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정선희가 3년상이라도 치러야 하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27. 12:13
정선희가 라디오에 복귀한다. 이에 대해서 말이 많다. 특히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매우 식상한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 일상 우리 삶의 진리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말도 없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이제 생업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 때문에 산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은 이미 떠난 사람이 바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다.
라디오 복귀는 이런의미다. 정선희는 이제 자기의 생업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이 먹고사는 것은 방송이 중심일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그맨 정선희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와서 웃고 떠들수는 없는 것이다. 그나마 라디오 프로그램이 다행이다. 물론 시기상조라는 지적은 망자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고통을 당한 사람이 누구일지를 생각해 볼 때 더이상 고통을 당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야 한다.
정선희의 복귀를 반대한다면 결국 가부장제의 유교이데올로기라도 실현해야 하는것으로 보인다. 즉 남편을 위해서 3년동안 상을 치러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기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은둔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여성 나아가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한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만약 남편이 아니라 여성이 떠나간 사안이라면, 아니 정선희가 남자였다면, 다를 수 있다.  혹은 여성 연예인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편의 죽음에도 아랑곳없이 돈을 밝힌다고 말이다. 방송은 그야말로 그들에게 생계를 위한 수단이지 엄청난 부나 뜨기위한 수단이라고만 볼 수 없다.
다만, 촛불집회에 대한 그녀의 발언이 그간의 고통을 촉발시켰을 개연성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그러한 점은 본인이 방송에서 지극히 경계해야할 일임은 이제 대부분 짐작하는 일이다. 또한 노이즈 마케팅차원에서 프로그램 인지도를 올리려 재기용하는 것이라면 비판의 여지가 없을 수 없다.

김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