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왜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2. 16. 21:15

왜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가

-경제적 환경의 변화와 남녀 성의 회귀

개그콘서트의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 화제다. 이 코너에 취객으로 출연하는 박성광은 술에 취한 채 경찰관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가 나한테 도대체 해준 게 뭔데?!”,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고래고래 외친다.

물론 술을 한잔 먹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내뱉은 말이기 때문에 극중 경찰이건 관객이건 용인이 된다. 다른 쪽에는 역시 '떡실신' 되기 직전의 여성 취객 허안나가 등장해서 역시 술주정을 한다. 그 여성 캐릭터도 결국 박성광과 같이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는 아니다.

하지만 우월한 남성과 인연을 맺으려고 부단하게 노력한다. 경찰관이 업무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박성광은 허안나에게 작업을 건다. 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이유는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것. 다시 한 번 박성광은 세상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 꼭지에 담긴 정서는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과 같은 점이 있다. 남성들이 연애과정에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용들을 개그 프로를 통해 시청자 대리자와 유사하게 전달해주어 인기를 끌고 있다. 데이트 과정에서 있을 법한 많은 소재가 활용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대부분 ‘경제력’에 관한 이야기다.

남보원의 핵심적인 마무리 구호는 ‘여자들이 밥을 사는 그날까지 남자들이여 일어나라’이다. 밥을 사는 행위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경제적인 문제가 걸려있어서다. 남성들이 찌질하게 구는 이유는 데이트 과정에서 경제적 비용의 불균등성이 발생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기존 페미니즘의 한계를 드러내주고 있다. 과거 기성세대 남성들은 가부장적인 기득권을 누렸고, 경제적인 보상을 통해 가부장적인 기득권 때문에 피해를 보는 여성에게 무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남성은 가부장적 기득권을 누릴 수가 없고, 여기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일자리가 보장이 되어 있지 않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그 경쟁의 승리자에게 모든 것이 부여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양극화의 편차는 상대적 욕망의 수준과 그 선망의 기대감을 크게 벌려놓았다. 그것이 박성광이 외치는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으로 압축된다. 승자가 독식하는 가운데,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남성들의 심리가 ‘남보원’과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으로 압축되었다.

은연 중에 여성 약자, 남성 강자라는 기본적인 도식이 깨어졌다. 그것은 페미니즘의 급격한 쇠퇴와 맞물린다. 당당한 여성을 앞에 내세우는 담론은 안으로 들어갔으며, 여성들 사이에서는 부드러운, 착한 초식남보다 얼굴도 잘 생기고 돈도 많고 젊음의 근육도 유지하고 있는 ‘꽃미남’들이 선호된다. 당당녀 쇠퇴의 이면에는 경제적 성장의 한계와 욕망의 증폭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진화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으로 수렴된다.

요즘 대중문화계는 남녀의 심리와 행태를 분석하는 컨텐츠들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와 연극은 물론이고, '남녀생활탐구백서' 등과 같은 방송프로그램이 전성시대를 이루는가 하면 관련 책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각종사이트는 물론이고 관련 블로거들도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남녀에 대한 탐구 분석 콘텐츠가 크게 주목받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이 앞선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던 남녀관계보다 실질적 현실적인 시각이 더욱 강해졌다. 이전 세대보다 가치관의 다양성 속에서 자란 세대들은 자신의 자아중심성이 매우 강하다. 자아 중심성이 강한 개인과 개인, 특히 여성과 남성이 만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대방과 자신을 조율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훈련이 더욱 필요해졌다.

하지만 가족이나 학교에서 이러한 것을 충족시킬 수 없다. 더구나 한국에는 아직 상담 문화가 확립되지 않았다. 이를 대신에 심리학 책들이 출판가를 휩쓸기도 했다.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사이트나, 책, 방송프로그램이다. 즉 가족과 사회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해법을 대중문화콘텐츠에 의존하여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아중심성의 강화는 자아실현은 물론 좀 더 욕망 충족이 원활한 상태를 갈구하는 행태를 낳고 그것은 연애와 결혼 과정에 이어진다. 그런데 상대 이성에 대한 욕망의 수준도 커지지만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가용 이성은 없고, 자신의 기대치가 높은 것은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끊임없는 고민과 곤란을 낳고 그것은 현실의 엄혹한 문제가 되었다.

이는 IMF 이후의 세대에게 매우 강해진 심리다. 경제적 환경의 변화와 제약은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게 되었다. 가치보다는 본능과 생물학적인 요인을 강조하는 진화심리학 혹은 진화 생물학적 연구 결과들이 뇌 과학 연구 결과에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즉 남녀관계는 생물학적인 차이와 그에 따른 역할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쟁과 도태의 격화 속에서 남성과 여성은 각자의 신체조건과 생물학적 능력에 맞게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 새삼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인 코칭이 아니라 실제적인 메커니즘에 따른 조언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도덕적 윤리적 차원이나 페미니즘과 같은 여성 운동 맥락에서 남녀 관계를 분석하던 흐름을 완전히 대체하고 있다.

남녀 관계의 갈등은 정신적 문화적 기호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면이 있지만, 경제적 토대의 변동에 따른 경향도 강하다. 그러한 면은 개인적 심리 치유나 방송 프로의 시청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청년 실업의 심각함의 와중에 학벌주의 등에 따른 배제와 패거리 문화의 폐해는 더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보원’에서 여성들을 그렇게 매몰차게 공격하는 것이 그렇게 타당하지 만은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신세대 여성들의 고용구조나 사회적 위치도 그렇게 나은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 있는 남자에게라도 의존하고 싶은 심리가 생기겠다. 아직은 여성에게 의존하는 것이 허락하지 않은 한국사회이 구조에서 찌질한(?) 남성들의 모습은 결코 개인적인 원인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증폭하는 사회 구조가 부정적으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는 좌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욕망이 극대화된 개인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경제 구조와 청년 고용이 악화될 것이고 출산과 육아가 힘든 사회가 될 것이다. 개인은 욕망을 낮추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가족 구성과 생계 유지를 통해 공존할 수 있는 쪽으로 사회와 경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하겠다.