 예산군에 위치한 농업용 저수지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래 모티브는 방송 프로구램 심야 괴담회에 소개된 외지인의 체험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그 체험이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개인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은 괴담같은 것은 있어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로데스크크(grotesque)함이 있다. 외지인은 어쩌다 찾는 낯선 곳이라 괴기스럽게 느끼는지 모르지만, 그곳에 삶의 공간으로 삼는 이들은 친숙하게 느끼는 정겨운 공간이다. 추억도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공간을 배경으로 공포 영화로 만들어 외지인들이 한 밤에 대규모로 진입하는 것은 민폐를 야기한다. 숙면을 취해야 하는 밤에 소음과 쓰레기를 남기는 행태가 바람직하지는 않다. 야간의 침입이 인터넷에 화제가 되어 영화의 관람객이 늘어난다면 바람직할 수는 없을 것이고 이것이 영화 마케팅에 활용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외지인의 시선과 관점, 그들의 공포 놀이에 지역 주민이 피해를 당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그 외지인들이 소수들이라면 더욱 공포물 장르의 입지는 축소될 것이다.

공공의 지역 장소에 대한 콘텐츠 제작과 소비의 매너가 필요하다. 한국은 좁은 국토에 밀집도가 크다. 실제 지역 공간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타격을 받은 사람들이 있기에 광대한 영토의 미국 할리우드 공포물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실제 공간의 이름을 공포물로 사용하는 영화는 흥행이 안 되어야 지역에 좋은 역설이 있다. 손익분기점에 머무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았다. 영화 살목지가 크게 흥행 했으니 계속 공포 영화가 개봉될 때마가 이전의 흥행작이 언급이 되고 예산의 살목지가 연상될 것이다. 비록 한자는 다르다고 해도 계속 공포의 공간으로만 인식할 것 아닌가. 왜 지역의 호수를 이렇게 낙인찍는가. 그 시작은 심야 괴담회의 무분별성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