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허영만이 블루칩이 된 이유 '2등 리더십'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20. 12:05

허영만이 블루칩이 된 이유 '2등 리더십'

-1등의 독선 심리를 뛰어넘는 다양한 변화시도 턱

허영만, 만화, 2등리더십

허영만은 영상문화계의 블루칩이라 불릴만큼 선호되고 있다. 그의 전 작품이 이미 영상화를 위한 판권계약이 끝났다. 작품이 시작되기 전에 팔리거나 끝나자마자 계약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은 영상화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어제 오늘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왜 허영만의 작품들은 이렇게 항상 주목받는 것일까?

허영만의 작품이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몇 가지로 압축되고는 한다. 우선 허영만 작품은 일찍부터 대중성을 철저하게 지향했다.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이는 사람들의 관심사와 취향을 즉각적으로 반영한 것을 말한다. 대중이 야구에 관심이 많으면 야구만화를 그리고 권투에 대한 주목이 일어나면 권투만화를 그렸다. <오! 한강> 같이 현대사의 굵직한 사안에서 <비트> 같은 개인의 실존적인 고민은 물론 세일즈, 자동차, 게임, 요리, 도박 등에 이르는 일상 미시사와 관련한 작품도 적극적으로 선보여왔다.

<아스팔트 사나이>, <타짜>, <식객>, <미스터Q>, <세일즈 맨>, <사랑해> 같은 작품이 이 와중에 창작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사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트렌드에 맞춘 작품들이 많았다. 물론 인기영합이라고 비판하는 측도 있었다.

허영만의 작품은 스토리텔링에 충실해 왔다. 이는 만화의 기본적인 특징이지만, 허영만의 작품들은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만화의 기본요소일뿐만 아니라 21세기 영상컨텐츠에서 핵심 화두다.

다만, 단순히 재미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성, 즉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고 극적인 완결성을 추구했다. 이는 자칫 단순히 재미있기만한 만화의 황당한 요소를 배제한 결과다.

무엇보다 정보와 재미를 함께 추구한 것이 빛을 보게 되었다. 일찍부터 인포테인먼트에 충실한 것이다. 허영만의 만화는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독자들은 자신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해 다양한 정보와 에피소드를 얻을 수 있게 했다. 그의 만화를 통해 단순히 만화를 보고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는 단순히 책에만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허영만이 직접 발로 뛰어 수집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허영만은 수많은 사람과 현장을 접하고 항상 한 작품을 위해 직접 취재한 많은 분량의 취재수첩을 작성했다. 이 때문에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정보와 관련 분야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허영만 작품을 인기 있게 만든 것은 바로 2인자 심리다. 앞의 요소들은 이 심리 때문에 가능했다. 허영만은 여러 차례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항상 2인자였다고 말했다. 예컨대, 70년대 이상무, 80년대 이현세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만화라는 매체는 항상 천덕꾸러기였다. 툭하면 불량서적 화형식에 만화가 단골로 몰렸다.

이러한 가운데 그는 2등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폭넓은 장르에서 작품을 구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2등 리더십의 장점이기도 하다. 1등들은 항상 1등을 지키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하고 만다.

항상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변화를 주는 것도 쉽지 않다. 작품의 변화를 주었을 때 주목하는 눈이 많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만약, 실패하면 그 부담감은 다음 작품을 창작하는데 더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오히려 2인자는 그러한 시선에서 자유롭다. 따라서 마음대로 창작해보고 그 가운데에서 역량을 쌓을수 있다.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창작할 여지가 많아진다. 실패에 대한 심적 부담도 덜하다.

허영만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등을 욕심내기보다는 2등을 하면 그래도 꾸준히 먹고 살 수 있겠구나 하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이야기 발굴에 나서게 되었고, 이것이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다양한 영역과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구나 2등은 자만할 수 없다. 하지만 1등은 자신의 성공에 취해 자만하고 독선에 빠지지 쉽다. 이렇게 자만하지 않는 태도는 끊임없는 작품의 변화와 새로운 창작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허영만 혼자만이 모든 작품을 만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허영만 주위에는 문화생도 있고 스토리작가도 있어 왔다. 다만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2인자의 문화적 가능성이다. 만화도 그렇지만 문화예술영역의 창작자나 교육기관들은 항상 1등, 최고를 전제한다.

원칙적으로는 맞지만 자칫 그럴듯한 것에만 집착하게 해 협소한 작품들을 양산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창조적이지 못하게 된다. 재능있는 창작자들이 일찍부터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자유스러운 창작의 실험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비단 문화예술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정책도 2등들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기업이나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럴듯한 제품만을 쫓아다니면 실패하고 만다.

선진국에서 선점한 제품들이 아니라 니치시장을 개척하는 데서 성공한 기업들의 예에서 알 수 있다. 대학에서도 그럴듯한 학문, 특히 서구의 이론만을 추구하면 다양한 이론이나 사상이 탄생할 수 없다. 특히, 정부의 각종 정책도 이렇게 1등만이 아니라 2등의 잠재적 가능성을 염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등은 언제나 시장이 알아서 뒷받침한다. 좀 모자라도 창조적인 영역이나 내용의 개척이 궁극적으로 꽃을 피우고 블루오션이 된다. 이것이 허영만 현상에 담긴 함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