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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옷 안벗길때 시청률 높은 이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0. 2. 10. 14:29

추노, 옷 안벗길때 시청률 높은 이유

지난 1월 28일과 29일 인터넷은 드라마 < 추노 > 의 노출 장면 때문에 크게 들끓었다. 제7회(27일)에서는 노출이 뿌옇게 처리되었고, 제8회(28일)에서는 그대로 방영되었다. 노출정도는 8회분이 더 강했다.

하지만 시청률은 제8회가 제7회보다 낮았다. 제7회 시청률은 34%이었고, 제8회 시청률은 31.9%이었다. 이 외에도 그동안 < 추노 > 는 선정적 장면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흔히 선정적인 장면을 통해 많은 시청률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분당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장면은 노출 장면이었을까?

객관적으로 나타난 수치로는 거리가 멀었다. 제7회 분당 시청률이 41.9%(AGB닐슨 기준)로 급등한 장면은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애달프고 낭만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로 가득했다. 송태하(오지호)가 언년이(이다해)를 업고 가는 도중에 대길과 추억이 깃든 돌을 떨어뜨리고, 이대길(장혁)이 설화(김하은)를 업고 가다가 해금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교차하자 순간 시청률은 급등했다.

과거 드라마 < 주몽 > 에서도 순간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장면은 폭포수 아래에서 주몽(송일국)이 알몸을 드러낸 채 수련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용과 협보라는 두 남성 사이의 해후가 드라마 < 주몽 > 의 전체 시청률에서 가장 높게 기록되었다. 순간 시청률이 무려 63.2%였다.

이러한 점은 단순 노출로 시청자의 시선을 잡는 데는 한계가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다해의 노출이 < 추노 > 시청률에 대한 결정적인 요인을 말해주지 못하듯이 단순히 레드원 카메라나 짐승남의 복근이 시청률 몰입의 최대 공헌자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내용이 쉽게 회자되는 것은 그것이 단순하고 누구나 표현, 이해가능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 추노 > 의 대중적 몰입과 주목은 역발상에서 가능했다.

본래 기획 의도와 대본상의 < 추노 > 는 매력적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제작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 추노 > 의 드라마 서사의 골간은 추격이다. 쫓고 쫓기는 얼개는 영화 < 추격자 > 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드라마 제목을 '추격'이나 '추격자'로 한다면 변별성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에는 맞지 않아 보인다.

무수한 오락 영화에서 차용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제작 컨셉이나 의도가 살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추노'라는 제목은 어감이 썩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노비를 쫓다'라는 표현을 붙여야 했다. 자칫 노비에 치중하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다. 막상 그 드라마는 추격의 핵심적인 구도를 잘 구조화 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즉 중국 무협물에 할리우드 추격 영화, 조선 사극을 결합해냈다.

한동안 조선시대 사극은 맥을 추지 못했다. 사극 트렌드는 퓨전과 팩션 사극의 여파로 시대적 배경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 천추태후 > 의 실패와 < 선덕여왕 > 의 성공은 고대 사극에 대한 확신을 굳게 했다. 조선 시대 사극은 기피되었다. 드라마 < 추노 > 는 덜 매력적인 조선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고대로 달려가는 사극흐름을 급전환 시켰다. 즉 한동안 고대 사극만이 퓨전과 팩션 사극의 본령인 것처럼 여기는 인지적 고착화에 대한 반격이었다.

더구나 판타지가 대세라는 지적이 많은 상황에서 리얼리즘이 필요한 조선시대 사극에 많은 제작비를 들인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더구나 이미 검증된 인물인 < 대왕세종 > 도 안정된 시청률을 확보하지 못한 바가 있었는데, < 추노 > 에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없는 가공의 인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설득력 있는 현실감을 주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고심의 얼개들이 필요했다.

뉴웨이브 사극의 특징인 예측 가능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선화 된 이야기 구조와 집중화된 캐릭터의 복합적 상호관계화, 압축적인 멜로라인과 진지한 사회주제의식과 문화사적으로 새롭게 눈길을 줄만한 소소한 볼거리 등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장르 자체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이었다.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것을 영상화 하는데, 디지털 세대의 영상미학이 요구하는 기호를 채우기에 드라마적 연출은 이제 무의미했다. 이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의 결합은 '시네 드라마'라는 영역의 등장을 다시 한 번 확증하게 했다.

역시 진지한 문제의식과 현실인식이 창작에는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이러만 맥락에서 < 추노 > 는 한동안 완전히 소멸한 것으로 여겨졌던 리얼리즘 사극을 부활시켰다. 풍자와 해학, 민중의식을 반영해내는 사극은 통치 사극 뒤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지난 10년간 정통사극에서 생활사극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결국 궁(宮)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드라마 < 추노 > 는 현실을 다루되 현실에서 벗어났다. 리얼리즘을 추구하되, 리얼리즘에서 벗어났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과 메타포의 영역을 통해 현실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어느 정도는 성과를 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 추노 > 는 명분 답습적인 민중(노비)의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듯한 명분과잉의 사극일 것이라는 예측을 벗어났다. < 노비 > 가 너무 많아 캐스팅하기 힘들었던 < 추노 > 는 결국 노비를 희극적이고도 감초적인 역할들로 대거 채워나감으로써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우회적으로 화두를 던지면서 대중적 몰입감을 자연스럽게 증대시켰다.

민중세대와 리얼리즘 세대의 돌파구였다. 그것은 대중적 오락성을 외피로 두르면서 그 안을 쿨 하게 진지한 화두와 주제의식으로 채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 오락성의 외피를 초반부에 너무 드러내다보니 선정성의 논란에 휩싸였지만, 그것은 본질이 될 수가 없었다. 이는 자칫 드라마 < 추노 > 이후의 사극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겠다.

드라마 < 추노 > 에서 리얼리즘과 판타지, 민중성과 대중성이 테크놀로지와 결합되는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지난 시기 많은 사극관련 콘텐츠들이 제작되었고, 그것이 응축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에서 중요한 것은 추세를 따라가면서도 미처 간과하기 쉬운 대목에서 역발상을 발휘하는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